회사에서 만난 우리, 친구가 될 수 있을까?

by 비타민들레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검정고시를 고민했다.

이 당시, 주변으로부터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이랬다.


“고등학교는 무조건 추억이니까 가야지!

고등학교 때 친구가 평생 가는 거야.”


마치 고등학교를 가지 않으면

평생 친구 한 명 조차 얻지 못할 것이라는 ‘엄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당시 16살의 나는 ‘평생 친구’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이 어려웠고

학교 생활의 인간관계에도 나름의 피로감이 있던 사춘기 소녀였기 때문에

친구를 얻기 위해 고등학교에 가야 한다는 말은, 나를 설득하기에 불충분했다.


그렇게 10대 후반에 시작된, 독립적이고 자유 분방한 인간관계는 편안했다.

모두 내가 선택한 사람들과의 교류만 이어나갔던 덕분에.


하지만 ‘편안한 관계’만 사귀던 여정에도 종착역이 있었으니

바로, 취업이 그랬다.


2023년 생일파티! 친구가 케이크를 들고 오느라 고생했던 날.


정확히 중학교를 졸업한 지 9년 만에

한국의 회사에 취직했다.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 접한 ‘집단 사회’란

중학생 이후 처음이었고

또래에 많은 한국인들과 함께 모여있는 것도 처음이었다.


취업 전 9년 동안

나의 정서와 일상을 공유하고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일본과 대만, 나의 학교와 기숙사에 있었지 한국에는 없었다.


“큰일 났다. 진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함께 검정 정장을 차려입고, 구두를 신고

이른 아침부터 한데 모여 원탁에 둘러앉아 인사를 나누고...


왜 나만 빼고, 서로 다 일면식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다들 어떻게 그렇게 인사도 잘하고, 대화도 잘 나눌 수 있는지 신기했다.


해외에서 이방인은 익숙한데,

모국에서까지 스스로를 이방인처럼 느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었다.


이제 내게 친구는 학창 시절의 ‘친구’가 전부이겠구나,

앞으로 친구는 못 사귀겠구나라는 단념하는 어린 마음으로

조금 주눅이 든 채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회사에선 일만 잘하면 되지,

어차피 친구 사귀려고 오는 곳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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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 눈치 저 눈치 봐가던

신입사원 생활도 어언 1년 차를 향해가고 있던 어느 날,

친한 동기로부터 잠깐 볼 수 있는지 연락이 왔다.

.

이윽고 우린 작은 회의실에서 만났는데, 동기는 나를 보자마자

메신저로 못다 한 이야기를 시작하더니, 눈물을 주룩주룩 쏟기 시작했다.


일로 맺은 관계에서, 속상했던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난 옆에서 토닥여 주고, 그 사람이 잘못했네라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당시엔, 친구가 굉장히 여리고 순수해서 상처를 쉽게 받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돌이켜보니,

난 이때 우리가 ‘동기’에서 ‘친구’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누군가 내게 연약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

눈물을 흘리는 사람 곁에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존재란

매우 특별하니까!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경험은

스스로의 효능감도 올라가는 귀하고 소중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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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생활을 하며

대내외적으로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깊은 감정을 교류했던 경험은 계속 쌓여나갔다.


그중에서도 더 기억에 남는 사람과 사건은

함께 고생하고, 이 이상 진행하면 무리하거나 난처해짐을

서로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일은 또 진행시켜야 하기에
서로가 각 위치에서 고군분투를 했던 사람들이다.

시간이 지나면, 좋은 기억만 남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난관을 함께 겪었던 우리는

동기에서 친구,

동료에서 사적 관계를 이어가는 사이,

선, 후배에서 진짜 친한 선/후배 또는 언니/오빠 동생 사이

‘그냥 파트너사 분’에서 ‘진짜 오랜 기간 좋은 파트너사 분’이 되어

짙은 여운의,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


홀로 서기 직후, 전 회사의 때 협업한 한 파트너사 분께서

사무실 근처로 와서 밥을 사주셨다.


이날 우리는 서로 “고생했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등의 대화를 나누며

눈물콧물을 흘리다, 또 웃다가 하며

피자와 파스타를 맛있게 먹었다.


그 순간은, 내게 큰 감사함으로 남아있다.


과거에, 진심으로 사람과 일을 대했던

나를 기억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

지난 회사 생활의 가장 큰 선물을 받은 것이니까.


회사는 친구 사귀는 곳이 아니다.


하지만, ‘친구’라는 단어를 뛰어넘는

더 다채로운 인간관계의 달콤 쌉싸름함을 느끼게 해 주며

나의 ‘사람’을 남겨주기도 하는 고마운 곳이기도 하다.


- 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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