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탁을 잘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남한테 아쉬운 소리를 한다는 감각이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기분을 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게 싫었다.
그래서 더더욱
부탁을 하게 되는 상황들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딱 하나!
내가 서슴지 않고 다가가
남들에게 부탁을 하는 게 있다.
“저 너무 죄송한데,
혹시 사진 몇 장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
바로 사진과 영상 촬영 부탁이다.
혼자 떠난 퇴사 여행,
가족 단톡방에 틈틈이 사진들을 보내니 동생이 물었다.
‘언니, 대체 사진은 누가 찍어 주는 거야?
혼자 간 거 아니었어?’
‘그냥 지나가는 분한테 찍어달라 했지’
‘언니는 진짜 신기하다.’
동생의 이 질문은
‘부탁’에 대한 나의 생각을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왜 나는 남들에게 부탁하는 걸 어려워하면서
사진과 영상은 적극 부탁할 수 있는 걸까?
부탁을 하는 건 싫지만
부탁을 받는 건 괜찮은 이유는 무엇일까?
특히, 가까운 친구의 부탁은
기분까지 좋아지는데 대체 왜?
내가 그 친구에게 매우 특별한 사람이라는
효능감이 올라가서일까?
몇 가지 스킬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사진 부탁을 하는 건
내게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인데
나만의 사진 부탁 스킬이 있다.
첫 번째 스킬은 ‘셀카’를 찍는
개인 또는 커플을 공략하는 것이다.
“저… 제가 사진 찍어드릴까요?
대신 저도 찍어주세요!”
그럼 흔쾌히 모든 사람들이
‘아 네 감사합니다’ 하며
내게 카메라를 맡기고 포즈를 잡는다.
그럼 나는 가로로 세로로
선 채로, 앉은 채로 열심히 사진을 찍고
당당하고도 자연스럽게
내 카메라를 그들에게 맡긴다.
받고 싶은 것을, 먼저 주는 것
이 황금률의 법칙은
100%의 성공률을 자랑한다.
두 번째 스킬은, 위와 정 반대이다.
내가 먼저 사진 요청을 받았을 때,
역으로 그들에게 제안하는 것이다.
사진 찍을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는데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는 생각에
한 장 남기려는 심보로 이렇게 말한다.
“네네, 찍어드릴게요.
겸사겸사 저도 한 장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쓰다 보니, ‘부탁’이 아닌 ‘제안’에 가깝고
‘등가 교환의 법칙’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세 번째 스킬, 현장을 즐기는
나 홀로 여행자를 공략하는 것이다.
같은 여행지라도 핸드폰만 보는 사람,
미소와 함께 정취와 풍경을 눈에 담는 사람이 있다.
그분들의 감상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저 죄송하지만… 사진 부탁드려도 될까요?
혹시 원하시면, 제가 또 찍어드릴게요!!”
피차일반, 그들도 혼자 왔는데 마침 잘됐다는 듯이
‘모처럼 그럼 한 장만’이라 대답을 하는 이들이 많다.
-
돌이켜 보니 ‘부탁’을 ‘부탁’으로 대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등가교환’의 시선으로 제안/교환/대안 제시를
‘부탁’으로 취급하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부탁이 어려운 내가
왜 그토록 사진과 영상은 남기고 싶어 하는지
그럴 수밖에 없게 된 사건도 떠올랐다.
바로 18살 때부터 25살 때까지
청춘의 시간을 보낸 서울, 도쿄, 타이베이에서의
진짜 모든 사진과 영상 기록들이
클라우드에서 삭제된 걸 발견했던 그때…!
정말 모든 게 사라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