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할머니의 결혼 잔소리 (2)

할머니의 '경제력'

by 비타민들레


“할머니는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언제예요?”


“음… 30대일까나”


“돌아가면 뭘 하고 싶으세요?”


“우선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을 것 같아. 나는…”


“아니! 할머니는 결혼 다시 안 하신다면서

왜 저한텐 얼른 결혼하라고 하세요?”


일본 소도시의 한 이자카야,

저녁을 먹으러 들어간 곳에서

혼자 오신 할머니와의 수다는 계속됐다.


타카마츠의 이자카야에서 할머니와 만난 날


나의 질문에

할머니는 일순 고민에 빠진 얼굴이었다.

손주뻘 아가씨한테는 얼른 결혼하라면서

본인은 다시 돌아가면 결혼을 안 하겠다고 하는

갈대와도 같은 그녀의 마음.


“내 말은, 늦게는 해도 괜찮을 것 같아.

안 하면 외로울 것 같아.

그러니까 아가씨도 30대를 좀 자유롭게 살다가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결혼을 하도록 해.”


할머니는 남편이 돌아가시기 전의

일상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본인은 요리를 잘 못해서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아들이 대학을 다른 도시로 가게 되어

요리에서 해방된 게 그렇게나 좋았다고.

그렇게 할아버지와 할머니만 남은 집에서는

저녁에 늘 ‘외식’을 하셨다고 했다.


그날그날 먹고 싶은 것을

퇴근 후 집에 돌아온 남편과

함께 먹으러 다니는 재미가 참 쏠쏠했다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20년,

혼자 먹고 싶은 것을 해 먹거나 사 먹는 건 ‘편리’하지만

그렇게는 ‘외로움’이 가시지 않는다고 했다.


-


나는 분명 할머니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을 질문했고

할머니는 30대라 답했는데...

흘러나오는 모든 즐거웠던 이야기는 50대 때였다.


어쩌면 사람의 ‘황금기’란

나이, 체력, 젊음 같은 막연한 것들이 아니라

사랑했던 남편과 가장 여유롭고, 무탈했던 매일,

내가 누구와 함께 무엇을 했는는지가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할머니, 그럼 얼마큼 서로 좋아해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예요?

할아버지와의 연애는 어땠어요?”


“아가씨는 쓸데없는 생각이 많네.

젊었을 때 누가 그런 거 생각하고 결혼해.


그냥 할 때 되면 하고, 아이도 낳고,

그렇게 지내다 보면 ‘앗차’ 싶은 순간도 있고,

행복한 것, 아쉬운 것도 다 그때 가서 아는 거지!”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잡생각이 많다며 한 소리 듣고 말았다.


-


따뜻한 사케를 홀짝홀짝 드시던 할머니는

이윽고 우렁찬 목소리로 화제를 바꿨다.


“역시 30대에는 경제력이 있어야 해!”


“오, 어떤 의미인가요 할머니!”


“음… 육아할 때 돈 들잖아? 그거랑 똑같아.

자신을 잘 키우기 위해, 돈을 버는 거야.”


할머니는

내 아이를 키우는 것만큼

나를 계속 잘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하시며

그러기 위해선 ‘돈’이 필수라 했다.


“와 할머니… 방금 하신 말씀 너무 멋져요.”


할머니에게 ‘경제력’이란

배움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

그런 것들이 보장되는 ‘사회’에서

젊음의 활력으로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이윽고, 자리가 가깝던

맞은편 재혼 부부와 점장님까지 한데 어우러진

사람 사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서비스 안주가 계속 나오고

술잔이 바닥을 보이면

할머니와 건너편 부부께서 한 잔씩 사주시니

열심히 먹고, 마시고, 들었다.


-


자기 전, 다시 한번 오늘의 만남을 떠올렸다.


잔소리가 아니라, 유쾌함만 가득한

살아있는 교육 현장이었다.


“자신을 잘 키우기 위해 돈을 버는 거야”


할머니의 말이 자꾸 맴돌며
곧 홀로서기를 앞둔 나는 생각했다.


나도, 나를 잘 키우고 싶다.
지금보다 더 단단하고,
여유로운 어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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