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성’이 마치 ‘수월성’인 것처럼 둔갑해버렸다.

by 비타민들레


인간다움(Humanity)을 함양하지 못하고,

단순히 계층 상승을 위한 지식의 축적에만 매달리는 것은

인문학의 본질을 이탈한 것이다.

-심성보 교수님 (부산 교대)


안녕하세요, 여러분

주디입니다.

오늘은 시민교육론 교재에서 읽은,

심성보 교수님의 ‘휴머니티의 회복을 위한 실천적 인문학’에 대한

글을 읽고 인상 깊었던 문장과 감상을 나눕니다.


큼지막한 주제는 3가지입니다.

1.인문학은 지식 축적이나 개인적 교양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학문이다.

2.오늘날 효율성이 수월성으로 둔갑하며 ‘인간다움’이 약화되고 있다.

3.인문학의 본질은 인간에 대한 성찰과 인간다운 삶의 모색에 있다.


이 중에서도 2번이

제겐 흥미로웠습니다.


이 문장은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를

“더 뛰어나다"로 오해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수님이 말하는 ‘수월성’이란 무엇일까요?


이를 인문학의 맥락과 연결 짓는다면

“인간답게 사는 법을 익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 개념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효율성은 Efficiency, ‘결과 중심’의 가치입니다.


“빠르고 정확한 수행’을 중요시 하는 산업적 가치이자

과정보다 결과, 사람보다 성과를 우선시합니다.


속도와 생산성의 논리가,

인간적 성찰의 여유를 잠식해버린다고 합니다.


예를들어, 학점과 수상 이력/대외 활동 실적으로

‘우수/좋은 학생’을 선정해버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월성은 영어로 따지면 탁월성에 더 가까운 개념인 것 같습니다.


‘Excellence’ 로 바라본다면

‘인간적 성장과 완성’을 향한 가치를 추구하는 부분,

각자가 지닌 가능성을 끝까지 발휘하고자 하는 시도,

‘더 나은 나’가 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타인과의 비교와 경쟁,

속도보다는 깊이와 성숙의 문제이며

지식/기술뿐 아니라 태도, 윤리, 관계 감수성까지 포함한

‘전인적 인간’의 발달을 결과로서 지향합니다.


결국 수월성(탁월성)이란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가치이며

인문학에서 추구하는 학습 목표와 맞닿아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존중하는

교양적 삶의 지향이라는 목표 말이죠!.


인문학의 시초는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가? 사람됨이란 무엇인가?를

사유하게 하는 것이었고

고대 그리스의

지도자 계층의 교육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파이데이아’로 불리는 이 교육은

‘인간됨’과 ‘탁월함(arete)’을 기르는 데 목적이 있었고

소크라테스 -> 플라톤 ->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며

‘탁월한 시민’이 되기 위한 철학적 교육이 실시되어 왔습니다.


이윽고 고대 로마에선 ‘후마티나스’라는 개념을

키케로가 제시하며

인간다운 품성과 사회적 덕목을 지닌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 원리로

발전을 했습니다.


중세에는 계속되는 종교 전쟁으로 인한

사회적 암흑기와 억압속에서

오늘날 미국에서 ‘교양 학부/인문 대학’을 일컫는 ‘Liberal arts’의 개념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자유’와 ‘해방’을 위한 시도와

시민 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인문학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법, 수사학, 논리학, 산술, 기하학, 음악, 천문학이 모두 ‘인문학’이었습니다.


그리고 뒤이은 르네상스에서는

아시다시피 신에서 인간 중심의 문화, 사고,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상인 계급의 활발한 등장으로

실용적/윤리적 인문학이 확산 되고

인간이 되기 위한 문법, 역사, 시, 윤리학 중심의 교육이 성행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인문학의 교육 목표는 어떨까요?


학자 뉴먼은 ‘인문학의 목표’란 유용함이 아니라

‘마음의 자유로운 도야’라고 말합니다.


도야는 도기를 만드는 과정이며,

사람의 몸과 마음의 그릇/수양을 하는 과정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고전 읽기를 넘어

교육이 ‘개인적 앎’에 멈추지 말고

‘삶으로의 실천’으로 확장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닌

도덕적/사회적 ‘좋은 삶(good life)’을 실천할 수 있는 행위 주체로서의

인간을 길러 ‘인문학/교양 교육’의 핵심이라 말합니다.

학식과 지식이 깊다 하여 ‘교양 있는 시민’이라 할 수 없고,

자기 변화와 성찰을 통해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적 행복을 지향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인간다움’에 머무르기 위한 질문은

“당신은 얼마나 효율적으로 잘 살고 있는가?’가 아니라

“당신은 얼마나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 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인간답게 살고 계십니까?

자기 성찰, 변화, 성장을 추구하기 위해 실천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자신에게 해보면,

아직 민주 시민 자질이 턱없이 부족한 저를 마주합니다.

하지만, 추구하는 과정에서 ‘탁월함’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적어도 효율성보다는 ‘탁월함’을 기르고 싶은

저를 알아차리고 노력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을 갖기 위해,

새로운 발견을 시도해 보시기를.


미술관 가기, 책 읽기 등

안 해봤던 것을 해보고, 찾는

여러분의 선택에 의한 모든 시도들이 탁월함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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