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유통사, 오프라인 기획과 영업의 이면
지금의 일이 있기까지 이커머스 판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었다.
중국, 한국, 일본을 포함한 국가 그 어디에선가 싼 값에 제품을 소싱하고 우리 제품으로 라벨링을 하여 글로벌 온라인 마켓에 태워 열심히 판매하던 때가 있었다. 판매처는 미국이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팔리는 가격과 한중일 사이에 시장 가격의 갭이 큰 시장, 카테고리, 아이템을 찾아 데이터를 물리적(?)으로 모으고 분석했었다. 머신러닝, 크롤링 이런 건 딴 세상 능력이었기에 엑셀에 수천수만 개의 숫자를 넣었던 기억이 있다. (아래와 같은 데이터 시트와 대시보드만 수백 개가 넘었으니...)
그땐 그것이 브랜딩인지, 온라인 마케팅인지, 데이터 분석인지, 시장조사인지 잘 모르고 그저 전투적으로 일을 했었다. 항상 시장 기회를 모색하다 보니 새로운 아이템, 트렌드 같은 최신의 자료에 많은 접근 기회가 있었는데 특히 해외 자료를 많이 보다 보니 4년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땐 꽤나 인사이트를 보는 근육이 생겼던 것 같다.
이커머스의 특징은 뭔가 숫자에 대한 피드백, 테스트, 그 결과가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남는다는 점, 국내 해외 가리지 않고 시장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점, 혼자서 커버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넓다는 점 등이 큰 장점이지만 가상의 공간에서 거래가 이루어지고 제한적인 환경 안에서 보이는 정보를 구성하다 보니 오래될수록 실제적이지 않다는 느낌? 결국 실물을 판매한다는 차원에서 펀더멘털이 자꾸 약해지는 그런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내 능력 부족의 원인을 오프라인 경험의 부재로 생각했었던 것 같다(온라인을 더 특화시킬 생각을 하지 못하고 말이다).
자연스럽게 직접적인 교류, 즉각적인 피드백, 입체적인 준비(디자인, 시각 요소들 등)가 필요한 오프라인에 대한 이해를 높이자는 차원에서, 온라인에서의 인사이트 근육을 일부 활용하여 먹히는 아이템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이게 실제로 성공한다면 온/오프라인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온라인은 확실히 성과를 보았었기 때문에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7:3 법칙에 의거,
https://blog.naver.com/dkimishere/221892554136
(위 글은 7:3 법칙에 따른 브랜드 전략에 관한 내용으로 참고용)
기존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의 7을 지키되 대중이 이질적으로 느끼지 않을 법한 3 안에서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아이템을 진짜 새롭게 느끼도록 한다는 전략인데, 오프라인에서 시도한 첫 번째 아이템도 그렇게 탄생했다. 떡이라는 전통의 큰 틀에 있어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소위 다름을 느낄 수 있는 소재에서의 변화, 형태는 전통이지만 본질은 바뀌어 있는 뭐 그런 식으로 접근했다. 거기에 참신함을 더할 수 있는 #청년 이란 이미지, 마지막으로 카테고리를 확실하게 #디저트 로 잡았다. 그래야 젊은 사람들도 반응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의 접근이었다.
시장의 진입과 동시에 소위 반응을 폭발적으로 이끌었고 대형유통사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흔히 말하는 줄 서서 기다리는 그런 귀한 브랜드가 되었다. 백화점 영업을 시작으로 물리적인 영업소를 신생 회사의 규모에 비해 확장적으로 이어 나갔고, 하루에 8곳의 백화점 영업까지 동시에 했었다. 이런 영업을 통한 홍보 혹은 마케팅의 이면에는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인데, 서울 시내의 어떤 주요 백화점에 가도 우리 브랜드가 있었으니 정말 대박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많았을 것이다.
브랜드의 성공적인 시작과 더불어 시장 기회를 엿보던 수많은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유통 시장에서는 패스트 팔로워들, 소위 자본과 경험을 바탕으로 빠르게 카피해서 치고 빠지는 업체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렇게 '디저트' 카테고리의 '청년'들이 하는 '퓨전 떡' 혹은 '베이커리 같은 떡과 한과' 같은 개념을 들고 다수의 브랜드들이 론칭되었다. 이 지점에서 시장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떡 시장에 기여한 바가 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대박 성공의 이면에는 차가운 실패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바로 재무의 함정, 회계에 대한 무지, 즉 원가 계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과 재고 관리의 허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통에 있어 재고관리, 물류, 인적자원 관리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오프라인 매장 운영에 있어 핵심이고, 비용과 이어져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원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그리고 수익과 직결된다. 이 연관관계를 의식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과 물리적인 매장을 운영하면서 실제로 대입해서 즉각 감을 가지고 계산해내는 일은 끊임없이 동시에 해내기가 쉽지 않다.
스타트업의 특성상 적은 인력으로 효율적으로 운영, 관리해야 하는데 오프라인 매장은 스타트업의 개념 범위에서 커버하기가 물리적으로 쉽지 않다. 달리 말해 결국 자원이 충분히 필요한 부분이라는 점이다. 산술적으로 "가능하겠지"하고 추측성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백테스트가 반드시 필요하고 시행착오도 계속 발생한다는 점, 그리고 이런 문제를 즉각 행동 수정하며 보완해나가야 하는데 하루에 8개의 매장이라니, 그것도 오프라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운영한다니 생각만 해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시점에서 내 행동에 대한 합리화라기보다 무식해서 용감했다 정도로 해두자.
서울 강남의 모 백화점은 1~2평 남짓 작은 팝업 매장 한 곳에서 하루 매출을 1500만원, 1000만원 정도로 잡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되기에 영업 준비를 통계에 의거, 조금 욕심 보태어 그렇게 준비하도록 유도한다. 당연히 수수료 받는 백화점의 입장에서는 얼마가 팔리던지 그 비율은 정해져 있다. 그렇기에 숫자로 보아 매출이 높으면 높을수록 좋을 것이고, 팝업 행사를 진행하는 브랜드에서 얼마가 손실이 나건 매출만이 중요하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푸시하게 된다.
그렇게 하루에 크게는 400만원 정도의 손실을 감당해가면서 매장을 운영하게 되었다. 이것도 지나서 계산된 수치이고 매일매일 너무 치열하게 영업하다 보니 정산에 대해 둔감해졌던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덧붙여 대형 유통사들은 대금 정산을 짧게는 +30일, 길게는 +60일(익월 말일)까지도 유예하기 때문에 작은 브랜드들의 현금흐름이 웬만해서는 좋을 수가 없다. 여러 가지 변수들을 고려하지 않고 덜컥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일을 진행한 무식의 참극이었다.
1년 치의 영업을 위한 자본을 준비해서 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박 회사는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현금흐름이 망가지기 시작했고 너무도 빨리 위기를 맞이했다.
대박 영업의 이면에 실패라는 그림자가 드리웠지만 당시에는 이를 실패라고 받아들이지 않고 냉정하지 못했다. 선순환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개선해 나갔고 1년이 지나기 전에 구조적으로 다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실패의 비용은 너무도 참혹했기에 3년이 지난 현재, 이를 실패로 진단하고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대박 성공의 가면을 쓴 실패 2탄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