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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안 정상은 변호사 Dec 29. 2021

붕어빵 쿡방 찍는 변호사


"아니, 붕어빵 장사로 이렇게 돈을 많이 번다구요?"



 손해배상 소송의 첫번째 재판날,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였다. 판사도, 재판 직전 선임된 상대방 변호사도, 정상은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던졌던 질문과 똑같은 의문을 제기하였다.



 사건은 간단하였다. 의뢰인은 평소에는 공사장 노동 등 이것저것 다른 일을 하다가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10월 중순부터 황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3월 초쯤 까지 붕어빵 장사를 한지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다.


 그 해도 붕어빵 장사를 막 시작한 10월, 이 사건 피고의 실수로 의뢰인이 크게 다치어, 11월부터 1월까지 3개월이나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의뢰인은 피고와 손해배상 금액에 대해서 다툼이 있자, 천안 변호사 번영법률사무소를 찾았고,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게 되었다.


 전적으로 피고의 잘못이라는 것과, 병원비, 위자료나 제반사정에 대해서는 다툼이 거의 없고 피고도 인정하고 있었다.


 다만, 의뢰인과 피고 사이에 입장차이가 너무 큰 부분은 의뢰인이 붕어빵 장사를 못하게 된 손해(일실수입이라 한다)이었다. 피고도 상대방이 장사 못하여 본 손해의 금액만 입증되면 모두 지급하려고 하는데, 의뢰인이 너무 많이 요구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의뢰인이 기록한 휴대폰 가계부를 기반으로 붕어빵 장사하여 번다는 순수익은 한달에 6백만원 가량이었다. (실제 금액은 그보다도 많지만, 의뢰인의 영업비밀보호를 위하여 6백만원으로 한다.) 공무원인 신임판사나 검사의 월급보다도 당연히 훨씬 많은 돈이고, 신입변호사 월급보다도 더 많을 수 있는 돈이었다.



 전적으로 의뢰인의 편인 정상은 변호사도 의뢰인이 처음 찾아왔을때 붕어빵 장사가 이렇게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이 의아하여 몇번이고 물어봤다. 그러니 제3자인 재판장도 우리 의뢰인의 적인 피고쪽 변호사도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당연하였다.


 판사 "정상은 변호사님, 일실수입만 정리되면 될 것 같은데, 원고가 쓴 가계부 말고 다른 증거는 없습니까?"


 정변호사 "현재 확보된 자료는 없는데,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첫 재판이 끝나고 돌아와서, 의뢰인에게 재판부의 의견을 전달했다.



 의뢰인은 목 좋은 곳에서 장사하는 붕어빵 파는 사람은 한달에 천만원 넘게도 쉽게 가져간다. 자신은 반죽도 재료도 반제품을 구입하지 않고 직접 만들어서 붕어빵 맛이 훨씬 좋다. 위치도 면밀한 분석을 통해서 좋은 위치로 옮겨가며 장사하며, 고생해서 그만큼 버는 것이다.


 붕어빵 장사하는 사람이면 충분히 이해할텐데, 장사 한번 안해본 판사라 뭘 모른다고 답답해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판결을 내릴 사람은 장사 한번 안해본 판사인 것을.



 천안변호사 정상은 변호사는 의뢰인과 머리를 맞대고 매출을 증명할 자료가 없을까 고민했다. 다른 자영업자라면 세금신고 내역이나 카드대금으로 매출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의뢰인은 노점상에 오로지 현금장사이다 보니 매출에 대한 아무런 자료가 없었다.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고 재판을 포기할 수 없다. 최대한 재판부를 설득할 수 있는 간접증거라도 모아야 하는게 변호사의 역할이다.


 며칠간 고민하던 정상은 변호사에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의뢰인은 매출은 모두 현금이다 보니 핸드폰에 직접 입력하였지만, 비용은 모두 카드로 결제하였다. 의뢰인에게 작년 카드결제 내역을 모두 가져오도록 하였다. 그리고 재료를 구매한 내역을 모두 정리하였다. 장사기간동안 구입한 재료는 밀가루는 Xkg, 팥 Xkg, 슈크림 Xkg, 피자속 Xkg 이런식으로 정리되었다.


 그리고 재료로부터 붕어빵 몇개를 만들 수 있는지 역산하고자 했다. 의뢰인은 기가막힌 생각이라며, 무릎을 쳤다.



 그런데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정변호사 "밀가루 1kg으로 붕어빵 몇개나 만들 수 있습니까?"


 의뢰인 "엥? 한번도 세본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요?"


 아뿔싸, 정작 붕어빵을 직접 만드는 의뢰인도 붕어빵 한개에 재료가 얼마나 들어가는지 모르고 있었다. 인터넷을 열심히 검색하였지만, 믿을만한 레시피도 나오지 않았다. 일단 우리가 직접 만들면서 몇개 나오는지 세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직접 만들어보고, 재판부에 이만큼 재료에 붕어빵 이만큼이 나옵니다라고 주장했을때, 판사가 순순히 믿을 수 있을까? 회의적이었다.


 결국 천안변호사 정상은 변호사와 의뢰인이 고심끝에 내린 결론은 붕어빵 만드는 것을 찍어서 법원에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의뢰인이 직접 붕어빵 반죽하고, 굽는 것을 찍어오기로 하였다. 그런데 혼자 계량하고, 반죽하고 촬영까지 하려니 힘에 부쳐, 정상은 변호사까지 출동하게 되었다.


 의뢰인이 계량을 하여가며 반죽을 하고, 정상은 변호사가 휴대폰으로 촬영하면서 해설을 덧붙였다. 반죽까지 완성한 후 다음날 방문하여 (반죽에 숙성이 필요하다) 몇개나 구울 수 있는지 촬영하였다.


 정상은 변호사가 동영상 편집프로그램으로 간단하게 편집하고, 자막도 씌웠다.



 완성된 동영상은 훌륭한 붕어빵 요리방송, 쿡방(cook방송)이었다. (물론 재미는 없었지만)



 구울 수 있는 붕어빵 수와 재료양을 역산하여 붕어빵 가격을 곱한 후 비용을 빼니 월 8백만원가량이 나왔다. 재료가 남는 경우나 버리는 경우를 고려하면 의뢰인의 주장과 얼추 일치하는 것이다.


 이왕 촬영한 김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의뢰인이 붕어빵 장사를 하는 모습도 촬영하였다. 다행히도 촬영하는 날은 장사가 잘되어 평균매출액을 훌쩍 뛰어넘었다.


 천안변호사 번영법률사무소 정상은 변호사는 재판부에 두 동영상과 역산한 과정을 자세히 정리한 서면을 제출하였다.



 판사는 동영상과 정상은 변호사의 서면을 확인하고 의뢰인과 피고가 합의할 수 있도록 재판대신 조정기일을 열었다.


 조정기일은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논리에 빈틈도 없고, 동영상으로 찍은 근거도 있으니 판사도 상대방 변호사도 의뢰인이 붕어빵 장사로 월 600만원을 번다는 것을 부정할 이유가 없었다.


 판사도 상대방 변호사도 법조생활 하면서 이런 증거를 제출하는 것은 처음 본다며, 웃었다. 어쩌다가 동영상을 찍게되었는지 뭘로 어떻게 찍은 것인지, 혹시 유튜브에 올리려고 촬영한 것인지 한참 이야기 하였다. 의뢰인은 비밀레시피가 들어 있어서 공개는 안 된다고 받아치며 웃었다. 장사비법에 대해서도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정은 서로 조금씩 양보하여 의뢰인과 피고가 모두 만족할 수 있게 종결되었다.



 조정이 모두 종결되고, 법원을 나서려는데 상대방 변호사가 의뢰인을 불러세웠다.


피고변호사 "선생님, 혹시 요즘도 그 동영상 촬영한 그곳에서 장사하시나요?"


 의뢰인 "황사가 시작되면, 장사를 할 수가 없어서 다시 10월까지 장사 안 합니다."


 피고변호사 "아..."


 상대방 변호사에게서 아쉽다는 탄성이 새어나왔다.



 상대방 변호사도 동영상을 보다보니 그 붕어빵이 맛보고 싶어졌었나 보다 ㅎㅎㅎ



 변호사님 제가 막 구운것 먹어 봤는데, 진짜 맛있더라구요. 속으로만 약올리며 사무실로 돌아다.



— 번영만사, 붕어빵 쿡방 찍는 변호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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