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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와레몬나무 Nov 25. 2019

일기는 나의 비밀을 알고있는 친구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글쓰기


카미노 포르투갈을 알기 전까지, 나는포르투갈에 대해서 모르는 곳이 없다고 자부했다. 그곳은 뜻밖의 세상이며, 그동안 내가 누리고 살았던 모든 편리와 안락을 버려야만 하는 곳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가고싶은지 말로는 한계가 있다.  

 카미노는 관광객들한테 보여주기 위한 풍경 대신에 도시의 뒤안길을 걷는다. 뒤안길은 순례자들을 마을의 언덕으로 인도하고, 언덕은 다시 산으로, 산을 넘으면 또 다른 동네가 나오고, 골짜기를 거슬러가면 고속도로에서 보았던 그림같은 집이 있다.  '바로 이런 곳이었구나!'

포르투갈을 남북으로 잇는 고속도로 A1과 동서로 이어진 A9을 달리면 벼랑끝에 바짝 붙어있는 집이 있다. 나는 자동차여행을 할 때마다 벼랑에 있는 집이 어떤 곳인지 궁금했는데 카미노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에보라 쎄(Sé Cathedral은 해골로 만든 성당으로 유명하다) 이곳에 있는 뼈는 당신의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리스본의 동화같은 색감이나 화려함은 없어도 사람냄새가 나는 곳이다. 소박한 세간살이와 어울리지않는 생뚱맞은 붉은색 지붕과 핑크색 담장아래 대가족이 고투리 속의 콩알처럼 나란히 앉아서 볕을 쬐고,  높디높은 퀸타의 높은 담장을 너머 흘러나오는 가족들의 웃음소리를 들을때, 나는 뿔불이 흩어진 나의 가족을 떠올렸다. 대화와 웃음소리가 있는 가족이 얼마만인지! 느낌과 울림은 비단 사람한테만 있는게 아니다. 

풀을 뜯는 말과 눈이 마주칠때, 비오는 날 맨살의 달팽이가 축제인양 길바닥으로 기어나와 관목의 어린 가지에 하얀 꽃을 피울때, 나는 문득 글을 쓰고 싶었다. 일기를 썼다.


 

프란시스코 수도회는 유럽을 휩쓸고 간 페스트로 죽은 사람들의 뼈를 모아 성당을 지었다. 인간의 존재와 운명을 생각하고 죽은 이들의 안식을 기도하기 위함이다.


학창시절 모친은 나와 다섯 살 터울의 오빠와 차별하셨다. 도시락에 들어가는 소세지 반찬부터 식사후 뒤처리는 모친이 할 수 없을때는 나를 지목하셨다. 나는 서럽고 불공평하다고 느낄때마다 일기장에 모친의 욕을 퍼부었다. 그때는 모친이 얼마나 미운지 "엄마'라는 말도 쓰기 싫어서 "She"라고 썼다.   

내가 일기장에 무슨말을 하건, 누구 욕을 하든 나를 꾸짖을 사람은 없었다. 일기장의 유일한 독자는 나 자신이니까. 하물며 글이 질적으로 좋건말건 평가받을 필요도 없기때문에 세상편한 글쓰기 였다. 





 폰트베드라(Pontevedra)알베르그였다.

일기를 쓰기위해 거실로 갔을때, 나는 많은 순례자들이 무언가 쓰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루에 7-8시간을 걸은 사람들이 침대에 뒹굴고 있는것이 자연스러운 일인데 테이블에 모여 글을 쓰고 있다니!  무엇때문에 고단한 몸을 눕히지도 않고 저렇게 앉아서 글을 쓰고 있을까?

그들도 나처럼 풀어놓지 못한 감정과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것이 필요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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