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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와레몬나무 Feb 26. 2021

코블렌츠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울 때 "지금"


여행의 설렘은 카페에서 시작하고, 완성은 날씨다. 커피 한잔의 여유와 사람들의 상기된 얼굴에서 그날의 에너지를 얻고, 날씨가 좋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코블렌츠에 가는 날, 나는 머릿속으로 특별한 카페를 생각했다.  라인과 모젤(Moselle), 두 강이 만나는 곳의 커피는 야생화와 허브의 향기가 있을 것 같았다.






주말 아침, 강은 고요하고 물안개가 자욱하고 밤새 비가 왔는지 길은 질퍽했다. 시작부터 뭔가 꼬이는 것 같더니 아니나 다를까 문을 연 카페가 없었다. 그나마 호텔 레스토랑은 영업을 하고 있었지만 투숙한 손님만 받았다.   

     


“이제 어디로 가지?”

방향을 잃고 어슬렁거리다 한쪽에서 가이드를 대동한 사람들을 발견했다.       

“저 사람들 따라 가볼까?”     





그들이 멈춘 곳은 독일 영토를 동과 서로 나누었던 장벽이었다. 우리는 남북으로 갈려서 휴전선에만 금이 있지만 독일은 사정이 달랐다. 독일의 나누어진 하늘이 하나가 되는 날, 독일은 두 번째 통일을 이루었다.





 첫 번째 통일을 이룬 사람은 근처의 도이치 에크(Deutsch Ecke)에 있다. 빌헬름 1세(Wilhelm 1)의 기마상이 있는데 적진을 향해 곧 진군할 태세이다.





 빌헬름 1세는 프랑스에 짓밟힌 프로이센을 되찾아 나폴레옹이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입성한 것을 되갚아 주기라도 하듯이 그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대관식을 올렸다. 지금 빌헬름 1세의 기마상이 서 있는 곳은 프랑스와 독일 국경선 근처인데 꼭 프랑스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기마상 뒤로 통일된 독일제국의 16개 주 문장이 있고, 강 건너 높은 언덕에는 에른 브라이트 슈타인(Ehrenbreitstein) 요새가 보였다. 지금은 그 사이로 케이블카와 유람선이 다니지만  요새는 코블렌츠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어서 절대 함락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우리는 요새의 이름과 같은 기차역에 차를 세우고 걸어갔다. 10분이나 걸었을까. 포장된 길만 걷다가 흙길을 밟는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큰 산을 오르는 것처럼 가파르다가 동네 뒷산에 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폐허의 아치문을  지나면 맞은편 강, 도이치 에크, 선제후 레지던스가 한눈에 들어왔다.   







마침 요새의 축제기간이어서 마임과 서커스, 작은 퍼레이드가 시간마다 있고, 우리는 긴 행렬에 끼어서 성을 둘러보았다. 요새는 코블렌츠 도시가 그곳에 자리 잡아도 될 만큼 넓고, 사령관이 살던 관저와 부속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몇몇은 레스토랑과 박물관으로 개조되었는데, 박물관은 거창한 주제가 아니라 부엌살림과 먹거리 위주여서 지루하지 않았다.



 그중에서 독일 사람들이 좋아하는 흰색 아스파라거스의 재배와 수확이 흥미로웠다.

식물이 자라는데 햇빛이 필요하고 광합성을 하는 생물은 초록인데 아스파라거스가 흰색이라니! 그것은 흙으로 덮어서 키우고 채취할 때는 흙더미 속에 굵은 철사 꼬챙이를 넣어 낚시를 하듯이 하나씩 낚아채면서 수확하는 것을 보았다.






박물관에서 빵을 굽는 오븐, 와인 등 온통 먹을 것만 보고 나왔더니 배가 고팠다. 축제의 먹거리 장터에서 맥주와 독일 피자 플람 쿠헨(Flammkuchen)을 샀더니, 아침에 문 닫은 카페와 을씨년스러운 날씨 때문에 짜증 났던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돌이켜 보면 코브렌츠에 처음 갔던 그날의 날씨가 가장 좋았다. 그 뒤로 코블렌츠에 4-5번은 갔는데 안개가 자욱하거나 비가 내리고, 심지어 도로가 물에 잠긴 것을 보았다. 심지어 처음 갔던 그날은 남편과 딸아이가 함께였다. 그 이듬해부터 느닷없는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는 1년 반이 지나도록 만나지 못했다.  





여행이 생각처럼 되지 않고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지금”은 앞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날이며, 우리가 사는 날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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