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은 날씨고, 감정은 지형이다

기분이라는 날씨를 감정이라는 지형 위에 쏟아붓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들

by Byline Unknown


밤 열한 시의 시리얼


저녁을 못 먹었다. 야근을 끝내고 집에 도착하니 열한 시가 다 되어 있었다. 밥을 차려먹을 기력은 없고, 배달을 시키기엔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찬장에서 시리얼을 꺼내 우유를 부었다. 그것이 그날의 첫 끼니였다. 아침은 커피로 때웠고, 점심은 회의에 밀려 건너뛰었고, 저녁은 모니터 앞에서 증발했으니. 시리얼을 떠먹으면서 생각했다. 나 지금 꽤 예민하구나.


자각은 불쾌한 냄새처럼 왔다. 낮에 누군가와 대화하는데, 평소라면 흘려보냈을 말의 모서리가 유독 걸렸다. 상대가 날카로웠던 게 아니다. 내 표면이 얇아져 있었다. 시리얼 그릇을 싱크대에 놓고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남은 업무가 있었다. 새벽까지 이어질 게 뻔한 작업을 시작하면서, 낮에 삼킨 말들이 자꾸 떠올랐다. 잠이 부족하고, 밥을 거르고, 해야 할 일의 목록만 늘어나는 며칠이 지나면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낸다. 평소와 같은 온도의 말이 화상을 입히는 상태. 뇌과학에서는 이걸 수치로 설명한다. 수면이 부족하면 편도체 — 위협을 감지하고 반응하는 뇌의 부위 — 의 반응이 60퍼센트가량 증폭되고, 그걸 조율하는 전전두엽과의 연결은 느슨해진다. 브레이크가 헐거워진 상태에서 엔진만 과열되는 것이다.



삼킨 말의 무게


다행히 그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하려던 말을 삼켰다. 뱉었으면 후회했을 문장 몇 개가 목구멍 언저리에서 맴돌다 사라졌다. 대신 그것들이 전부 안쪽으로 돌아왔다. 밖으로 내보내지 않은 날카로움은 소멸하는 게 아니라 방향만 바뀐다. 화살이 과녁을 잃으면 활을 쥔 손을 베듯이, 삼킨 말들은 고스란히 내 기분을 긁었다.


며칠간 그런 상태가 이어졌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떠도 개운하지 않고, 음악을 틀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좋아하는 카페에 앉아도 커피 맛을 모르겠는 그런 날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나는 이게 '기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기분이지, 감정이 아니라는 걸.



날씨와 지형


기분과 감정의 차이를 생각할 때마다 날씨와 지형의 관계가 떠오른다. 기분은 날씨다. 아침에 맑았다가 오후에 흐려지고, 저녁에 비가 오다가 밤에 개기도 한다. 어제의 소나기가 오늘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거짓말처럼 걷히는 것이 기분이다. 휘발성이 강하고, 원인을 특정하기 어렵고, 지나고 나면 왜 그랬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감정은 지형이다. 비가 온다고 산이 깎이지는 않지만, 오랜 시간 같은 자리에 물이 흐르면 골짜기가 패인다. 한 번의 폭우가 절벽을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새겨진 지형은 날씨가 맑아진 뒤에도 그대로 남는다. 누군가에게 던진 칼날 같은 말 한마디가 그런 거다. 내 기분은 다음 날 맑아지겠지만, 그 말을 들은 사람의 감정에는 골이 파인다. 그리고 지형은 좀처럼 복원되지 않는다.


세네카가 『분노에 관하여』에서 쓴 문장이 이 지점에서 겹친다. 그는 분노에 대한 최선의 대응은 지연이라고 했다. 용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판단하기 위해, 잠시 시간을 달라고 자기 자신에게 부탁하라고. 이천 년 전의 철학자가 지금 내 새벽 책상 앞에 앉아 하는 말 같다. 지금 당장 뱉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게 오늘의 날씨인지 내일도 남을 지형인지를 먼저 구분하라는 것.



에드워드 호퍼의 식당


에드워드 호퍼의 Nighthawks라는 그림이 있다. 한밤의 식당에 네 명의 사람이 있다. 각자 피곤하고, 각자 어떤 하루를 보냈을 테고, 각자의 기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기분을 서로에게 쏟아붓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커피잔을 내려다보거나 허공을 바라보며 각자의 날씨를 견디고 있다. 호퍼가 그린 것은 외로움이 아니라 절제였을지 모른다. 내 기분을 타인의 감정 위에 쏟아붓지 않는 사람들의 조용한 품위 같은 것.


물론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삼킨 말은 위장에서 천천히 녹고, 그 과정은 불쾌하다. 참는 동안 나 자신이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든다. 왜 나만 참아야 하지, 라는 생각이 올라온다. 그런데 그 생각마저도 기분이다. 날씨다. 내일이면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참지 못하고 던진 말이 만든 골짜기는 내일도, 모레도, 어쩌면 몇 년 뒤에도 그 자리에 있다.



기상 예보를 읽는 법


요즘 나는 내 기분을 기상 예보처럼 읽으려고 한다. 오늘 흐림, 오후부터 소나기 예상, 내일 맑음. 그 정도의 거리를 둔다. 기분이 나쁘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억누르는 게 아니라, 이것이 날씨라는 걸 인식하는 것. 날씨에 화를 내는 사람은 없으니까.


잠을 못 자서 예민한 건 내 잘못이 아니다. 밥을 거르면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다만 그 날씨를 고스란히 옆 사람에게 전달하는 순간, 날씨는 지형이 된다. 내 구름이 누군가의 땅을 깎는다. 그것은 내 잘못이 맞다.


그래서 꾹 참는다. 이것이 기분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내일이면 나아질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한 번 패인 골짜기에 대해 "미안해"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지형이 복원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노트북을 덮었다. 시계는 새벽 두 시를 넘기고 있다. 기분은 여전히 흐리다. 하지만 내일의 일기예보는 나쁘지 않다. 한숨 푹 자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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