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본값

개발자의 언어로 풀어본 행복의 필터링 방식

by Byline Unknown

방화벽 설정


코드를 쓰다 보면 접근 제어를 설정할 일이 생긴다.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화이트리스트는 기본적으로 모든 것을 차단하고, 허용할 것만 목록에 올린다. 블랙리스트는 반대다. 기본적으로 모든 것을 허용하고, 차단할 것만 목록에 올린다. 둘 다 같은 결과를 낼 수 있지만, 출발점이 다르다. 하나는 "안 된다"에서 시작하고, 다른 하나는 "된다"에서 시작한다.


어느 날 퇴근길 지하철에서 이 구조가 행복에도 적용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통화를 하고 있었다. "요즘 좋은 일이 하나도 없어." 그 문장이 귀에 걸렸다. 좋은 일이 없으면 좋지 않은 날인가. 그렇다면 이 사람의 하루는 기본값이 불행이고, 좋은 일이 생겨야 비로소 행복 목록에 올라가는 구조다. 화이트리스트적인 삶이다.



두 개의 필터


화이트리스트적 행복은 조건부다. 승진을 하면, 여행을 가면, 좋은 사람을 만나면, 맛있는 걸 먹으면. 허용 목록에 오를 만한 이벤트가 발생해야 그날이 행복한 날로 분류된다. 문제는 그런 이벤트가 매일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다. 일주일에 한두 번, 어쩌면 한 달에 몇 번. 나머지 날들은 전부 기본값인 "불행"으로 처리된다. 허용 목록에 없으니까.


블랙리스트적 행복은 반대 방향에서 출발한다. 기본값이 행복이다. 오늘 큰 사고가 나지 않았고, 심하게 아프지 않았고,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그날은 행복한 날이다. 차단 목록에 해당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모든 날은 허용된다. 이쪽의 기본값은 "행복"이다.


말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1년 365일에 이 필터를 걸어보면 차이가 선명해진다. 화이트리스트로 사는 사람의 1년에는 행복한 날이 서른 개쯤 있고, 나머지 삼백삼십오 일은 회색이다. 블랙리스트로 사는 사람의 1년에는 불행한 날이 서른 개쯤 있고, 나머지 삼백삼십오 일은 괜찮다. 같은 365일인데 색이 완전히 뒤집어진다.



빵과 커피


에피쿠로스라는 철학자가 있다. 쾌락주의자라는 오해를 많이 받지만, 그가 말한 쾌락은 파티와 향락이 아니었다. 그가 추구한 것은 아타락시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였다. 고통이 없는 상태가 곧 쾌락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뒤집어 말하면, 행복을 위해 무언가를 더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빼면 된다. 고통을, 불안을, 공포를. 남은 것이 이미 행복이니까. 이천사백 년 전 사람이 블랙리스트적 행복론을 말하고 있었던 셈이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사소한, 하지만 도움이 되는」에는 아들을 잃은 부부가 새벽녘에 제과점에 앉아 빵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제빵사가 갓 구운 빵을 내밀며 말한다. "이런 때에 먹는 건, 사소하지만 도움이 됩니다." 비극 한가운데서 따뜻한 빵 한 조각이 위안이 되는 순간. 카버는 거기서 멈춘다. 행복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는다. 다만 불행의 한복판에서 불행이 아닌 순간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만으로 견딜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도 비슷한 장면을 안다. 아무것도 잘 풀리지 않는 한 주가 지나고, 토요일 아침에 동네 카페에 앉아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는 순간. 별다른 좋은 일이 생긴 건 아니다. 다만 나쁜 일이 잠시 멈춰 있다. 커피가 맛있고, 햇살이 테이블 위에 비스듬히 걸쳐 있고, 급하게 가야 할 곳이 없다. 화이트리스트에 올릴 만한 이벤트는 아니다. 그런데 이게 나쁜 시간인가. 아니다. 이건 분명히 좋은 시간이다.



기본값의 문제


심리학에는 헤도닉 트레드밀이라는 개념이 있다. 브릭먼과 캠벨이 1971년에 만든 용어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과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사람을 추적 조사했더니, 일정 시간이 지나면 둘 다 원래의 행복 수준으로 돌아왔다는 연구다. 인간에게는 행복의 기준선이 있고, 어떤 사건이 와도 결국 그 기준선으로 회귀한다.


이걸 다르게 읽으면 이런 뜻이다. 화이트리스트에 아무리 많은 이벤트를 올려도, 행복 수준은 결국 기준선으로 돌아온다. 승진의 기쁨은 석 달을 넘기기 어렵고, 새 차의 설렘은 반년이면 사라진다. 허용 목록을 아무리 두껍게 쌓아도 체감 행복은 제자리로 돌아온다.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는 것처럼, 아무리 뛰어도 풍경이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방향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허용 목록을 늘리는 대신, 기본값을 바꾸는 거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의 상태를 "불행"에서 "행복"으로 옮기는 것. 코드로 치면 `let happiness = false`를 `let happiness = true`로 고치는 거다. 단 한 줄의 변경인데, 시스템 전체의 작동 방식이 달라진다.



오늘의 로그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했다. 빨래를 돌리고, 잠깐 뉴스를 보고, 책을 몇 페이지 읽었다. 쓸 만한 문장을 하나 발견해서 밑줄을 그었다. 창밖에 비가 왔다가 그쳤다. 특기할 만한 사건은 없었다.


차단 목록을 점검해 본다. 사고, 없었다. 큰 다툼, 없었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 없었다. 블랙리스트에 해당하는 항목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오늘은 행복한 날이었다. 아마 내일도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행복한 날일 것이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주변을 보면 허용 목록이 비어 있다고 한숨 쉬는 사람이 많다. 오늘도 좋은 일이 없었다고, 이번 주도 그냥 지나갔다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방화벽 설정을 바꿔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기본값만 뒤집으면 같은 하루가 전혀 다른 색으로 보일 텐데.


물론 이것은 고통 앞에서도 웃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진짜 불행이 왔을 때는 불행하면 된다.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날은 그냥 나쁜 날이다. 다만 그런 날이 아닌 대부분의 날들을, 허용 목록이 비었다는 이유만으로 회색 처리하는 건 아깝다는 거다.


별일 없는 하루가 끝났다. 그리고 별일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괜찮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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