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마를 건너는 법

웹소설 연재 일주일째, 조회수라는 심마가 찾아왔다.

by Byline Unknown

새벽 두 시의 대시보드


연재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매일 밤 글을 올리고, 새벽에 눈이 떠지면 제일 먼저 조회수를 확인한다. 숫자가 어제보다 조금 올랐다. 조금. 우상향이라고 부르기엔 각도가 너무 완만하다. 옆에 랭킹에 걸린 작품들의 숫자를 보면 자릿수가 다르다. 그 차이를 확인하는 순간, 무협지에서 읽었던 단어가 떠올랐다. 심마.


30여 년 가까이 판타지와 무협을 읽어왔다. 머릿속에는 대륙 하나를 채울 수 있을 만큼의 세계관이 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빈 문서 앞에 앉으면, 그 거대한 세계가 손가락 끝에서 멈춘다. 생각과 문장 사이의 거리가 이렇게 멀 줄은 몰랐다.



내공이 역류하는 순간


무협지에서 심마는 수련 중에 마음속 잡념이 기의 흐름을 방해하는 현상이다. 더 깊이 빠지면 주화입마에 이른다. 내공이 역류하고, 쌓아온 것이 자기 몸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재미있는 건, 심마가 찾아오는 시점이다. 초보 무인에게는 오지 않는다. 어느 정도 내공이 쌓이고, 다음 경지로 넘어가려는 순간에 온다. 그러니까 심마는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 셈이다.


웹소설 조회수를 들여다보며 흔들리는 이 마음이 심마라고 부르기엔 좀 거창하다는 걸 안다. 아직 쌓은 내공이랄 것도 없으니. 그래도 증상은 비슷하다. '소재가 잘못된 건 아닐까.' '제목을 바꿔볼까.' '다 엎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어떨까.' 이 생각들이 한 번 돌기 시작하면 고리처럼 이어진다. 그리고 그 고리의 끝에는 언제나 같은 유혹이 있다. 그만두는 것.



눈을 가리고 코끼리를 만지는 일


비슷한 경험이 있다. 처음 개발을 배울 때 프론트엔드로 시작했다. 화면에 뭔가 나타나는 게 신기했지만, 전체 구조는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가리고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았다. 코를 만지면서 코끼리의 전부를 안다고 착각할 수도 있었고, 다리를 만지면서 이건 나무 기둥이라고 단정할 수도 있었다.


첫 취업 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백엔드로 넘어갔다. 기존에 알던 것과 충돌하는 지점이 있었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도 있었다. 서버가 요청을 받고 데이터를 꺼내 응답을 돌려주는 그 과정이, 처음엔 화면 뒤에 숨어 있는 어둠 같았다. 1년, 2년, 3년. 꾸역꾸역 버텼다. 어느 날 문득 코끼리의 실루엣이 보였다. 전부를 아는 건 아니다. 아직 멀었다. 그래도 코에서 시작해 꼬리까지 한 번 훑고 나니, 다시 코를 만졌을 때의 감각이 전혀 달랐다.


스티븐 킹이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쓴 문장이 있다. "어렵다는 이유로 작업을 멈추는 건 나쁜 생각이다." 그는 이렇게도 덧붙였다. "삽으로 앉은 자리에서 똥을 퍼내는 것밖에 못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도, 사실은 괜찮은 일을 하고 있을 때가 있다." 첫 소설을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말은 '더 잘 쓰라'가 아니라 '멈추지 말라'인 모양이다.



취향과 실력 사이의 간극


아이라 글래스라는 미국의 라디오 프로듀서가 한 말이 있다. 창작을 시작하는 사람은 대부분 좋은 취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세계에 발을 들인다. 그런데 처음 만드는 것은 그 취향에 미치지 못한다. 취향의 눈이 실력의 손보다 앞서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이 간극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둔다.


30년간 읽어온 것들이 정확히 이 구조를 만들었다. 좋은 문장이 어떤 것인지 안다. 잘 짜인 서사가 어떻게 독자를 끌어당기는지 안다. 그래서 내가 쓴 문장을 읽으면 부족한 지점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 간극이 심마의 정체다. 읽는 눈은 수십 년치인데, 쓰는 손은 일주일치다. 당연히 괴리가 생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스물아홉에 재즈바를 운영하면서 첫 소설을 썼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다. 정식으로 문학 수업을 받은 적이 없다. 야구장에서 불현듯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집에 돌아와 쓰기 시작했다. 처음 쓴 원고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영어로 다시 썼다고 한다. 모국어로 쓰면 익숙한 문장의 관성에 끌려가니까, 일부러 서툰 언어로 뼈대를 세운 것이다. 첫 작품은 원래 서투른 법이고, 서투른 채로 끝까지 가본 사람만이 다음 문장의 감각을 얻는다.



완결이라는 먼 산


조회수 그래프를 다시 본다. 여전히 완만하다. 그래도 어제보다는 올랐다. 이 완만한 선이 의미 있는 각도를 그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간을 버티려면 원칙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만 정했다. 첫 웹소설은 완결까지 간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소재를 바꾸고 싶은 마음, 제목을 고치고 싶은 마음, 전부 엎고 싶은 마음. 다 안다. 그 마음이 올 때마다 떠올리는 건, 코끼리 앞에서 눈을 가리고 서 있던 때의 기억이다. 코만 만지작거리다 돌아섰으면 코끼리가 어떤 동물인지 영영 몰랐을 것이다.


완결까지 가보는 것과 시작점에서 맴도는 것은, 같은 시간을 쓰더라도 전혀 다른 곳에 도착한다. 아직은 가설이다. 증명은 완결한 뒤의 내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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