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같은 계절이 나를 찾아오는 일

사람의 축하가 아닌 계절의 리듬이 건네는 인사

by 사월의일곱번째날

축하에 서툰 사람의 4월


생일을 챙기지 않는 편이다. 케이크도, 파티도, 촛불 앞에서 소원을 비는 일도 어느 시점부터 멀어졌다. 스물다섯쯤이었을까.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이 불쾌한 게 아니라, 축하라는 형식이 점점 몸에 맞지 않게 됐다. 생일 축하 문자에 답장하는 것도, 고마워요라고 말하는 것도 어색하다. 관계가 싫은 게 아니라 의례가 어려운 쪽이랄까.


그런데 한 가지, 내 생일에 대해 꽤 흡족하게 여기는 점이 있다.

4월 7일은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와 겹친다는 점.



올해의 봄은 정시에 도착했다


고맙게도 아내가 내 생일에 맞춰 휴가를 냈다. 평일에 둘이 나란히 걷는 일은 생각보다 드물어서, 그것만으로도 하루가 달라지는 기분이었다. 함께 맛있는 걸 먹고, 카페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곳곳에 벚꽃이 만개한 호수공원을 걸었다. 평일인데도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기대했던 것보다 바람이 차가웠지만, 나무 아래를 지날 때마다 분홍빛이 시야를 채웠고 함께 걷는 이가 있었으며, 그런 오후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거창한 이벤트 같은 건 없었는데도 그저 좋았다.


올해 서울의 벚꽃 만개 시점은 4월 7일에서 10일 사이. 생일과 만개일이 거의 정확히 포개진 셈이다. 물론 해마다 이렇지는 않다. 벚꽃에는 적산온도라는 것이 있어서, 3월의 기온이 높으면 일찍 피고 낮으면 늦게 핀다. 만개일은 고정된 날짜가 아니라 그해 봄의 체온에 따라 조금씩 움직이는 변수다. 어떤 해에는 내 생일에 절정이고, 어떤 해에는 아직 봉오리 상태이고, 또 어떤 해에는 이미 꽃잎이 보도블록 위를 굴러다닌다.


그 느슨한 겹침이 좋다. 대략 맞지만 정확히는 다른 것.


음악에서 말하는 변주와 비슷하다. 같은 멜로디가 돌아오지만 화성이 조금씩 바뀌고, 연주자의 손끝에서 미세하게 달라지는 것. 재즈 스탠더드를 여러 뮤지션이 연주하면 곡은 같아도 질감은 전혀 다르듯이, 벚꽃이라는 주제는 해마다 돌아오되 올해의 기온과 올해의 바람이 만든 올해만의 연주가 된다.



앞을 향해 회상하는 일


키르케고르는 『반복』에서 이런 말을 했다. "회상은 뒤를 향해 반복하고, 반복은 앞을 향해 회상한다." 기억이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라면, 반복은 같은 것이 다시 찾아올 때 새롭게 만나는 일이다.


벚꽃이 피는 건 작년 벚꽃의 복사본이 아니다. 올해의 기온과 올해의 바람이 만든 올해만의 꽃이다. 나는 해마다 같은 나무 아래 서지만, 작년의 내가 아닌 올해의 내가 그걸 본다. 반복처럼 보이는 것 안에 미세한 차이가 쌓이고, 그 차이가 시간의 결을 만든다.


생일도 마찬가지다. 날짜는 매년 같지만 그날을 맞는 마음은 매번 다르다. 스물여덟의 4월 7일과 서른여덟의 4월 7일은 같은 좌표 위에 찍히지만 전혀 다른 지점이다. 달력은 원을 그리지만 사람은 나선을 그린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축하


생일을 챙기지 않는다고 했지만, 벚꽃이 피면 좀 다른 기분이 든다. 사람이 건네는 축하에는 응답이 필요하다. 고맙다고, 잘 보내겠다고, 뭔가 말을 돌려줘야 한다. 그런데 계절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냥 피고, 며칠 있다가 진다.


일본어에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라는 말이 있다. '지나가는 것들 앞에서 느끼는 아련한 감각.' 벚꽃이 한 달을 버틴다면 그건 그냥 가로수일 텐데, 일주일 남짓 피었다가 떨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올려다본다. 짧음이 시선을 만드는 것이다. 축하도 비슷할지 모른다. 해마다 돌아오지만 며칠이면 지나간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창밖을 한 번 더 보게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의미 없음이 주는 자유


생각해보면, 내가 벚꽃이 피는 시기에 태어난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부모님의 타이밍과 산부인과의 스케줄이 만든 우연일 뿐이다. 하지만 의미가 없다는 게 오히려 편하다. 의미가 없기 때문에 해마다 내 마음대로 이야기를 붙일 수 있다. '올해는 만개와 겹쳤으니 꽤 괜찮은 해가 될 것 같다'같은, 근거 없는 낙관을 할 수 있다. 내년 생일날 벚꽃이 아직 봉오리라면, 그때는 또 다른 문장이 만들어지겠지.


해마다 비슷한 시기에 돌아오지만 매번 조금씩 다른 것. 벚꽃도, 생일도, 봄이라는 계절도. 곁에 있는 사람과 함께 창밖을 한 번 더 보는 것. 올해의 축하는 그 정도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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