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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te Aug 16. 2021

출산 후 자살을 생각했다.

난 그러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산후 우울증. 정말 많이 들어봤다. 하루 종일, 말이 안 통하는 아가와 있다 보면 한없이 우울해진다는 증상. 출산 후 한참 아가를 돌보다가 찾아올 수 있는 그런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주변에 우울증을 겪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나는 다르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출산하고 바로 내가 겪었던 경험이다.


양수가 새어 나왔다. 남편과 짐을 챙겨 병원으로 갔다. 나보다 더 긴장한 남편과 함께. 미국답게 개성 강한 보라색 숏컷 머리의 의사가 테스트룸으로 들어와 양수를 확인했고 분만실로 옮겨졌다.


남편과 여전히 웃고 떠들며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힘들었던 임신이 끝났다는 기쁨과 기다리던 우리 아기를 만날 거란 생각에 우리 둘은 들떠있었다. 피토신(자궁수축제)이 투입되고, 에피듀럴(무통주사)를 맞았다. 진진통을 느껴보지도 못한 채, 무통주사의 힘으로 통증 없이 출산했다.


조그마한 아기가 내 품에 안겼다. 출산은 끝났고, 남편과 나는 이 작은 생명체와의 만남을 즐겼다. 그 뒤로 아기와는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미국의 병원은 아기가 아프지 않는한 항상 부모와 함께한다.


출산은 끝이 났지만 나는 식사를 할 수 없었다. 출산 중에도 소변줄을 꽂으며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출산 후 물만 마셔도 토를 했다. 간호사는 호르몬 때문이라 했지만, 에스트로겐의 변화 때문인지 무통주사의 부작용인지 알 수 없었다.


회복실로 옮겨졌다. 새로운 간호사를 만났다. 또 한 번 물을 먹자마자 토했다. 그런 내게 간호사는 소변을 보라고 강요했다. 소변줄을 꼈다 뺐으니 소변이 잘 나오나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이리라. 출산으로 12시간 가까이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 소변 강요는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런 내가 물도 못 먹으니 간호사는 antinausea(구토예방제)를 주겠다며 내 링거 꼽는 팔에 구토예방제를 꽂았다. 팔이 무척 아파왔다. 투여는 멈춰졌고 나는 순간 몸이 뜨거워졌다.


간호사의 체온 체크에 변화가 없었다. 실제 열이 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더웠고 뜨거웠다. 물은 마실 수 없었고 시원한 공기가 필요했다. 숨이 막혀왔다. 시원한 바람을 쐬지 않으면 정신이 돌아버릴 것 같았다. 간호사에게 창문을 열어달라고 했고 나는 병실을 뱅뱅 돌았다. 간호사는 병원의 창문은 열리지 않는다며 작은 선풍기를 틀어줬다. 나아지는 건 없었다. 병원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내가 긴장을 푸는 순간,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이런 게 미쳐가는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이런 내 상황도 모른 채,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그치지 않는 아기의 울음은 날 더 힘들게 만들었다. 난 정신줄을 놓칠까 봐 전전긍긍하는 상황이었다. 밤샘 출산으로 뻗었던 남편을 깨웠다. 아기 경험이 전무한 남편이 이제 막 만난 지 6시간 된 아가를 달래느라 애쓰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뜨거운 몸이 진정됐다. 이건 단순히 내 정신력으로 버틴 거였다. 남편도 아기의 울음을 간신히 멈췄다. 병실은 조용해졌다. 간호사는 구토예방제 투약을 포기한 뒤 돌아갔고 방의 불은 꺼졌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잠은 오지 않았다. 더운 건 진정이 됐지만, 불안감은 여전했다. 내가 이렇게 불안정한데, 저 아기는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로 내 머릿속은 가득했다. 나의 내일은 계속 지금과 같을 것만 같았다. 나는 불안하고 아기의 울음은 그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렇게 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냥 그만하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집 테라스에서 뛰어내리고 싶다고 수없이 생각했다.


계획임신이었다. 아기를 갖고 싶었고 임신이 무척 기뻤으며, 출산만 기다렸다. 육아서적을 여러 권 읽어가며 아가만 만나기를 바랐던 나다. 그런 나도 이런 순간 죽음을 생각했다.  


출산 후 다음날 저녁, 나는 퇴원을 했다. 병원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집에서도 나의 이 불안감은 여운이 남았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감과 이런 삶을 버텨야 한다는 현실이 섞여 우울감으로 바뀌었었다. 다행인 건 자살충동은 병원에서만 있었다는 것.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커뮤니티를 찾아보니, 출산 직후 많은 엄마들이 울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패닉을 겪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패닉 후에 찾아오는 우울감은 비슷했다. 출산을 하면 에스트로겐 수치가 급격히 줄어든다. 이러한 호르몬 변화로 출산 후 2주간은 우울감이 찾아온다고.


감사하게도, 교과서처럼 2주가 지나가니 나의 정서는 안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에도 할만하겠냐는 질문에는 쉽게 답을 할 수가 없다. 출산은 쉬웠지만, 병실에서의 내 패닉은 트라우마가 되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기억의 되새김질로 인해 끔찍한 기억이다. 이 기억이 무서워서 입에 담지도 못해 남편에게 내 경험을 얘기하기까지도 며칠이 걸렸다. 생각만하면 눈물이 났고, 다시금 머리속에 떠오르고 싶지 않았다. 원인이 호르몬인지, 무통주사의 부작용인지, 간호사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다시 한번 겪기엔 너무 무서웠던 삼킬 수 없는 기억, 언젠가 추억으로 남을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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