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보다는 쉬울 줄 알았지.
출산한 지 12주. 울 아가도 12주 차. 모유 5%와 분유 95%로 혼합 수유 중. 잘 먹던 분유에 정체기가 찾아왔다. 하루 900ml 정도 먹던 녀석이 갑자기 500대로 가더니 600, 그나마 700대를 먹는 거였다.
밤에 수유할 때 용량을 갑자기 올려서 그런가. 분유 젖꼭지 단계를 높여서 그런가. 분유 주는 자세 때문인가. 원인도 모르겠으니 자책은 물론,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녔다. 다들 전처럼 돌아올 거라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했지만, 확신할 수 없는 불안감에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그런데, 분유는 잘 먹지 않아 속 썩이는 아기가 괜히 내 가슴만 쳐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모유를 원하는 걸까? 가슴을 물려주었더니 아기가 열심히 빨기 시작했다. 모유를 원하는 거였니? 이거라도 먹어주는 아기가 너무 고마웠다. 아아.. 모유를 더 주고 싶어라.
갑자기 완모가 하고 싶어 졌다.(12주 차에 이러는 건 차암 늦은 거다. 나도 안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기를 내 품에 오래오래 안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후회하기 전에 다시 해보자.
남편에게 달려가 얘기했다. "더 늦기 전에 완모를 도전해보겠어!" 하지만, 남편의 대답은 "NO". 보통 반대 아닌가? 보통은 남편들이 완모를 원한다는 데, 완모 하겠다는 아내를 반대하다니.
남편의 이유는 확실했다. 내가 완모를 하려고 직수만 하다 보면 모유양이 적어 아기가 배고플 것이니 그건 안된다고. 일리가 있었다. 완모를 하려면 아기가 배고파할 때마다 물려야 한다. 갓 태어난 신생아의 경우 2시가 30분마다 물리라고 배웠다. 그때야 아기가 먹는 양이 매우 적으니까 같이 늘려가면 됐는데, 지금은 먹는 양이 엄청(?) 나니 완모를 하려면 내 젖꼭지를 아기 입에 하루 종일 부착시켜놔도 충분한 양이될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 늦기 전에 하고 싶다고, 후회하기 전에 해볼만큼 하고 싶다고 의지를 보였다. 결국, 우리는 유축으로 하기로 합의했고, 나는 아직도 ing 중이다.
완모를 이렇게 원하면서 왜 진작하지 않았을까 다시금 기억을 되새겼다.
첫째로 짧으면서 함몰된 나의 슬픈 유두. 신생아가 물기엔 너무 어렵게 생긴 모양으로 당연히 아기는 물기 어려워했다. 유두보호기도 썼고, 보호기 안에 분유도 흘려보내 줘 봤지만 아기는 오래 물지 못했다. 결국 분유 보충의 의존했다.
둘째로, 모유양이 매우 적었다. 유축이라도 빨리 시작할 걸, 왜 유축에 거부감이 있던 건지. 그래서인지, 젖 도는 것도 늦게 돌았고, 유축한 양은 매우 적었다.
셋째로, 모유양 늘리자고 물리 고만 있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출산 후 회복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도넛 방석에 앉아 아기에게 젖을 물린다. 양이 부족하니 분유도 주고, 트림도 시킨다. 그 뒤에 유축을 하고 나면 어느새 다음 수유 텀이 돌아왔다. 게다가, 새벽까지 지속되는 반복으로 잠도 부족해 나는 너무 예민해졌다. 그뿐인가, 젖꼭지 통증도 엄청났고, 방광염도 생겼으며, 산후 우울감은 여전했으니 나도, 그걸 지켜보는 남편도 힘들어했다. 다들 어떻게 하나 모르겠다.
넷째로, 모유수유에 그렇게 간절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젖병 세척이 싫어서 모유수유를 외쳤던 나지만, 부족한 체력을 이길 만큼 아가를 아끼는 맘이 덜했던 것 같다. 아기는 예뻤다. 하지만, 모성애가 뿜뿜하다기 보다, 작은 생명체에 대한 책임감으로 돌보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안 보면 보고 싶을 정도로 눈에서 꿀이 떨어지지만 그땐 그랬다.
둘째는 완모 할 수 있을 것 같다! 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다시 유축을 시작한 지금, 둘째는 더욱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도 역시 모유, 분유, 유축을 반복하는 사이클로 지금보다 잠을 더 못 자고 있을 상황에 첫째까지 있으니... 둘째 때 완모를 하겠다는 미래는 썩 밝진 않구나를 깨닫고 있다.
임신 때는 가장 무서운 게 출산이었고, 출산만큼 어려운 건 없을 거라 생각했는 데 모유수유는 레벨이 다른 어려움이었다. 근데 왜들 그리 모유수유를 잘하는지. 조리원이 가르쳐주나? 산후도우미가 가르쳐주나? 그냥 선천적인 거니. 흐음...
유축을 다시 시작한 지금도 잠을 줄여가며 하고 있다. 아기가 원해서 모유를 늘리는 게 아닌, 내 과한 욕심으로 없는 시간 쪼개가며 유축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도 조금은 늘고 있으니 좋긴 한데, 누굴 위한 고생인가 싶기도 하다.
모유양이 느는데 12주가 한계라고 한다. 내 결심이 조금만 늦었다면 시도조차 안 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늘고 있으니, 어느 정도까지는 해보자고.
추신. 아기는 분유섭취량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내 젖꼭지를 잘 물지 않기 시작했다. 젠장. 난 누구를 위해 유축하고 있는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