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을 미처 다 헤아릴 수 없을지라도 1
정시가 막 지났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새벽 시간에 전화할 사람은 몇으로 정해져 있다. 친한 친구 몇 뿐이다. 그러나 발신번호에 찍힌 이름은 친구가 아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그녀의 이름을 보게 되었다. 다름 아닌 옛 애인인 것이다. 핸드폰에는 고등학교 때, 사귀었던 첫사랑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새삼, 그녀와의 연애에 대해 얘기하자면 며칠은 필요하다. 그러니 요약해 말하자면 이렇다. 그녀와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시절까지 헤어졌다 만나기를 반복했었다. 지난한 만남이 끝난 것은 이십대 중반 이후의 일이다. 지금 내가 31살이니, 연도로 따지고 보면 6년 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동창이라는 것이 참,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녀와 연락은 하지 않았어도 동창끼리 만나는 자리에서는 종종 서로 얼굴을 보고 인사 정도는 나눴다.) 어쨌든, 옛 애인의 이름을 멀뚱 바라보며 나는 고민했다.
‘받을까 말까.’
여기서 잠깐, 혹시 누군가는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왜 옛 애인 번호를 지우지 않았나. 그녀의 번호를 지우지 않은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혹여 연락이 오면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 말은 즉, 한 번씩 연락이 올 때가 있었다는 건데, 그때마다 나는 받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의문일 수 있는 건, 핸드폰 번호이다. 그동안 핸드폰 번호를 바꾼 적 없나? 그렇다. 나는 고등학교 때 처음 핸드폰 번호를 개설한 이후, 단 한 번도 번호를 바꾼 적 없다.
번호는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아무튼 그녀의 연락을 받지 않았는데, 그랬는데 그래왔는데, 근데 왜일까? 굳이 연락을 받을 필요가 없음에도, 나는 고민했다. 뭐랄까, 왜 그런 때가 있지 않은가. 괜히 마음이 걸리는 그런 때, 무슨 일이 있을 것만 같은 때 말이다. 결국 나는 꺼림칙한 마음으로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는 조심스레 말했다. 늦은 시간 옛 애인의 카톡 문자는 보통 ‘자니?’로 시작한다는데, 전화 통화 역시 그랬다.
“보영이야? 안 자네?”
“응.”
목소리도 그렇고 발음도 그렇고 그녀는 알코올에 자작하게 젖어 있었다. 술을 꽤 마신 듯했다. 그리고 나는 이어진 그녀의 말에 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전화를 안 받아.”
당최 무슨 소린가. 나는 잠자코 있었다.
“고등학교 때 애들이 아무도 전화를 안 받는다구... 아무도!”
그녀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전화를 받기 전, 느꼈던 어떤 예감은 맞아떨어진 셈이지 않나.
“왜,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나는 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계속 울면서 말을 이었다.
“나도 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런데 못하게 됐어.”
그녀도 나처럼 글을 썼다. 이십대 후반에 결혼을 했고, 아이를 가졌고 낳았고, 육아를 도맡아 했다. 동창들의 입을 통해 전해 들어온 그녀의 생활이랄 건, 거의 육아가 전부였다. 나는 그녀에게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음을 짐작하며, 울고 있는 그녀에게 말했다.
“왜, 잘 안 됐어?”
“보영아 너도 알잖아. 나 드라마 작가 하고 싶었던 거. 이번에 아는 사람이 드라마가 잘 됐어. 그래서 그 사람이 도와주겠다고 했거든? 그래서 나도 다시 한번 도전해보려고 했어. 근데...”
“근데 왜 무슨 일인데.”
“남편이... 남편이 사고를 쳐서 못하게 됐어.”
여기서 어떤 사고인지는 그녀의 사생활이므로 자세히 말하지 않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녀는 드라마 작가를 못하게 됐다. 드라마 작가 아카데미에 합격해서 들어가기 직전이었는데,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니까 그녀는 본인이 하고 싶은 일(글쓰기)을 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남편의 어떤 일로 인해 그것을 못하게 됐고, 육아도 그렇지만 자신이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리고 일하게 된 회사 사람들과 만났고, 회식자리가 있었다. 술을 마셨다. 고등학교 동창들에게 하소연하고 싶어 전화를 했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결국 내게 전화했다. 긴가민가해서 전화를 했는데, 내가 그걸 또 받았다.
나는 일단 울고 있는 그녀를 달랬다. 우는 와중에 그녀는 내게 건강은 좀 나아졌냐고 물었다.(몇 해 전, 나는 희귀병을 앓았다. 두 번의 뇌수술을 했다.) 그녀는 병문안 가고 싶었는데, 어째 모양이 이상한 것 같아서 가지 못했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첫사랑. 세월로 치면 이제 10년도 넘은 일인데, 이상할 게 있긴 뭐가 있을까.’ 한편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녀는 한동안 더 울었다. ‘음 어째 이게 더 모양이 이상한 것 같은데...?’
꿈꾸던 일을 못하게 된 그녀의 심정을 생각해 보았다. 속상하고 억울하고 분한, 복잡다단한 마음. 내가 그것을 다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잠시 그녀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았다. 그녀가 원래 하고 싶었던 것은 글쓰기. 드라마 작가이다. 헌데 결혼을 하게 됐고, 아이를 낳았다. 동시에 그녀는 글쓰기를 손 놓게 되었다.
반면,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걸 한다. 뚜렷한 결과가 없는 글쓰기지만, 나는 계속 쓰고 있다. 그런 나는 육아의 고된 손길을 감히 알 수 없다. 나는 최근에 읽은 장류진의 「연수」라는 단편소설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카페에서 육아용품들이 거래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입던 팬티까지 사고파는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 어떤 커뮤니티의 글에서 남편의 팬티를 빨 때마다 미세하게 똥이 조금씩 묻어 있어 정나미가 떨어진다는 푸념을 본 적이 있었다. (...) 아마 내가 비혼을 결심하게 된 건 인터넷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생생하게 전해주는 기혼의 삶을 들여다봤기 때문일 것이다. (...) 안쪽에 똥이 묻어 있는 성인 남자의 후줄근한 트렁크 팬티를 상상하자 참혹함에 온몸이 떨려왔다. 나는 재빨리 로그아웃 버튼을 누르고 브라우저를 닫았다. 남아 팬티 한 개 천원 열 개 팔천원의 세계로부터 황급히 빠져나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난 내 팬티만 빨면 돼. 그건 팬티 한 장만큼 가벼운 일이었다.
장류진, 「연수」 中.
(강화길 외 지음,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2020. 260쪽.)
소설에서는 육아에 처한 여성의 삶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읽으면서 한 번씩 뜨끔했다.
‘기혼의 삶이라...’
그것을 다 알 순 없지만, 그래도 소설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가족 구성원 속, 여성의 삶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위 구절을 통해 가족 내의 여성의 위치와 역할 지어짐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엄마도 이런 찝찝한 기분을 견디며, 기어이 살아왔을까. 그리고 단돈 몇 천원을 벌기 위해 또 아끼기 위해 아이의 팬티를 사고파는 모습은, 떠올릴수록 비참했으며 서글펐다. 더 나아가 떠올려 보았다. 내 아내가 될 사람도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될까. 아찔했다. 나는 괜히 내 엉덩이를 한 번 쓸어보았다.
“일하면서... 어떻게... 글쓰기는 힘들겠지?”
내 말에 그녀는 그럼 애는 어쩌냐면서, 애처럼 엉엉 울었다.
미처 그녀의 마음을 다 굽어보지 못한 것도 그렇고,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못할 것 같았다. 결혼. 육아. 가족. 그 공동체 내의 여성. 그들의 그러한 삶. 내게는 멀고도 먼 어렴풋한 것들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수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그런 때 그녀가 넌지시 물어왔다.
“보영아 이번 주에 바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