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을 미처 다 헤아릴 수 없을지라도 2
“보영아 이번 주에 바빠?”
나는 순간 망설였다. 그녀의 물음에는 시간 괜찮으면 한번 보자는 의미가 함의되어 있음을 직감했으니까. 뭐라 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나의 주저를 느낀 그녀는 다시 말했다.
“일 있으면 말고.”
“딱히 바쁘거나 그런 건 아닌데...”
“불편하면 말고.”
“그런 건 아닌데...”
그녀는 답답한 듯 약간 언성을 높였다.
“그럼 뭔데 그냥 딱 말해. 시간 되면 밥 한 끼 먹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나는 그녀의 남편도 그렇고 애도 그렇고, 만나도 되나 싶었다.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필터링하여 내뱉지 않는 말을 대신 시원하게 말해주었다.
“요즘 애는 남편이 보고 있어. 남편 지금 사고 쳐서 나한테 찍 소리도 못해. 그리고 친구 만나러 가는데, 뭐 잘못된 거야?”
나는 더 이상 우물쭈물 않고 말했다.
“그래. 만나자.”
차의 시동을 걸었다.(엄마 차다.) 내비게이션에 용인의 어느 계곡을 검색했다. 해가 길어진 탓에 아직 날은 밝았지만, 슬금슬금 어두워지고 있었다. 먹구름이 듬성듬성 보였다. 비가 올 것만 같았다. 만나기로 한 계곡의 어느 식당으로 향했다. ‘왜 하필 계곡이람.’ 물론, 요전에 가봤는데 좋았다는 그녀의 후일담을 듣고 결정한 곳이지만, 그럼에도 왜인지 이상했다. 밤의 계곡. 닭백숙. 이미지를 떠올려 보면, 분위기가 어째 좀 은밀하고 으슥한 감이 들었다. 약속 장소에 거의 다 왔을 때, 전화가 왔다.
“어디쯤이야?”
식당에 먼저 도착한 그녀가 물었다.
“거의 다 왔어. 내비 봐야 돼. 끊어.”
계곡 초입을 지난 뒤에도 꽤 오래 차를 몰았다. 식당 입구에 이르자 꼬마전구가 나무에 휘감긴 채 반짝거리고 있었다.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더운 공기는 온데간데없고, 냉랭한 바람이 불어왔다. 족구장에 걸린 네트가 흔들렸다. 은근하게 계곡 물소리가 들려왔다. 식당은 룸 형식으로 되어 있었다. 그녀가 일러준 방으로 향했다.
‘라일락’
이만큼 촌스러운 방 이름이 또 있을까. 방문을 열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와 단 둘이 만나는 게 얼마만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앞선 걱정과는 또 다른 의미로 걱정한 게 있었다. 어색할까. 별 걱정을 했다.
“풉.”
하나도 민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죽, 웃음이 나왔다.
“왜 웃어?”
“너도 많이 늙었구나?”
내 농을 그녀는 익숙하게 받아쳤고, 우리는 음식을 시켰고, 배가 고픈지라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나는 닭백숙 맛집이라 해서 왔는데, 그녀는 닭볶음탕이 먹고 싶다 해서, 닭볶음탕을 먹었다. 고등학교 시절 얘기를 하면서 근래의 동창들 얘기를 하면서, 자작하게 끓어오르는 닭볶음탕을 앞에 두고 매워서 스읍 스읍 거리면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얘기도 하고 최근에는 뭘 하고 있는지 연달아 이야기를 나눴다.
“잘 먹었어.”
내가 화장실 다녀온 사이 그녀는 밥값을 계산했고, 우리는 근방의 카페로 걸음을 옮겼다. 카페는 또 나름 깔끔했다. 야외 테라스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씩을 시켜놓고, 대화를 이었다. 그녀는 작은 신문사에서 일을 시작했다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충을 털어놨다. 전셋집 이사 문제라든지 소소한 것까지 말했다. 나는 들으면서 조목조목 답했고, 말하다 보니 내 불확실한 미래와 고민 대해서 탈탈 털어놨다.
사실 그녀를 만난 이유는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 나누려는 것도 있었지만 한 가지 더 있었다. 책 출판에 관한 조언을 듣기 위해서도 만났다.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 디자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녀는 그 ‘인 디자인’을 잘 다루었다. 1인 출판에 한창 관심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묻고 싶은 게 한 둘이 아니었다. 아무튼, 서로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하며 마음에 쌓인 답답함을 덜어냈다.
“에휴.”
헌데 어떤 고민이든 털어놓으면 마음은 좀 가벼워지지만, 어쨌든 당장 해결이 될 건 아니라서 꼭 결론은 도돌이표였다. 물기를 가득 품은 바람이 불어왔다. 곧 비가 내릴 듯했다. 그녀의 한숨 소리를 들으며, 나는 습관적으로 내뱉던 말을 삼켰다.
‘다 잘 될 거야...’
잘 될 거야라는 말은 영화 엑시트를 보고 난 뒤, 아끼게 되었다. 백수인 주인공(조정석)을 위로하면서 친구가 “다 잘 될 거야.”라고 말하는데, 주인공은 그것을 받아친다. “야! 그거 요즘 유행어냐? 만나는 사람들마다 잘 될 거래!” 나는 아메리카노 컵에 무수히 맺힌 물방울을 슥 닦았다. '잘 될 거야.' 미래지향적인, 아무래도 모호한 말보다도 그녀의 마음을 공감해주었다.
“힘들겠다. 네가 느껴는 것처럼 나도 그래. 집에 있으면 막 어느 순간 미치겠고 그래.”
실제로도 공감이 갔다. 그녀는 사고를 친 남편을 볼 때마다 울화가 치민다고 했다. 가만히 집에 있다가도 화를 주체할 수 없다고 했다. 집에 있는 것 자체가 싫고, 답답하다고 했다.
나는 그녀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그 기분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취업을 하지 않은 채 결과 없는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 그래서 내내 집에만 있는 내 모습.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때마다 한심했다. 답답했다. 매일이 스트레스였다. 우울한 건 아닌데, 어떻게 이 기분을 다스리거나 해소해야 할지, 하루하루 곤궁해지는 생활 속에서 나는 나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나는 내가 곤란했다. 이런 갑갑한 시간 속에서 불쑥불쑥 치미는 울화를 감내하기란 참 힘들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잘할 수 있는 게, 글쓰기가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그녀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나는 우는 꼴은 별로 보고 싶지 않았으므로, 다시 말했다.
“근데 말이야. 애가 너를 잘 따르기는 하냐? 엄마라고는 하지?”
그녀는 주먹을 쥐고 우씨! 거렸다. 그러면서 자기가 엄마로서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래그래 암암 그래그래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컵을 들고 빨대를 빨았다. 단숨에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작은 얼음만 남은 컵에서 빨대 빠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식당에서 만났을 때 보다, 그녀의 표정은 한층 밝아져 있었다.
“그만 가자.”
내심 그녀는 더 이야기 나누고 싶은 듯했으나,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생각하며, 일어났다. 다음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각자의 차에 올랐다. 출발 전 차창을 내려 그녀의 차를 보았다. 시동을 걸 때 들어온 실내등에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머리 받침대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 있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보였다. 복잡한 마음을 다시금 정리하는 듯했다. 실내등이 꺼졌고 그녀의 옆모습은 사라졌다.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차를 몰아 계곡을 내려왔다. 멍하니 밤길을 달리다가 문득 그녀의 마지막 옆모습이 떠올랐다. 전화를 걸었다.
“잘 가고 있어?”
“응.”
“거기도 비와?”
“이제 안 오는 것 같아.”
“그러게 이제 좀 멎었네. 조심히 들어가. 잘 지내고.”
짧은 통화를 끝내고 왠지 나는 좀 홀가분했다. 그녀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당신의 삶을 미처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당신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했더라도, 괜찮다. 나도 당신도, 우리는 서로의 삶을 들으면서 또 그렇게 살아가고 갈 것임을 은연중 다짐했을 테니까. 다소 뜬금없지만,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에서의 마지막 문장처럼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할 테니까.’
각자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면서 나는 오랜만에 옛날 노래를 틀었다. 고등학교 시절 자주 듣던 '쿨' 노래였다. 음이탈을 하면서, 소리를 꽥 꽥 지르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지한 채 밤의 도로를 달려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