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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BOYOUNG Apr 14. 2022

너 정체가 뭐야


  너 정체가 뭐야




  오랜만에 전에 살던 동네에 갔다. 서울 뚝섬. 살았다기보다 버텼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초여름의 미지근한 바람을 맞으며 익숙한 골목을 걸었다. 원룸에서 같이 살았던 친구와 함께 감탄을 연발하며 걸었다. 동네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뚝섬은 서울숲을 중심으로 성수역까지 각광받기 시작한 핫플레이스인지라, 골목엔 아기자기한 카페와 식당이 즐비했다.


  “근데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임?”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끔뻑였다. 우리는 자주 가던 카페로 향했다. 루프탑 카페였는데, 옥상에 앉아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묘했다. 뚝섬살이 때의 잔상이 머릿속에 맺혔고, 괜히 싱숭생숭해졌다.


  대학원생인 나는 서울에서 아등바등 지내는 동안 여러 가지를 깨달았는데, 그중 하나가 ‘열심’과 ‘잘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서른 전에는 뿜뿜! 자신감이 가득했다. ‘열심히’ 하면 잘 할 수 있고 잘 되리란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열심히’,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서울이라는 장소의 특수성 때문에도 더 그렇다. 누구나 다 ‘열심히’ 산다. 내가 모르겠는 건 이 때문이다. ‘열심’과 결국 ‘잘하는 것’은 냉혹하지만 또 다른 문제다. 열심히 한다고 해서 내가 뭐가 되긴 될까. 지체 높은 사람 들이 끼리끼리 해 먹는 불평등의 장벽을 보면서 나는 너무나 허무했다. 의문이 들었다. ‘열심’보단 차라리 냅다 ‘잘해야’ 한 다는 조급함이 생겼다. 어쨌든 ‘잘해야’ 한다. 근데 냉정히 따져보면 나는 잘할 자신이 없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작가 지망생인 나는 계속 글을 써야 할까?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넌 누구냐? 누구냐 넌?”


  영화 〈올드보이〉의 저 유명한 대사를, 나는 요즘 자주 떠올린다. 나란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사실 ‘나’란 사람의 정체에 대해 자문한다면, 좀 곤란하긴 하다. 여러분은 아시는지 모르겠다. 어디서 왜 어떤 이유로 ‘내’가 지구에 뚝 떨어진 것인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단지 ‘나’는 태어났 다. ‘나’의 정체를 밝히는 건 우주의 수수께끼를 푸는 일이다. 그러니 질문을 바꿔야 한다.


  나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나’의 정체에 대해 설명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나’를 이루는 주변을 살펴보면서 ‘나’에 대해 가늠해볼 수는 있다. 하나씩 따지다 보면, 사회 속에서 만들어진 ‘나’를 어렴풋이 발견해볼 수 있다. 예컨대 어떤 사람에 대해, 주변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지 않나. 나는 내 앞에 멀뚱히 앉아 있는 친구를 바라보며 생각해보았다.


  ‘으음.’


  먼저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꼽아보았다.

  ‘첫 번째는 글쓰기. 두 번째는 글쓰기. 세 번째도 글쓰기. 하….'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홀라당 마셨다. 머리가 띵했다.

  ‘좋아하는 색깔은? 좋아하는 음식은? 좋아하는 음악은? 좋아하는 계절은….’

  사실 내가 자꾸 나에 대해 되묻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최근 만났던 한 친구의 말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소개팅 얘기가 나왔고, 나는 미래에 대한 포부를 솔직하게 아주 적극적으로 밝혔다. 그것은 ‘최소 생계비만 있어도 괜찮아! 내가 하고 싶은 것(글쓰기)을 할 거야’였는데,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 입장에선 시원찮아 보였던 모양이다.


  “야야, 최소 생계비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애한테 누구를 소개시켜주냐?”


  내 말의 요지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거야’였는데…. 친구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나 보다. 친구의 반문에 나는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야, 넌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한가로이 앉아 있던 친구는 나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표정에서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갑자기 뭔 개소리냐?’ 친구는 내게 벌써 더위 먹었냐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넸다. 나는 정말 그런 건 아닐까 싶었다. 저물녘의 선선한 바람이 옥상을 훑었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면서 나는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를 떠올려보았다. 앞으로 나는 어디로 흘러갈 것이며, 또 어떻게 될까. 알 수 없지만, 나는 ‘나’에 대한 생각을 곱씹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그럼 내가 좋아하는 거 말고 잘할 수 있는 건 뭘까?’


  아이러니하게도 글쓰기다. 나는 작가가 될 것이다. 뚝섬역은 역이 지상에 있어 바깥 풍경을 훤히 볼 수 있었는데, 밤의 뚝섬 풍경은 왠지 더 아련했다. 낯익은 모습은 점점 멀어져갔다. 그렇게 나는 뚝섬을 떠났다. 다시 시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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