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유방암 환자로의 삶 (2)– 다시 살아내기

by Mimi

수술 후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마치 사형선고를 기다리는 죄수의 마음처럼.

나는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
모든 신에게 빌었다.
“제발 항암만 하지 않게 해주세요.
살려주시면 착하게 살게요.”

결과는 다행히 항암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방사선 치료 24회가 남아 있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같은 시간에 병원에 가야 했다.

치료가 이어지며 몸은 점점 피로해졌다.
가슴은 딱딱해지고, 피부는 어둡게 변해갔다.
어느 날은 기운이 훅 빠져나가
“이렇게 기운이 떨어져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방사선 치료 도중,
가슴에서 다시 뭔가 만져졌다.
“설마 또?”

MRI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같은 암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상이 무너졌다.

이번엔 전절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한 달 전에 수술했는데 또요?”
그 순간, 나는 바닥까지 내려앉았다.

하지만 차병원에서 재검을 받은 결과,
그건 암이 아니었다.
보형물 착시로 인한 오진이었다.

몸은 멀쩡했지만,
마음은 이미 말기 암 환자보다 더 지쳐 있었다.
그 몇 주의 시간은 지옥 같았다.
혼자였고, 어디에 기대야 할지도 몰랐다.
그저 두려웠다.

그래도 나는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삶의 의지가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요양병원에 머무르며
나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에게서 동질감과 위로를 얻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그래도 이 정도 증상에 감사하세요.
병이 건강하게 살라고 보내는 경고일지도 몰라요.”


그 말을 듣고서야, 조금 마음이 풀렸다.

암병동과 요양병원에서 고통으로 신음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 나는 아직 운이 좋은 편이구나.”

하지만 솔직히, 그런 마음마저 미안했다.

병이 나으면 꼭 이렇게 힘든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애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던 나에게

병은 이상하리만큼 따뜻한 변화를 선물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몸도 마음도 달라지고 있었다.



이후 병원에서는
‘암 환자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하나하나 가르쳐 주었다.

식사는 어떻게 해야 하고, 운동은 어떻게 해야 하며,
생활은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까지.

매 끼니마다 다섯 가지 색의 채소를 한 접시씩 먹고,
고기는 일주일에 한두 번.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하루에 계란 두 개,
그리고 하루 만 보 걷기.

살이 찌면 안 된다고 했다.
지방은 여성호르몬과 연관이 있어서
내가 앓는 암에는 특히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아마 그 시기부터
환경에 대해서도 관심이 더 깊어졌던 것 같다.

환경 호르몬에서 나오는 모든 유해 물질을 피해야 했다.
염색, 매니큐어 등, 그동안 미용을 위해 해왔던 것들을
하나둘 멀리하기 시작했다.

‘타목시펜’이라는 호르몬 억제제를 꾸준히 복용했다.
모든 약이 그렇듯, 이 약도 부작용이 있었다.
자궁내막이 두꺼워지는 증상이 생겨
결국 내막을 긁어 내는 수술을 또 받았다.

그 시기, 나의 일상은 병원이었다.
검사, 결과, 예약, 또 검사.
몸은 점점 지쳐갔고,
마음은 피곤함을 넘어 무감각해졌다.

그렇게 유방암 환자로의 일상을 살았다.
그러다 나는 다시 결심했다.

“다시는 누군가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이제는 내가 나를 잘 돌봐야 한다.”

그때부터 처음으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항암요리 책을 사고, 문숙의 **〈자연식〉**을 읽었다.
그녀가 요가와 함께 비건 생활을 한다는 걸 보고
‘저런 삶도 있구나’ 느꼈다.

책 속 문장 하나가 내 마음을 세게 때렸다.



“파닥거리는 생선은 신선함이 아니라 고통의 몸부림이다.
결국 그 에너지를 우리가 먹는 것이다.”


그 문장이 내 안 깊숙이 박혔다.
우리가 먹는 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고통과 생명의 에너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나는 요가와 자연식,
그리고 새로운 삶의 방식에 처음으로 조금씩 다가가기 시작했다.

유방암 환자로 산다는 건, 병과 싸우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다시 배우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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