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퇴사 계획서

EP4. 새로운 업을 위해 미술학원 면접

by 변민경 Min Illustrator

프롤로그

⌜상상 퇴사 계획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아가기를 꿈 꾸지만 배짱이 없어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입고 지낸 지 9년 차인

'회새기'(이너는 회사, 아우터는 팀장)

'퇴사 퇴사' 노래를 부르는 뻐꾸기지만 꾸역꾸역 현실도 챙기고 꿈도 챙기고 싶어서

아침엔 회사 팀장으로 밤엔 일러스트레이터로 지내고 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퇴사는 못하니 목표를 '퇴사'로 잡고 자립 계획을 세워보면서 하루하루를

기록해 보기로 한다. 그래. 올해는 <상상 퇴사 계획서>를 써보고 자립해 보자.


*회 새기: 회사를 다니며 어떤 표정도 감정도 잘 안 느껴지는 '회색 인간'을 칭한다.


상상 퇴사일 D-52

새기는 오늘 좀 캄한 날이다. 조용하고 '얼리 프라이데이'라고 칭하는 마지막 주 금요일 오전만 출근하는 날이다. 게다가 월급 명세서가 메일로 날아왔다.

'좀 살만한가? 그래도 오늘은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 없네.' 어제는 사실 새기는 된통 깨졌다.

새기의 팀장은 호시탐탐 그녀를 어떻게든 꼬투리 잡으려고 하는 사람이다. 잘못 걸렸다.

너무 자주 있는 일이라 세세히 말하긴 어렵지만, 메신저로 비꼬는 말로 혼이 된통 났다.

새기는 나름 팀장을 열받게 만들고 싶어서 "네 팀장님, 위에서 뭐라고 말들이 많다는데 어느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죠?"라고 당돌하게 (메신저로는 티가 안 나겠지만.) 묻지만 "여하튼 말이 많아요."라고 얼버무리는 팀장


또 어떤 이야기가 자꾸 나온다 말을 하기에 새기는 나름의 반격으로 나이스하게 "어떤 이야기가 나오나요? 알려주시면 시정하겠습니다." 하지만 팀장은 또 말을 못 한다.

자기 입을 더럽히기 싫은 것이겠지.


괜찮아. 새기는 지난주에 이력서 넣은 곳에서 어제 연락이 왔었다.


"안녕하세요. 00 미술학원입니다. 선생님. 1차 면접 제의 드리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너무 기분이 좋았더랬다. 선생님이라니 선생님이라니!!!!

마음이 벅차서 바로 엄마에게 전화해서 자랑했다. 엄마도 좋아했다. 근데 그 밤에 걱정이 되신 부모님이 장문의 카톡이 와있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그렇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미술학원 알바를 한다는 것은 경력 단절이고, 아이들을 다루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것인데, 제대로 알고 일을 처신하는 것이 좋을 것이야.⌟

걱정 반 꾸지람 반의 내용. 그래도 새기는 서른 중반의 나름의 패기는 그래도 살아있었기에

"아니에요! 제가 원하던 일이에요."


근데... 또 생각해 보니 아닌 것이다. 아동 미술? 일러스트레이터가 꿈인데, 또 뭐가 불안하다고 바로

미술학원을 지원했지? 그래도 붙었으니, 면접 봐서 한번 보자.


붙은 곳이 있었기에 금요일 오후는 조용히 지나갔다.

드. 디. 어

면접 보는 금요일 밤 (새기는 회사원이기에 금요일 오후로 면접을 잡았다.)

면접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입장하자마자


원장님-"결혼하셨나요?"

새기-"네?"

원장님-"아. 저희는 1년 이상 다니실 분을 찾고 있는데, 임신 계획이거나 그럼 좀 어려워서요."


새기는 최근 결혼을 했지만, 임신 계획은 없다고 둘러댄다. (면접 땐 다 원하는 말을 하는 공간이니깐 말이다.)

면접보다는 이 미술학원에서 일하려면 지침을 알려주는 듯했다.

1. 아이들을 다루는 것이라 조심해야 함

2. 힘이 세야 함

3. 아이들의 책임이 있어야 함

4.3~6개월 다닐 생각이면 안 됌. 적어도 1년 이상할 사람을 찾음

5. 주 2회 일하면 시급 11,000원 주 3회 일하면 시급 13,000원

6. 토요일은 필수로 일해야 함

7. 연차 없음, 빨간 날에 일하는 날인데 쉰다면 시급에서 깜 (추석, 설날엔 쉬지만 애매한 빨간 날은 안 쉼)


.......

회사 생활 9년 차... 그래... 연차의 단맛과 포괄 임금제의 나름의? 단맛을 맛보았었다.

그게 그리 소중한 것이었구나.... 갑자기 숨이 막혔다. 면전엔 다 잘할 것 같이 말했지만.

부담된다. 새기는 그저 퇴사 후 일러스트레이터로 지내면서 심심할까 봐 주 2~3회 하는 일을 구한 것일 뿐인데

많은 책임감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 그것도 임신 시기까지 걸어야 한다?


손절....


어제 꿈을 펼칠 거라고, 현실적인 이야기만 하지 말라고 했던 새기는 엄마에게 미안해진다.

카톡을 보낸다.

⌜엄마, 아빠가 인생 선배로서 해준 말들이 도움 됐어요. 오늘 면접은 경험으로 잘 본 것 같아요. 이 기회로 제가 뭘 더 좋아하는지 깨달았어요. ⌟

어른은 어렵다. 20대였음 그냥 회사를 그만뒀을텐데, 퇴사 전 준비는 뭐이리 더 바쁜지.

그럼에도 죽어도 지금 회사는 싫단다.


퇴사는 마음먹었지만 아직은 두려운 새기.

그녀에겐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더 좋아질까? 나빠질까?


올 1월에 손금은 봤지만, 3월 이젠 신점을 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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