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퇴사 계획서

EP6. 단단해지는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무너지다.(퇴사하고 싶은 이유

by 변민경 Min Illustrator

프롤로그

⌜상상 퇴사 계획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아가기를 꿈 꾸지만 배짱이 없어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입고 지낸 지 9년 차인

'회새기'(이너는 회사, 아우터는 팀장)

'퇴사 퇴사' 노래를 부르는 뻐꾸기지만 꾸역꾸역 현실도 챙기고 꿈도 챙기고 싶어서

아침엔 회사 팀장으로 밤엔 일러스트레이터로 지내고 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퇴사는 못하니 목표를 '퇴사'로 잡고 자립 계획을 세워보면서 하루하루를

기록해 보기로 한다. 그래. 올해는 <상상 퇴사 계획서>를 써보고 자립해 보자.


*회 새기: 회사를 다니며 어떤 표정도 감정도 잘 안 느껴지는 '회색 인간'을 칭한다.


상상 퇴사일 D-51 → ??


일요일은 자기 싫은 밤. 월요일이 오니깐. 그래도 가기 싫으니 도망가야지. 도망가야지

그러면서 그나마 나을 것 같은 회사에 이력서 자기소개서를 수정해서 내본다.

<지원완료>

그러고선 찾아본 '잡플래닛'

-회사 화장실 청소를 해요

-아침 조례시간 있어요

-월요일 연차 금지

-오후 4시엔 체조를해요 90년대도 아니고


이러한 글을 봐도 그냥 거기라도 도피하고 싶다.

근데 왜 새기는 그렇게도 도망가고 싶을까? 그렇게도 그만두고 싶을까?


상황은 이러하다. 2018년부터 지금까지 디자이너로서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렇게 애사심이 불탔었는데, 그렇게도 열심히였는데 왜 왜?


2018년 열정 파워였었다. 같이 들어온 팀원들이 너무 좋았다. 다양한 일을 해서 좋았다.

2019년엔 위 상사가 그만둬서 팀장이 얼떨결에 됐다. 주도적인 업무로 기획하는 것이 좋았다.

2020년엔 처음 팀원이 생겼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팀장이란 것은. 혼자 실수하면서 배워야 했다.

감정싸움. 그래도 혼자 쌓아온 것들을 알려주는 재미가 있었다.

2021년엔 '팀원들'이 생겼다. 아웅다웅 즐거웠다.

2022년엔 '팀원들'이 또 생겼다. 팀원들이 서로 친해지면서 팀장인 나를 멀리했다. (당연하지)타팀 팀장이었던 동료와 갈등도 생겼었다. 회사의 몸집을 키우기 위해 외부 사람들이 서서히 들어왔다. 어디서 데려왔단다.

2023년 또 새로운 사람이 자기가 아닌 지인을 윗 상사를 데려왔다. 그리고 그 상사들이 또 자기 지인들로 채운다. 처음엔 잘해줬다. 그리고 팀이 바뀐다. 새로온 상사는 파벌을 나눈다. 친했던 타팀 동료와 이간질도 시킨다. 모르겠다. 뭐가 진실인지. 진실을 찾고자 머리가 아팠었다.


2024년도 또 새로운 사람이 자기가 아닌 지인을 윗 상사를 데려왔다. 그리고 그 상사들이 또 자기 지인들로 채운다. 갑자기 오래 다닌 '새기'는 새로 온 사람들의 적이 됐다. 처음엔 잘해주다가 단물 쏙 빼고 뒤를 돌아버린다. 그리고 자기가 데려온 사람이랑 비교를 한다. (별것도 아닌 것으로 비교한다.)

예를 들어 '누구누구는 야근하는데 새기는 안 하고 집에 갔다.' '누구누구는 이렇단다. 너는 고인 물이야.'

여러 사람 앞에서 면박을 주기 시작한다. 이것은 큰 그림이었던 듯싶다. 사람들은 '새기'를 점점 무능력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윗 상사가 나가고 대표가 또 바뀐다.


2025년 새로 온 대표도 처음엔 잘해준다. 이곳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겠지. 또 새로운 팀장을 데려온다.

'그래그래 회사 발전을 위해선 어쩔 수 없겠지.' 그 팀장과 대표는 합이 좋다. 새기는 나름 열심히 하지만

대표는 마음에 안 드니, 팀장 또한 새기를 싫어한다. 그렇게 '새기'는 팀장직에서 하산하고 그 팀장의 팀원이 된다. 뭐 괜찮다. 팀장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니깐. 근데 끝없는 가스라이팅과 무기력함을 선사한다.

새로온 대표는 '새기'에게 "이 회사 도대체 언제까지 다닐거야? 오래 다녔네? 잘릴 때까지 다닐거야?"

라고 여러명 있는데서 말했었다. 그리고 새로온 사람들은

예전에 만든 모든 것을 비판하고 비난한다. 제일 안쪽에 앉아있었고 장기 근속자로 존중받았던 '새기'는 어느새 복도 쪽에 자리를 앉게 된다. '나가라는 거겠지. 이 새끼들아 그냘 잘라.' 그리고 과거한 것에 대해 무조건적인 비판적인 시선.


'새기'는 사실 오늘 한마디 하려다가 참았다.

"그때 만들었던 모든 것은 그 시절 상사들과 최선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자꾸 과거에 만든 것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저는 기분이 매우 안 좋습니다."



새기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회사에서 외부 인력이 들어온다?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새기는 네 번을 겪었다.


1. 친한 척을 한다. → 회사 분위기를 읽고 적응하려 한다.

2. 그러고 차가워진다.

3. 과거했던 것들을 비판하면서 자신이 한 것들을 '더 우월하게'보이려고 한다.

4. 오래 다닌 사람들을 '무능력'하다고 생각한다. → 네가 들어올 수 있었던 베이스를 우리가 만든 거야.


고로 새기가 그만두려는 이유

1. 돈만 벌어다 주는 회사: 업무 즐거움 상실, 발전이 없음

2. 오래 다닐수록 더 돌아가는 느낌을 받음

3. 열심히 할 의지 상실: 한번 찍히면 되돌아가기 어렵다.

4. 밤마다 술 먹으면서 신세한탄하는 사람이 제일 싫었는데, 그 모습이 새기였다.

5. 하고 싶은 일이 있다. 그 일에 자신이 있다.

6. 가정의 평화: 불평불만하는 아내이고 싶지 않다.


단단해지는 주말을 보내고 무너지는 월요일을 보냈다. 모자와 마스크는 회사에서 프로텍터였다. 마음을 그래도 평정 유지장치인 ‘안정장치'.이다.

월요일 출근 지하철에서 깔끔하게 차려입은 50대 정도되어 보이는 어머니가 앉아있었다. 새기는 서있었고, 옆 노약 좌석에 앉아있었는데 손수건으로 눈을 계속 닦으셨다. 힐끗 봤는데 울고 계셨다.... 새기는 속으로 '그래... 그렇게 오래 다녀도 월요일 출근은 힘드시죠? 힘내세요. 그대.'


우리 삶 너무 짧지 않나요? 3개월만이라도 미친 듯이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고 싶다.


그럼 궁금하지 않나요? 왜 새기는 이토록 한 회사에서 오래 있었는지?

새기는 이 전 회사에서 1년 6개월을 계약직으로 지냈었다. 그땐 동료 있는 팀들이 부러웠다. 새기의 팀은 동료가 없었고, 상사들 뿐이었다. 그렇게 이 회사를 들어왔는데 일도 재미있고 그토록 부러워했던 쪽지를 주고 받는 동료들이 생겼다. 야근을 해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믿고 지지해주는 상사가 있었다. 신뢰를 받으니 해내고 싶었고, 잘하고 싶었다. 그리고 배신하고 싶지않았다.

근데 이젠 상황이 바뀌었다.


퇴사 사유: 나로서 잘 살고 싶습니다.


곧 4월 1일 만우절.

사표 내기 좋은 날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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