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보는 눈을 다시 갖추다.
현재 나이 38살
주변 친구들은 결혼생활이 어느덧 5년 차를 넘어 10년을 바라보는 친구도 있는데 나는 고작 3년 차 햇병아리 새댁이다. 친구들은 지금 햇병아리 딱지라도 달고 있는 내가 참으로 기특하고 신기할지도 모른다. 왜냐면 나는 서른 살이 넘고 나서는 결혼에는 일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연애에 관심이 없었다기보다는 연애를 잘 모르면서 장기 연애를 4년씩 그것도 두 번이나 하다 보니 헤어진 후 오는 그 여파가 나에게는 고스란히 남자와 결혼의 부정적인 상관관계로 남게 된 것이다.
23살에 처음 맛본 연애 후 27살이 돼갈 무렵에 헤어짐을 그리고 다시 또 연애 후 31살의 이별은 참으로 나에게 지독하고 못된 사랑의 향기를 남기고 갔다.
그러고 보니 29살 12월은 미치도록 싫었었다. 아무 준비도 없이 서른 살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지금 사귀고 있는 남자와 결혼을 할 수 있는 것인지, 결혼은 왜 해야 하는지, 내 인생은 내 꿈은 잘 있는 것인지 수많은 고민과 두려움으로 뭐든지 잘해야 하고 잘하고 싶은 마음에 미래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불안함과 이십 대를 그냥 보내야만 하는 것 같은 아쉬움이 서른 살이 되는 것이 미치도록 싫었던 기억이 난다.
20대의 나의 연애... 연애경험은 많지 않은데 연애 기간은 길었던.. 왜 그렇게 한번 사랑을 하면 지독하게 오래 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1년에 1번씩 남자를 갈아치워 보지 못한 게 새삼 억울할 때도 있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연애를 하는 시대라던데 나의 연애 세포는 반응속도가 느려 터졌었는지 나의 연애세포들은 23살이 되어서야 발동이 되었다. 사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보이시한 스타일에 빠져 남자스럽게 행동하고 스포츠 같은 걸 좋아했다 보니 연애는 오글거리고 뭔가 재미없는 소꿉놀이 같은 거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뭘 몰라도 참 몰랐던 시절이었던 거다.
더 많이 사랑하는 것 외에 다른 사랑의 치료약은 없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사진출처 Unsplash
그러다 대학을 입학하고, 주변 친구들이 너도 나도 이쁜 옷에 화장을 하는 것을 보면서 나에게 변화가 온 것은 그때였던 덧 같다. 머리도 길러보고, 화장을 해보고, 분홍색 옷을 걸쳐보기 시작하며 나름 여자 여자 한 사람으로 진화하기 시작한 게 23살이었다. 인간은 진화하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스스로 자꾸 변화를 시도하다 보니 어느새 주변에 남자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23년 만에 처음으로 남자 사람 친구들이 생기고 그 인연으로 진짜 남자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23살부터 32살까지 나에게는 딱 3명의 남자가 있었다. 참 짧게도 만나보고 또 우라지게 길게도 만나 그 덕에 지독한 이별을 경험했던 3명의 남자들
-23살 처음 만나 2달 사귄 박모 오빠
-그해 23살 두 번째 만나 4년을 사귄 강모 오빠
-그리고 28살 세 번째 만나 또 4년을 사귄 이모 오빠
어쩌다 보니, 나는 모두 오빠들만을 만났다. 오빠만 좋아했던 것도 아닌데 그땐 그냥 연하는 이유 없이 그냥 싫었다. 물론.. 그때 연하님들도 나를 좋아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땐 20대여서였을까? '연하'라고 하면 어리광 필 것만 같은 뭔가 듬직함 보다는 애교가 더 많을 것 같다 라는 나만의 막연한 착각(?)에 빠졌었다. 결국 나이를 먹고 나서야 30대가 되고 나서야 연하남과 사귀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임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건 내가 나이가 들었기에 한 살이라도 어린 나이가 소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웃픈 현실이지만 말이다.
어리다는 게 얼마나 좋은 나이인지를 그땐 미처 몰랐던 거다. 내가 젊어서 그랬는지, 마냥 기대고 싶은 오빠들이 그냥 좋았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오빠가 다 좋은 것도 아니고, 모든 연하남이 다 좋은 것도 아닌데 무지한 연애경험과 수많은 연애정보들이 나의 연애 감정선을 혼란스럽게 만든 것뿐인데 말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스물세 살 내 눈엔 26살 오빠가 그렇게 멋져 보였던걸 말이다. 연애 세포도 늦게 터진 주제에 나는 또 연애기간은 엄청 길었다. 무슨 용기로 그렇게 사귀었는지..
주변에서 4년쯤 만났으면 결혼할 때 되지 않았냐 했지만 28살의 겨울과 32살의 겨울은 4년이라는 시간을 쌓아봤지만 나에게 그 길고 긴 시간들은 아름다운 결혼을 선물해주진 않았다. 그들은 그 겨울을 몹쓸 만큼 시리게 아픈 이별만 남기고 유유히 떠나갔다 내 곁을.. 8년이라는 대장정의 사랑의 레이스였건만 한번 차본 맛은 꽤나 속이 시원했건만 근데 32살의 이별은 내가 차여보니 알겠더라 그 엿같은 기분을 말이다.
그리고 32살 겨울이 지나 봄이 올 때쯤 생각했었다. 앞으로 나에겐 결혼이란 없고, 연애 따위도 안 하겠다고 지겹다 이놈의 장기 연애!
이별의 아픔 속에서만 사랑의 깊이를 알게 된다. -조지 앨리엇- @사진출처 Unsplash
그랬다. 32살에 남들은 결혼을 해도 시원치 않을 나이에 나는 이별을 했다. 주변에서 보내는 결혼 소식들 대신 나는 '솔로'라는 명찰을 달게 되었다. 그래 뭐 자유를 얻은 거니깐 그깟 연애 이제는 지겹다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20대에 두번이나 시작했던 장기 연애여서 였을까? 삼십대에 혼자 보낸다는것이 생각보다 낯설긴 했다. 늘하던 통화할사람이 없고 늘 만날사람이 있던 퇴근 후의 시간이 이토록 적막한 시간인줄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았다. 이러다보니 점점 나는 혼자인게 편했다 아니 좋아졌다. 혼자 보는 영화가 편해지고 주말에는 이제는 어디 나가지 않고 그냥 뒹구는 것이 좋은 집에 있는 것은 한심하고 심심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즐길 것을 찾아 주말마다 나갔던 나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집을 즐기는 집순이가 되어가는 삼십대 중반의 참으로 권태로운 언니가 되어 가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20대 대학교 때 미팅 말곤 소개팅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남들은 한 번도 못해본다는 씨씨를 대학에서 1번 그리고 회사에서까지 하느라 소개팅이란 것을 해보지 못했다. 도대체 꽃 같은 20대에 나는 무엇하며 살았던 걸까? 이런 상태로 30대를 맞이해서일까? 소개팅이라는 단어가 34살 나에겐 참으로 낯설기 짝이 없었다. 모르는 사람과 사전에 연락을 하고, 혹은 정말 모르는 상태에서 '혹시 00 씨이신가요?' 라며
낯선 인사를 건네고 서로의 신상을 물어야 하는 그 상황이 왠지 모르게 싫었다.
그래서 이별을 하고도 꽤 오랫동안 나는 혼자를 즐겼고 누구라도 만나보라는 주변 친구들의 성화는 그냥 흘러 보내기 일쑤였다. 지금 생각하면 철이 없었던 거였지만 그렇게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혼자를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34살의 봄이 시작되고 나니, 결혼한 주변 친구들이 더 이상은 혼자 지내는 나를 그냥 놔둘 수가 없다며, 닦달을 하기 시작했다. 남자 좀 만나라고 그나마 삼십 대 초반일 때 소개팅해야 한다며 더 늦으면 소개팅 들어오지도 않는다며 그런 친구들의 소개팅 타령에 나는 '노'라고 대답했더니
이제는 친구의 연을 끊자고 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혼자 있을 친구를 위해 욕 까지 하며 등 떠밀어준 친구가 고맙기 그지없긴 하다. 그래서 34살.. 나는 내 인생 처음으로 소개팅이란 것을 해보았다.
나는 총 4명의 남자를 만났다. 내 평생 사귄 남자도 4명인데 소개팅해본 남자도 4명이라니 운명의 사이인 건가? 첫 번째 소개팅 오빠는 나보다 3살 많은 37살이었고, 외국계 자동차 회사를 다닌다고 했다. 삼십 대 후반.. 40대가 가까워진다고 하니.. 문득 나이가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빠가 좋다던 내가.. 첫 소개팅이라 어색함이 그지없었고, 좋은 회사 다닌다고, 체코 출장을 다녀왔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하셨다.
"퇴근하고 뭐하세요"
"집에서 드라마 보고, 컴퓨터 해요"
"여행 좋아하세요? 최근에 여행 간 곳이 어디세요?"
"대학교 때 배낭여행 가보고, 최근에 출장 간 게 전부입니다."
헐.. 37살 소개팅 오빠가 15년 전 대학생 때 다녀온 배낭여행이 마지막이란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데 할 이야기 사라졌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퍽이나 난감했다. 좋은 회사 다니고 돈 많이 벌면 뭐하는가... 의미 없다.
두 번째 소개팅 오빠
이번엔 35살 그래 한 살 많아도 오빠다. 예전엔 몰랐는데 나이를 조금 먹고 보니 한 살 정도는 친구 먹겠다 싶었다. 이 남자 근데 첫 소개팅부터 차를 가져왔더랬다. BM* 로고가 멋지게 붙어있는 차를 타랜다.
"차 좋아하시나 봐요"
"내 남자들 대부분 차 좋아하죠~ 드라이브 좋아하세요?"
"네 좋아하죠 "
" 잘 됐네요 자주 드라이브하죠 우리 "
여기 까진 좋았다. 아름 다웠던 대화가 오고 가기에 괜찮은 사람인가 했다.
"쇼핑은 자주 하세요? 저는 남자인데 쇼핑하는 거 좋아하는데"
"아.. 네 저도 쇼핑하러 백화점 가죠 00 씨는 어디서 쇼핑하시는데요?"
그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브랜드 이야기를 하며 의외로 명품에 관심 없는 나를 신기해했다.
한 달에 카드값만 몇백이 나올 때도 있단다. 얼리어답터 이자 튜닝을 사랑했던 한 살 차이 오빠도 안녕이다.
세 번째 소개팅 오빠
이번엔 38살 무려 4살이나 많았고 대기업에서 마케팅 업무를 한단다. 나랑 같은 업무 분야이니 통할게 많을 것 같단다. 그래서 또 소개팅에 나갔다.
"야근이 많으시진 않으세요? "
" 야근이야 뭐 거의 맨날 하죠? 밤 10시 퇴근은 기본이죠 뭐 "
"주말에는 뭐하세요?"
"주말에는 그냥 집에 하루 종일 있습니다. 아무 데도 안 나가요. 집에 있는 게 젤 편합니다. "
"매주 집에 있으면 심심하잖아요~ 영화도 보고 가끔 커피도 마시고 그런 거 하면 좋은데~?"
"돈 아깝게 뭐하러 밖에 나가요~ 요즘은 집에서 다 할 수 있잖아요! 참 좋은 세상이죠!"
"아.. 네.."
집에만 있는 건 좋은데 '돈 아깝게 뭐하러..' 이 말이 내 귓가에 맴돌아 나는 결국 마지막 소개팅도 지겹게 끝을 냈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네가 연락 안 받아 줬다며? 오빠는 너 엄청 맘에 든다는데, 몇 번 만나보지 왜 싫어?"
"아니 그 오빠 외모도 그렇고 나쁘진 않은데 나는 그런 사람은 싫어. 돈 많이 벌어와도 싫다고.."
친구가 나한테 그랬다. 미쳤다고... 지금까지 소개팅 한 남자들이 보통 사람들인 줄 아냐며 일 안 하고 넌 집에서 놀아도 되는데 편한 너의 결혼 후 삶을 왜 버리냐며 내가 내복을 찬다고 그랬다. 그래 나는 내복을 찬다. 돈이 없어도 나는 믹스커피 한잔에도 웃으면서 걸을 수 있는 그런 남자가 백번 좋다. 세 번의 소개팅은 나에게 말해줬다. 소개팅도 역시 나에게 의미 없다.
나의 친구들이 원하는 삶은 어땠는지 몰라도 난 그랬다 돈이 많은 사람보다는 정이 많은 사람이 좋고
명품이 많은 사람보다는 공통된 취미가 많은 사람이 좋았다. 잘생기고 멋있는 사람보다는 환하게 웃는 미소가 아름다운 사람이 좋았다. 자기 자랑을 많이 하는 사람보다는 상대방이 좋아하는 걸 물어봐 주는 사람이 좋았다.
좋은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손잡고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좋았다.
소개팅남들은 돈도 많았다. 명품도 많았다. 잘생긴 사람도 있었다. 좋은 자동차를 끄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정도 없고, 공통된 취미도 없고, 아름다운 미소도 없고, 걷는걸 매우 싫어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소개팅은 하지 않겠다 했다. 내 나이 34살에 처음으로 소개팅이란 걸 하고는 다시는 소개팅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34살 나는 괜찮았다. 이제 혼자도 퍽이나 괜찮았다.
근데 친구는 안 괜찮았다. 다시 곱씹어봐도 이렇게 친구의 연애를 위해 관심 가져 주는 이 또 있을까 싶지만
그땐 그냥 싫었다. 다 싫다는데 그놈의 나의 친구가 마지막이라며 딱 한번 만나보랬다. 대기업 다녀도 싫고 돈 좀 있고 차 좋아도 싫다는 나에게 연하남인데 착한 남자라며 그냥 만나보랜다. 대기업도 안 다니고 키도 작고 다 아닌 것 같은데 어차피 좋은 놈 데려다줘 봐야 싫어할 테니 착한 남자라도 만나랬다.
이 남자 착하단다 게다가 한살이나 어리댄다. 그리고 이번에도 또 싫으면 그냥 나 혼자 살라고 했다. 자기들도 나의 연애에는 앞으로 관심 끄겠다고 했다. 친구가 나한테 그랬다.
'징글징글한데 내 친구니깐 마지막으로 소개팅해준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연하와 내 인생에서 네 번째 소개팅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