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싫다던 연하랑 살고 있다.
모두 이상형과 살고 계십니까? 10명 중에 1명 정도는 그래도 이상형과 살고 있지 않을까?
섣부른 추측을 해보기도 하는데 20대 때는 친구들에게 너 이상형이 뭐야?라는 말을 쉽게 물어봤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이상형은 그저 막연한 존재가 되고 이상형은 그저 이상형일 뿐이라고 애써 우리를 위로하며 살고 있지만 가끔 잠자고 있는 남편을 보고 있자면 그동안 켜켜이 쌓아온 나만의 이상형보다는 그래도 내 옆에 있는 이 남자가 퍽이나 괜찮다는 것을 35살이 되어서야 알았다는 게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때 나는 결국 친구의 성화에 못 이겨 4번째 소개팅을 했다. 내가 소개팅을 싫어했던 첫 번째 이유는
모르는 사람과의 첫 만남을 위해 미리 연락을 하거나 혹은 만날 장소에서
"00 씨 어디 계세요?"라고 물어봐야 하거나
"00 씨 이신가요?"라고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낯설고 낯선 그 순간이 너무 싫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친구도 참 고맙고 대단했던 것이 34살 친구 어떻게든 남자 친구 만들어 주겠다고 애라는 애는 그렇게 다 쓰고 4번째 소개팅남과는 미리 장소도 서로 정해놓고 내가 미리 보면 알 수 있게 옷 입을 것 까지 체크해서 알려주는 끔찍한 정성을 기울였다. 나였다면 그 정도의 열과 성의는 안 하지 않았을까...
오빠가 아닌 연하여서였을까 그 또한 내 친구의 말은 퍽이나 잘 들어 나는 한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했던 3번의 소개팅은 내 인생에서의 첫 소개팅들이기도 했고 그래도 그때는 괜찮겠지라는 나름의 기대감이라는 것이 있었던 시기였지만 4번째 연하남과의 소개팅은 앞으로는 절대 소개팅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후 만났던 터라 지금의 남편에게는 너무 미안하지만 정말 기대감이라고는 일도 없었다.
친구가 줄줄이 읊어 주었던 소개팅 남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생각 안 나고 그냥 '키만 좀 작아'라는 말만 기억에 남았다. 그래 키는 별로 안크나 보네 라고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00 누나 소개로 나온 이**입니다."
말끔한 슈트를 입은 아담한 키에 환한 미소를 가진 사람이 인사를 건네 왔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표정에 나름 멋져 보이고 싶어 걸친 슈트에 선한 웃음을 가진 소박한 모습이 더 매력적으로 보였던 첫 만남. 누가 봐도 얼굴에 나 참 소박하고 착해요 라고 쓰여있는 순수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그동안 너무 허세와 자발적 프라이드로 무장한 소개팅 남자들을 만나서였는지는 몰라도 연하남의 첫인상이 퍽이나 좋았다.
"음악 좋아하세요? " 나는 늘 그렇듯 소개팅용 대화를 먼저 던졌다. 물론 당연히 그저 그런 대답이 오가고 시큰둥하게 끝날 대화 .. '네 좋아합니다. 혹은 발라드 좋아해요' 그러면 나는 어떤 가수 좋아하시나요? 정도로 대화를 이끈 후 '콘서트는 좀 가세요?' 등으로 대화가 이어지겠지라고 생각하며 던진 말이었다.
" 네 음악 너무 좋아하죠. 음악은 많이 듣고 특히 라디오 듣는 것도 좋아해요 "헐.. 그의 대답은 내 예상을 벗어났다. '너 지금 라디오라고 말했니?' 대박.. 라디오라니.. 사실 나는 라디오를 너무 좋아했다. 하지만 주변에 우리 엄마 말고 그리고 내 베프 친구 한 명 말곤 도무지 라디오를 좋아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남자 라디오를 좋아한단다
" 와 ~라디오요? 라디오 좋아하는 사람 정말 처음 봐요. 저도 라디오 좋아하거든요"
" 저는 군대 가기 전부터 좋아했는데. 정지영의 스위트 뮤직박스라고 아세요? 신해철 형님 라디오도 엄청 좋아했었는데"
라디오 이야기를 시작으로 우린 잃어버린 친구를 만난 듯 음악이야기를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추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허니패밀리 이야기, 별밤 라디오 이야기, 영화 이야기까지 꺼내는 대화마다 맞장구치기 바빴다.
나는 순간 생각했다.
' 나 지금 소개팅을 하는 거 맞나? 나 지금 혹시 내 친구랑 대화하고 있는 거 아닌가'
착각이 들만큼 그와 나는 이야기 꽃이 활짝 피었다.
처음이었다. 소개팅을 하고 첫 만남의 장소를 나오는데 이렇게 즐겁고 내 얼굴에 미소가 담겨 있던 적은 처음이었다. 연하는 싫다더니 이 사람이 연하인지 아닌지 생각도 않은 채 어쩌면 나는 그 카페의 문을 열고 나오면서 다음번 만날 때는 무엇을 할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첫 소개팅이 끝나자마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야 연하남 어때? 어차피 기대도 안 했어 제발 소개팅 안 한다는 소리만 하지 말아라"
"야 나 이제 소개팅은 안 해도 될 것 같아. 좀 더 만나볼게 이 사람 "
"헐..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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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엄마한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엄마 우리 남편 진짜 키만 컸으면 정말 짱이었을텐데 ..가정적이지. 배려심도 있지 나는 그냥 진짜 우리 남편 다 좋은데 말이야 "
그랬더니 우리 엄마가 말했다.
"키가 컸으면 35살인 너한테까지 순서가 안 왔지~진작 다 채갔지 이쁘고 어린애들이 ~ 다들 키가 작아서 우리 사위의 깊은 면모를 못 본 거야~사람이 이렇게 좋은데 그걸 못본 그 애들이 바본거지~키 컸으면 진작 다 채갔을걸? "
헐... 우리 엄마 맞나 싶을 정도로 뼈 때리는 말... 그 말이 맞는 말이라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명언이다.
결혼은 겉모습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더라 깊은 내면 그 진심이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