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텃세도 있답니다..
목욕탕에서의 일에 대해 종종 쓰긴 했다. 아마 브런치에 두 번째로 썼던 글이 목욕탕을 위주로 했던 글이었던가..
사실 목욕탕에서 사소한 하나하나의 일에 대해 얘기하자면 끝이 없다.
별로 쓸 소재가 없어도 회귀하게 되는 지점이 목욕탕 이야기이다. 브런치 글쓰기 버튼을 밤새 누르고 있지 않다가, 아침에도 특별하게 쓸 이야기가 없어서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면서 이방인처럼 서성거리고 있을 때, 거실에서 엄마는 또 어제 목욕탕에서 본 특별한 광경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잊고 있었던 나의 소재, '목욕탕'에 대해 다시 떠올리게 된다.
대부분의 목욕탕에서 탕내 휴대폰 소지가 금지되어 있을 만큼, 목욕탕은 은밀하고 비밀이 잘 지켜져야 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비록 글로 쓰더라도 너무 과하다 싶은 부분은 배제하고 써보려고 한다.
비가 오는 듯 마는 듯할 때 우산을 쓰고 가는 사람이 거의 없을 때, 나 홀로 우산을 쓰다가도 괜히 접게 되고, 지하철을 타면서 자리가 많은데도 서있는 것이 조금 이상하게 보인다는 얘기도 들었다.(뭐, 이건 좀 지나친 면도 있다만) 그런 식으로 주위의 사람들이 다 발가벗고 있는 목욕탕에 나도 같이 발가벗고 씻는 것이 당연스러운 그런 환경이다. 남의 알몸을 초점 두지 않고 보는 것이 별다른 죄가 되지 않는 공간.
몇 달 전 동네의 20년 가까이 된 목욕탕이 경영난에 문을 닫았고, 아마도 그 여파로 엄마는 살이 쪘다고 하셨다. 이후 불어난 살을, 지난 3월 한 달 동안 3kg 빼기가 엄마의 목표였지만, 어제 3월 달력을 떼내면서 그 계획의 실패를 곱씹을 수밖에 없었고, 모녀는 다시 다이어트를 다짐한다.
문을 닫기 전의 동네 목욕탕을 제집 드나들듯이 다니던 아줌마들은, 걸어서 15~30분 거리의 다소 먼 두세 곳의 목욕탕에 다시 터를 잡았다. 이미 그 각각의 목욕탕에서 한껏 자리를 잡고 있던 아줌마들에게는 반갑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뭐, 어쩔 수 없다. 그 아줌마들에겐 기생처럼 느껴지겠지만, 다들 아픈 무릎과 허리에 상생할 수밖에..
작년 말에 운전을 시작하면서, 엄마의 목욕탕 픽업을 내가 맡았다. 걸어서 가실 때도 있긴 하나, 큰 도롯가도 거쳐가야 해서 가급적이면 차로 데려다 드리고 모시고 온다. 가끔 동행할 때도 있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의 목욕탕보다는, 그보다 약간 거리가 있는 시외의 한적한 목욕탕에만 주로 동행한다. 내가 모는 아버지 명의의 차, 모닝의 트렁크에는 언제든 목욕을 할 수 있게끔 목욕바구니가 준비되어 있다.
문을 닫은 동네 목욕탕의 세신사 이모가 이직을 해서 가게 된, A목욕탕은, 엄마한텐 별로 맘에 들지 않았나 보다. 단순히 이모(세신사 언니)와의 정만 보고 그쪽으로 다닐 수도 있었겠지만, 엄마는 꽤 까다롭다. 하물며 엄마의 유일한 취미라고도 할 수 있는 목욕라이프를 굳이 정 때문에 이끌려 다니시진 않는다. 엄마는 A목욕탕 대신 인근에 있는 B목욕탕에 다니신다. 사실 차를 정차하기에도 B목욕탕이 편해서 나는 별반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엄마편한대로~' 하라고 한다. A와 B 중에서 가끔 고민하면 '엄마 가고 싶은데~가시라~' 한다.
A목욕탕에도 장점이 있는 게, B목욕탕보다 엄마의 지인들이 많이 다니시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심심하게 목욕탕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가끔 목욕라이프를 끝내고 아줌마들끼리 외식을 할 수도 있다. 친목도모라 할까..
반면 B목욕탕에는 낯선 이들이 많은 편이라고 들었다. A와 B목욕탕 둘 다, 나는 그닥 마주치고 싶지 않은 '동네 아줌마'들을 마주칠 위험(?)때문에 가길 꺼리는 편이다.
C와 D목욕탕은, 차를 타고 20~30분 나가야 한다. 그만큼 동네의 아줌마들을 마주칠 확률은 작아진다. 올해 서른이라 아가씨라면 아가씨고, 어떤 면에서는 아줌마로 불려도 큰 반박은 못하겠지만, 나는 안면 있는 아줌마들이랑 목욕탕이라는 공간에서 마주치는 것이 다소 부담스럽다. 아마 비슷한 나이인 우리 엄마가, 목욕탕에서 본 뚱뚱한 사람들이나, 특색 있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 집이라는 그나마 밀폐된 공간에서라도 조금 얘기하는 일의 대상이, 다른 아줌마들에게 있어서는 '나'가 될 수도 있는 것에 지나친 걱정을 하는 탓일 수도 있다.
C나 D나 다 텃세는 있는 편이나, 굳이 따지자면 우리 집이랑 좀 더 가까운 C가 더 텃세가 심하다.
어떤 아줌마가 다른 도시에서 온 아줌마를 보고, '여기 오지 마라'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터라, 괜히 C에 오랜만에 들어서면 안 봐도 될 눈치를 슬쩍 보게 된다. 그래도, 엄마랑 함께니 다행이다. 적어도 2대 1로 붙으면 되니까. 엄마나 나나 덩치면에서는 꿀리지 않는다. 이참에 격투기라도 배울까..
다행히 아줌마들의 텃세는 '말발'이나 '예의 없는 행동'으로만 슬쩍 비칠 뿐, 과격하게 몸으로 부딪히거나 머리를 쥐어뜯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만약 텃세를 당하더라도 그저 무시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몇 번 얼굴이 마주친다면 그쪽도 이내 경계심 가득한 꼬리를 내릴 것이다.
D목욕탕은, 좀 낙후되었고 그만큼 더 변두리로 들어가야 한다. 장점이라면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을 인구의 밀도가 낮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단점은.. 뭐 한두 가지가 아닌데 목욕탕이라면 으레 제공하곤 하던 수건을 이번 달부터는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목욕비도 1,000원 올랐다. 목욕비가 다른 목욕탕에 비하면 쌌던 편이라(5,000원) 이게 6,000원으로 오른대도, 다른 목욕탕들이 6,500원~7,000원인 것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 목욕비보다 더 선호도가 떨어진 이유는, 물이 더럽기 때문이다. 최근에 방문한 뒤에 엄마와 나는 꽤 고생을 했다. 여자들이라면 알 것이다. 더러운 물이 치명적일 수도 있는 이유를..
이렇게 한편으로는 유랑민이 되어 떠돌게 된 모녀. 어제 C목욕탕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갑자기 문을 닫은 동네 목욕탕에서의 추억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엄마, 그 엄청 마르고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목욕탕 문 앞자리에서 씻으시던 아줌마 기억나나? 피부는 까맣고, 00아줌마랑 사이 안 좋고. 그 아줌마 목욕탕 이제 어디로 가노?'
'모르겠는데? 00언니 말하는 거가?' (당연히 나는 그 이모의 이름은 모른다.. 결국 그 아줌마의 행방은 미궁 속으로..)
아, 그 동네 목욕탕에서의 추억이 참 많았는데.. 이제는 어딜 가더라도 모녀끼리 가서 모녀끼리 얘기하고 모녀끼리 돌아온다.
그 시절에는 모녀끼리 가도, 엄마는 주로 동네 아줌마들과 떠든다고 몇 시간을 보냈고, 나는 혼자 메이플스토리에 대한 공상을 하면서 탕에 앉아서 엄마를 기다렸다. 이제는 만약 나라도 따라가지 않으면 엄마는 조금 외로울 수도 있겠다.. 목욕탕 안에 있는 좁은 찜질방에 다섯여섯이고 들어가서 커피를 나눠마셨던 시절이 언제였더라.. 할머니가 도망가려는 손녀를 붙잡고 때를 미는 모습을 본적도 꽤 오래전이다.
참, 텃세는.. 남탕에서는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한다. 이 사실은 엄마만큼 '목욕매니아'인 남동생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남탕은, 여탕에서 '최대 2개'로 제한해놓은 수건 개수에도 별다른 제약이 없다고 한다. 여자들은 하도 훔쳐가는지 여기저기 경고문이 붙어있다. '수건 훔쳐갈 시 벌금 0000원 부과'.
그리고 어제는 텃세에 대해서 남동생한테 물어봤는데, '젊은 사람들이 좀 가오 잡으려고 하는 거는 있어도, 아재들은 그런 것은 없다'라고 하더라. 주 5일 일을 하고 목욕은 1~2주에 한 번밖에 가지 않는 동생이지만, 항상 발뒤꿈치가 매끈해서 나도 괜히 각성하고 자극받게 된달까.. 그나마 최근에는 목욕을 좀 해서 발뒤꿈치의 상태가 나은 편이다. 아, 동생이 말하길, '남탕에는 자기 자리고 그런 건 없다.'라고 하더라.
반면 여탕에서는.. 특히 오래된 동네의 작은 목욕탕에서는.. 다들 '자기 자리'를 침범하는 것에 신경이 예민하다. 마치 목욕탕에 조금의 지분이라도 있는 양, 뉴페이스의 등장과 자리 자리에 대한 (그들의 입장에서는) 약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누구누구의 목욕바구니들은 락카 위에, 선반 위에 각자의 자리를 잡고 있고, 여기는 00언니 자리, 저기는 00동생 자리 이렇게 부르던 시절이 우리 동네 목욕탕에도 있었다.
이미 그 질서에 대해 어느정도 파악을 하고 있는 '달목욕'러들은, 목욕탕의 어느 좋은 자리가 비어있어도 '곧 00언니가 오는 시간'이고, '00언니가 주로 앉는 자리'이므로 일부러 배려해서 비워두기도 하더라.
그 시절 어린 나는, 엄마들의 그런 체계에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고 순종할 수밖에 없더랬다.
약 10여 년 전, 기차여행을 통해 어느 도시의 작은 찜질방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한눈에 봐도 음침하고 어둑하던 그곳에서 여행용 목욕세트를 눈 깜짝할 사이에 도난당한 적도 있어서.. 목욕탕에 대한 인식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그래서 더욱더 '혼자'는 안 가게 되는 듯하다. 무조건 거의 엄마랑 같이 가고, 락카 키를 그냥 목욕바구니에 두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엄마와는 달리, 나는 항상 손목에 차고 다닌다. 가뜩이나 '낯선이'들만 가득 찬 C나 D목욕탕만 주로 가는데, 누구 하나 쉽사리 믿을만한 이는 없다. '내가 그러려니 말거니~' 엄마는 목욕바구니 깊숙한 곳도 아닌, 제일 덩치가 큰 바디워시 꼭다리에 꺼내기 좋고 보기 좋게 락카 키를 딱 끼워 놓는다. 뭐, 이문제로 엄마랑 싸우지 않아도 다른 티격태격할 일이 많아서 잠자코 있기는 한다. 그래도 수시로 자리로 돌아올 때마다, 엄마의 락카 키는 잘 있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들었다.
'목욕탕에서의 별난 사람들'에 대해 쓰려고 마음먹고 시작했으나,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쓰다 보니 글이 너무 길어졌다. 사실 별난 사람들이라도, 일부의 단편적인 모습들뿐이라서 그들에 대해 긴 이야기를 푸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간단히만 적어보면, 아줌마들에게는 목욕탕이 곧 '수영장'이고 '헬스장'이라서, 마치 수영선수같이 냉탕을 휘젓고 다니시는 분들도 왕왕 있고, 벽에 붙어있는 샤워기 물을 맞으면서 양치질을 하는 중에도 스쿼트를 하시는 부지런한 모습을, 탕에 있던 엄마가 감명 깊게 보았다고 한다. C목욕탕의 경우에는, 세신사 이모가 락카룸번호로 사람을 호명하는 것이 특색 있기도 했다.(다 그런가?, 오는 사람들만 왔고 크기도 작았던 동네 목욕탕에서는, 그냥 이모가 손만 까딱까딱하면 알아서들 가고 그랬는데..)
울 엄마는 물을 500미리~1리터 정도 마셔가면서 사우나에 들어갔다 나왔다, 마치 찜질방 불가마에도 온 것마냥 땀(엄마 말로는 '독소')을 빼신다. '엄마가 그러려니 말거니~', 나는 어지러운 사우나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탕에 얼씬, 벽 샤워기에 얼씬, 앉는 자리에 얼씬거린다.
이도 저도 질릴 때는 탕에 몸을 반만 담그고 앉아서, 사람들이 이리저리 알몸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부담스럽지 않은 선을 지켜가며 쳐다보는 일도 목욕탕에서의 지루한 시간들을 스마트폰 없이 보내는 방법 중 하나이다.
아줌마들이나 할머니들은, 간혹.. 왜 그 특유의 오지랖이랄까.. 과도하게 선을 넘으면서 부담스러울만한 시선이나 질문을 던지는 경우도 왕왕 있어서, 가끔 엄마도 그런 기질이 발동할 때가 있어서 내가 애써 자제시키기도 한다.(항상 별로 달갑지 않아 하시지만..)
이미 한 텃세나 자리를 잡고 있는 아줌마/할머니들은, 특히 몸매가 좋은 '뉴페이스'의 등장에는 대놓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하는 느낌이다. '저 아가씨는 뭐하는 사람인교?', '남편 밥도 안 해주고 이 시간에 여 나와서 뭐하는고?' 이렇게 다소 선을 넘은 생각들과 그들만의 '속으로 삭여야 할 혼잣말'을 대놓고 하기도 한다.
몸매가 좋지 않은, 뚱뚱한 사람들도 종종 이런 텃세줌마&텃세머니들의 표적이 된다. '와이구야, 뭐 먹고 저래됐는고?', '직장은 다니는가?'..
목욕탕, 특히 여탕에서는 이런 불쾌한 '말말말'들도 (특히 귀가 밝은 나에게는 더 잘) 들려오니, 나에겐 그렇게 행복하거나 달갑지만은 않은 곳이다. 내가 제일 가는 연장자(+목욕탕 출석 지분 1위)라면, '조동아리 좀 다물어라!'라고 엄포를 놓고 싶다는 것은 단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할 뿐...
오직 나에겐 '엄마와 함께하는 것'이 더 중요해서 가고 있을 뿐인데..
나도 무릎이 불편해지고 여기저기 아픈 아줌마, 할머니가 되면 목욕라이프가 필수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다짐해본다. 쓸데없이 남에 대해 씹어대진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