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을 여유롭게 즐기는 법

나 대신 엄마를, 엄마 따라다니기, 미리 체력 모아오기, 안경

by 박냥이

저녁에 일정이 있어서, 오전부터 목욕 갈 채비를 서둘렀다. 시골에서 돌아오신 뒤에도 매일 오전을 집안일한다고 바쁘게 보내시던 엄니는, 집안 곳곳을 대각선으로 오가셨고.. 가뜩이나 안 좋았던 몸이 끝없이 벌어지는 집안일 때문에 더 안 좋아 보였다.

"엄마, 목욕 가자."(엄마한테 더 이상 집안에 일을 벌이지 마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음)

"산에는 안 가고?", "산에는 이틀에 한 번씩 갈래."

집 근처의 목욕탕도 괜찮지만, 어딜 가나 자동차를 탈 예정이었다. 최근에 간 한 군데는, 2층이 여탕이고 3층이 남탕이었는데, 시설은 꽤 괜찮았으나 남탕에서 물장구치는 소리가 여탕에까지 울려서 왠지 불안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쓸데없는 걱정 덕에 원래 모녀끼리 자주 가던 방향으로 향했다. 그렇지만 그곳으로 가는 것도 그닥 쉽지 않았다. 평일 정오가 가까워진 시간, 근방에 위치한 공업단지로 트레일러나 큰 화물차들이 쉴 새 없이 들어가서, 직진이 가능한 2차선도 점령해버린 것. 뒷좌석에 앉아계신 엄마도, '여기 위험하다'라고 하셨고,

나는, '거기가 무너질 확률과, (큰 차가 많이 다니는) 이곳을 다니며 혹시 사고라도 날 확률 중 뭐가 더 클까'라는, 엄마 입장에서는 '되도않는소리'를 했다. 둘 다 제발 없었으면 싶은 일이다.. 제발!(과잉걱정의 뫼비우스 띠)


지역화폐카드가 사용 가능한 곳이라, 이번 몫은 내가 결제를 했다. 엄마는 미리 수건과 키를 챙기고 계셨다.

이번에도 목욕을 한번 느긋하게 해 볼 맘을 먹었다. 마침 등에 부황을 뜨신다는 엄니 말씀에, 도와드린다 했다.

먼저 몸을 불리고 등의 때를 밀어드렸다. 저번에 대책 없이 너무 세게 밀어서 엄마의 피부가 벗겨지기까지 했어서.. 이번에는 '살살'. 생각보다 때가 꽤 나왔다.

'밥 먹고 때만 만드나 봐' 엄마가 저번과 같은 농을 꺼내신다.

그러고 나서 실리콘 부황을 등줄기에 두열로 부친다.

다시 '우리 공룡'탄생. 부황을 나열해놓으니 그 모양새가 공룡의 갈기랑 비슷해 보인다.

엄마는 10분 간격으로 우리의 세신 자리로 돌아오셨고, 그때마다 부황을 떼고 미지근한 물로 자극받은 피부를 문질러드리고, 새로운 바깥쪽 위치에 부황을 붙이는 것을 서너 차례 반복했다.

나중에 탈의실의 아줌마가 보시고, '와이구~제대로 하셨네'하고 엄마의 등허리에 남은 부황자국을 보시고 놀라셨다.

엊그제 목욕을 했던 터라, 생각보다 때가 많이 나오지 않아서 재미없고 수확 없는 내 몸의 때를 밀기보다, 엄마 몸의 때밀기에 집중했다. 굳이 때가 안 나오더라도, 살살살 문질러드리면서 혼자서 씻기 힘드신 부위들을 마사지를 해드렸다. '딸이 최고제~'라는 생색을 한껏 내면서.

오늘따라 모녀의 목욕 경로가 생각보다 많이 겹쳤다. 마사지 펌프가 있는 미온탕에 사람이 거의 없어서, 모녀끼리 들어가서 100초 정도 지속되는 물펌프로 등허리와 발마사지를 했다. 매번 버튼을 다시 눌러줘야 한다. 그곳은 평소라면 단골 아줌마들로 가득 차서 10번 왔다면 이번 한번 겨우 들어가 본 것이다.

비록 엄마가 늘 드나드시는 사우나(찜질방)에는 거의 머물지 않았지만, 열탕, 온탕, 미온탕은 계속 따라다녔다. 사이좋게 두유 2개를 3,000원 주고사서 각자 마시고 점심 요기를 했다.

어제 먹었던 매운 음식 때문인지 아침부터 속이 그리 좋지 않았는데, 조금 있다 보니 점차 나아지는 것 같았고, 제일 나아진 것은 엄마 등을 밀어드리고나서부터였다.(일하다 보면 몸 아픈 것도 잊는 것이 이런 걸까)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미세한 허기가 조금씩 올라오는 것이 느껴지자마자 두유를 뜯었다. 엄마 입맛엔 많이 달다 하셨지만, 나에겐 바나나우유보다는 덜 달고 꽤 맛있었다.

이번에도 3시간을 거뜬히 버티고 있으니, 엄마가 '웬일이냐'라고 또 물으셨다. '엄마 옆에 있는 게 좋아서'. 엄마는 표정으로 답하신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도 엄마보다 좀 더 일찍 나가서 머리 말리고 화장품 바르고 바빴다.

나는 엄마보다 준비 속도가 느려서 어차피 같이 나오더라도 엄마가 날 기다려야 할 것이다.

나의 락카 쪽에 하나의 락카가 열려있고, 그 앞의 의자에 어떤 아주머니가 앉아계신다. 하필 락카가 바로 옆이라, 조심스레 들어가서 당장 필요한 것만 쏙 빼서 넓은 공간으로 빠져나왔다. 머리 말리고 거의 준비를 다하고, 남은 물건들을 마저 꺼내러 여전히 계시는 아주머니와 열려있는 락카 옆으로 다시 쭈뼛 들어갔다. 다음에 다시 열지 않아도 되도록 물건을 다 빼는 중, 아주머니의 말씀, '매번 엄마랑 같이 와서 부러워~ 나는 딸이 없어서..'

사실 이 목욕탕에서 엄마나 매점 아주머니 외의 다른 손님이랑 얘기를 해본 적이 없어 흠칫 놀랐다.

여탕에만 유독 심한 텃세에, 집에서 이곳까지 차를 타고 들락날락거리니 무심결에 눈치를 보고 있던 터였다.

'아, 원래는 같이 잘 못 오는데, 제가 요새는 시간이 되어서요..'

엄마가 그 모습을 봤는지, 곧 나와서 '저 아줌마 저번에도 부럽다했는데, 자긴 아들만 둘인데 한 명은 외국가있고, 한 명은 서울에 있대.'

모녀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느낌이었다.(엄마는 별생각 없으셨을지라도, 나는 오늘의 짧은 대화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먼저 출구로 나서는 그 아주머니께 꾸벅 인사를 드렸다.

안경을 그제서야 착용한 터라 아주머니의 얼굴을 슬쩍 들여다보고 다음에 볼 경우에 대비해 기억해보려 했다.

집 화장대 서랍에 안 쓰는 안경이 있는데, 목욕탕에서 엄마가 당연히 보는 것도 내게는 흐릿해서 잘 안 보일 때가 많고, 엄마가 멀리 있으면 누군지 분간이 잘 안 될 때도 있다.

욕탕 안에서 안경을 쓰면 씻을 때 불편하긴 하지만, 안면을 튼 사람도 생기고 하니, (혹시나 싹수없게 무시하고 지나가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선명한 시야로 먼저 알은체를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뭐, 사는데 별사람 있나.. 다 사는 게 거기서 거기지.

서로 해만 안 끼치고 살면 되지 않을까.


참, 오늘의 목욕을 이례적으로 꽤 긴 시간 동안 버티고 있을 수 있었던 데에는, 다른 때보다 일찍 하루에 제일 먼저 목욕을 하러 온 덕인 것 같다. 그래서 그만큼의 체력이 남아있던 것.

반대로 현재 오후 9시 20분. 눈가에는 졸음이 가득하다. 정말 비몽사몽 한 상태에서 귀갓길을 서두르고 있다.

다음엔 평일 저녁 일정은 좀 힘들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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