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파마, 나는 염색하고 통도사를 걷다

무풍한송로, 뜻밖의 식량, 독소해독

by 박냥이

어제 미용실에 전화를 하니, 당일에는 예약이 다찼다고 하셨다. 그래서 오늘 첫 번째로 예약을 했다. 동시에 두 명, 엄마와 내가 각각 파마와 염색을 하기로 한 것.

제일 첫 타임인듯한 10시 30분에 예약을 잡았다.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의 동네 미용실. 일전에 앞머리에 대한 일로 다시 방문하지 않겠다 생각했건만, 원래 그런 일도 자주 잊어버려서 '그냥 편한 게 최고다'하고 어무니와 10시 20분경 가볍게 크록스를 걸치고 미용실에 내려갔다.

내가 약 1분 빨리 도착. 원장님은, 어차피 염색을 먼저 시작해야 하신다 하셨고, 나부터 착석을 했다.

갑상선암수술 반년차. 5년 동안 괜찮아야 완치 판정을 받기에, 사실상 암환자ing임에도, 염색을 하는 것이 약간 죄책감이 들었고 고민이 되긴 했었다. 화학약품의 일종인 염색약을 머리에 떡칠하고 있는 중에도, '이게 맞는 건가' 하는 의문이 스쳐갔다. 결론은, (여러모로) 환경에도 그리 도움되지 않는 '멋내기용 염색'은, 정 하고 싶으면 '일 년에 한두 번만 하자'고 마음먹었다. 비용은 근처 시내의 여느곳과 달리 꽤 저렴했던 45,000원. 그동안 자가 염색을 한두 번 해왔지만 기대했던 만큼 밝은 색을 낼 수는 없어서 미용실의 힘을 빌렸다. 이제 곧 취직을 해야할 때라, 앞으로 밝은 색으로 염색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을 것이다. 내가 염색을 하는 동안, 엄마도 파마를 하시고, 1인 미용실 윈장님의 갖은 노력 끝에 모녀는 오래간만에 스타일 변신에 성공했다. 이왕 했으니 후회하진 않으려고 한다. 대신 더 건강관리에 전념해야겠다.

우리는 일단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아침에 만들어놓은 김밥으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어무니는 약 10분 동안 곤히 주무셨다. 나는, 최근 관심 있게 보고 있는 넷플릭스의 여러 동영상을 집적거리다가 이내 일어나시면서, '다 잤다'라고 하시는 엄마랑 계획했던 장소인 통도사로 출발했다.

우리끼리는 벌써 아침부터 머리하고 통도사에 바람 쇠러 가자 했던 것.

엄마가 트로트를 좋아하신다고 내친김에 크게 트로트를 틀고 가다, 몇 번 아찔했던 순간도 있어서 역시 아직은 시끄러운 음악을 틀만한 때가 아니다 싶었다. 30년 가까이 운전하시는 아부지나 그렇게 시끄러운 노래에도 개의치 않으실 것이다. 반면 나는 겨우 몇 개월 된 초보운전이다.

곧 통도사에 도착. 약속한 대로 차를 경내에 끌고 들어가진 않고, 입구 주차장에 대고 걸어서 올라갔다.

무풍한송로였나.. 여태껏 차로 통도사를 다녔었는데, 그동안 못 봤던 장관을 보고 느꼈다. 소나무가 참 멋졌다. 화공약품으로 염색을 한터라, 머리가 좀 띵하고 괜히 컨디션이 안 좋아진 듯했는데 소나무길에서 신선한 공기를 들이켜니 한결 상태가 나아지는 듯했다. 엄마가 늘 강조하시는 '독소해독'의 순간이 이런 것일까.

사진은 내려오는 길에 찍은 사진이다.

옆에 계곡물이 흘러가서 여름에 이 길을 걸으면 참 좋겠다 싶었다. 중간에 카페도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하늘 아래 소나무의 장관을 구경했다.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 같았다. 무슨 고민거리가 생긴다면 찾아도 좋을만한 장소라 여겨졌다. 계곡물에는 송사리들도 보였다.

약 20분여를 걸어 올라가니, 점심 먹은 게 소화도 되고 몸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곧 부처님 오신 날이라 그런지 절내엔 못 보던 등들도 많이 보였다.

엄마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햇빛과 나무의 벤치'에 한참 앉아서 엄마의 MBTI 검사도 해보았다. 연두색이 참 보기 좋다. 한없이 평화로운 느낌. 벤치에 앉아 다리 쪽에 비치는 햇볕을 받으니 참 따듯했다. 이곳은 계절마다 다른 풍경인데 지금 시기가 제일 멋진 것 같다.

벤치에 딱 붙은 엉덩이를 일으켜서 걸어 다니며 대웅전 앞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떡을 받았다. 오늘 절이 왠지 붐비는 것 같았는데, 이렇게 떡까지 받게 될 줄이야..

뜻밖의 소확행이었다. 감사하고 한결 넉넉해진 마음으로 왔던 길을 걸어 내려왔다.

집에서 저녁으로 떡을 잘라먹었는데 참 맛났다. 내가 좋아하는 콩시루 떡. 시골 가면 할머니가 가끔 떡집에서 해오시는데 그것보다 더 맛있다.

오늘은 동생의 워크샵으로 모녀의 오붓한 둘만의 시간은, 밤이 올 때까지 계속된다. 노트북으로 글을 쓰면 자세가 더 편하긴 하지만, 엄마 곁에 더 머무르고 싶은 마음에 엄마 옆에 누워서 폰으로 글을 쓰고 있다.

엄마는 벌써 꿈나라시다. 나도 곧 꿈나라로 같이 갈듯.

비좁은 소파에서 한참 치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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