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늦은 저녁 모임은 조금 힘들다
한마디로, '내 삶'에 신경을 둘 부분에서 이런 것들은 배제될 가능성이 다분해 보인다. 보통 나이가 들면 만나는 사람들만 만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모임 자체의 시간보다는 모임을 (보통의 경우 가장 먼저 와서) 혼자서 기다리는 시간이나, 끝나고 집으로 홀로 향하는 그런 시간들을 더 좋아하고 즐긴다. 지하철에서도, '그 시간' 동안 할 일에 대해 계획을 짜보았다. 아마, 브런치 글을 쓰려고 했을 텐데, 30분이 생각보다 빨리 지나가서, 곧 '울렁증'과 맞닥뜨려야 했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대면할 때 약간의 울렁증이 인다. 그 뭐지.. 입덧을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왠지 입덧의 그 느낌과 비슷한 느낌으로, 위장에서부터 울렁거림이 목까지 올라오고. 왠지 모르게 긴장하는 신경들도 느껴진다. 애써 가장 편한 위치와 자세로 그 시간을 감내해보지만, 최소 한 명이랑과 인사를 나누기 전까지는 그런 증상이 쉬이 가시지 않는다. 이러한 부담스러운 면에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고집하는 것은, 1) 아직까지 잡다한 인간관계에 대해 일말의 미련이 있어서 그렇거나 2) 그래도 히키코모리로 사는 것보다는 사람들과 '억지로라도' 소통해야 된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래 직장생활을 하던 중에는 가족 외의 타인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으나, 작년 말부터 병원 수술 등으로 일을 쉬고 있기에, 주로 대화하는 이가 가족에 한정되어버렸다. 그동안 교류하지 못했던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장점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세상사와 또래들의 생각에서 도태되어 버리는 느낌이라(꼭 그렇지만도 않겠지만) 억지로라도 모임에 뛰어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모임에 참여하는 것으로써, 내가 쉽사리 변화하거나 영향을 받는 것도 아니다. 약간 고지식하고 요새 '유교걸'이라고 많이 부르는, 그런 보수적인 면이 많은 나로서는(+피해망상적인 과한 생각도 꽤 지나친 면이 있다) 술자리에서 웃고 떠들면서 보통 예쁘장한 여자들만 (그 자리에 같이 있던 남성에 의해) 사진이나 동영상이 찍혀서 올라오는 그런 단톡방의 모습이 한편에서는 불쾌한 기분이 든다. '진정 여긴 나와 맞지 않는 곳인지'하고(어쩌면 세상일이 다 그러할 진대도, 나 자신이 어떠한 유별난 기대를 품고 모임에 임하는지는 모르겠다), 심지어 한 번도 참여해보지 않은 모임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선입견부터 가지게 되는, 고리타분한 구석이 있다. 게다가 그런 여자의 술병을 든 묘기(?) 동영상에서, 옆자리에 앉아있던 다른 여성이 누군가 들이대는 카메라에 곧바로 자리를 피하는 모습도, 괜히 여자라서 그런지 탐탁지 않았달까.. 뭐, 그들의 인생이니 내가 뭐라 할 것까진 아니지만.. 특정 성별에 대해 호불호가 강한 것도 아니고, 단지 사람의 성격에 따라 싫었다가 좋았다가 하는 변덕스러움도 있다.
기존 투표인원을 보고 온터라, 예상은 했었으나 총 4명 중 나 외에 3명은 다 남자였다. 이런 경우에는 나는 그저 중성적으로 구는 편이다. 먼저 안면이 있는 모임장님. 한 번밖에 보지 않았지만, 차분한 면이 있어서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은 과장스러운 느낌이 좀 사그라들었다. 다음으로 2명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매번 '3인 이상'이 되어야먄 그날의 일정이 확정되는데, 처음에 투표한 모임장님, 나, 그리고 나머지 한 명 중 그 한 명이 모임이 거의 확정된 시간까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인) '일이 늦어지면 잠시 얼굴만 비추고 갈까요' 이런 식으로 간을 보는 듯한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누구랑이든지 약속을 가벼이 생각하는 모습에, 만나기 전부터 그 사람이 혐오스러웠지만, 실제로 그 사람이 왔을 때는 내색하지 않았다. 이분이 제일 마지막으로 도착하기 이전에, 나보다 1살 어린 한분이 오셨고 다소 어색한 인사를 3인끼리 먼저 나누었다. '모임장'의 자리에 있어봐서 알지만, 내가 이미 안면을 튼 2인을 서로 인사하게 하는 일 따위는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특히 다 모이기까지 기다려서 그 과정을 진행할 경우, 기다리는 사람들 간에는 굉장한 무게의 어색함이 감돈다.
그 '애매했던 이'는, 아마 백화점 같은 데서나 구경할 수 있을 법한 화려한 정장 차림으로 아마 퇴근길 바로 온듯한 모양새로, 얼떨결에 들어보기에 명품 같은 모양의 클러치를 들고 들어왔다. 대개 이런 부류가 그렇듯, 자신의 일과 정치적 얘기를 얼마 지나지 않아, 열성적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가뜩이나 오랜만의 저녁 모임에 체력이 반쯤 나가 있던 나는 정신이 가출해버리는 것을 느꼈다. 이제,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예의상 답변을 해주는 시기는 이미 나에게 지나버렸던 것이다.
이제는, 상대방이 불편하더라도 내가 편하고, 솔직하게 행동하는 것이 더 나은 나이가 되었던 것.
단지 내게서만 별다른 대꾸가 없음을 느꼈는지, 그는 '아, 재미없죠, 죄송해요'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나의 그런 태도들이 그의 그런 사과를 바란 것은 아니어서 조금 무안했다. 자동적으로 방전이 되어버린 것을 어쩌랴.. 이미 지나간 일인데 하하..
사실 그 사람의 옷차림이 그리 화려하다 해도, 그 사람이 마냥 '세 보인다'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나의 경험상, 같이 대학 동기로 지낸 많은 (꽤 나이차가 있던) 언니들 중 화장을 진하게 한 언니들은 오히려 멘탈이 약한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진한 화장으로 연약한 자신을 숨기려고 하는 것 같이도 보였다.
나도 또한, '마냥 순해 보이고 싶지 않거나, 얕잡아 보이기 싫을 때' 안 하던 화장을 종종 하곤 한다. 혹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누군가 나를 깔볼만한 일에서' 마냥 약해 보이고 싶지 않을 때나.
그가 정장을 입은 것은 업무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화려한 무늬의 클러치까지 들고 다닌다고 그에게 거리감을 둘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도 어쩌면 이전의 그 언니들과 같이 '유리멘탈'인 자신을 그런 것들로 보호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어떠한 연민이나 걱정 어린 마음을 느낄 필요도 없고, 여타의 평범한 사람처럼 대하면 되는 것이다. 마치, 철부지 친오빠나 집안에 널브러져 있는 남동생과 같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쓰고 보니, 중년의 남성 면접관을 대할 적에, 긴장감을 풀기 위해 '저 사람도 우리 아빠처럼 집에서는 난닝구에 팬티 차림으로 누워서 티브이를 보겠지'하고 생각할 수 있다는 짤을 봤던 것이 생각난다+ M이모가 늘상 해주는 말(사람 밑에 사람 없고 사람 위에 사람 없다))
그리고, 많은 외국의 영화에서도 묘사되듯, 여자들이 남자의 정장 차림에 혹하는 경우가 있다고 비치는데, 나의 경우에는 오히려 부담스러웠었고, 오히려 나의 후줄근한 차림이 대비되는듯하여 잠시 신경 쓰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번듯한 모습에 가슴이 콩닥콩닥 그렇지는 않았다. 만약 매일 후줄근하게 입고 만나는 남친이 '어느 날 갑자기 일이 생겨서' 그렇게 차려입었다면 약간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낯선 타인들과 만나서 디저트 내기로써, 가위바위보 같은 것도 정말 오랜만에 해보고, '나중엔 쓰일 일이 있겠지'하고 별 관심이 없는 이야기에도 나름 귀를 기울여보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정장맨'은, 이전에 타 모임에서 만나본 어떤 분과 비슷하게 행동했는데, '모임 활동 자체'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남은 잔업을 처리하고 모임과 관련 없는 활동으로 꽤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오후 10시 이전에는 귀가하는 것을 목표로 온터라, 얼마 지나지 않아 오후 8시 반, 모임장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귀갓길을 서둘렀다. 역시, 다시 혼자로 돌아오니 좋았다. 어쩌면 이런 '홀로 있음'을 당연시 여기지 않고 새로이 체감하기 위해서 나에게 가끔씩 모임이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
이번 모임에서는, 저마다 떠드는 중 몸을 약간 뒤로 젖힌 채 대화에서도 물러나 있었다. 대화에 섣불리 나서서 개입하기보다는, 그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은 대개,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더라. 특히 이런 다소 어색한 상황에서, 나에게는 이렇게 경청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 하나의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태도랄까..
귀갓길을 눈치 보지 않고 제시간에 출발한 덕에, 그리 늦지 않은 시간에 잠자리에 누울 수 있었다.
'뭐, 그래도 나름 괜찮았어' 하고. 그날의 시간을 돌이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