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스위치를 켜는 자와 끄는 자

"누나가 빨래 널어놓은 모습은 마음에 안 들어"

by 박냥이

나에겐 2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다.

놀이터에서 늘 깍두기 신세였던 동생은 어느 순간부터 내 키를 훌쩍 넘어섰고 어머니의 잔소리 내용에서도 나보다 (좋은 쪽으로) 우위를 점한다.

지금 당장 부엌에 서서 내 방을 뒤돌아봐도 엄마와 남동생이 늘 하는 말, '피란의 현장', '난장판'임에 수긍하게 된다.

'누가 왔다 갔는지 대번에 티가 난다'할 정도로 내가 지나간 자리에는 '흔적'이 남는다.

그 뒤처리는 대개, 나 스스로 처리할 때까지의 '로딩 시간'을 못 기다리는 어머니와 동생에 의해 행해진다.

직장에서는 종종 볼펜을 떨어뜨리곤 했는데, 과도한 업무량에 지쳐있던 나는, "그냥 놔두시면 돼요"라고 같이 일하는 직원분께 수차례 말하기도 했다. 좀 있다 주우면 되지, 급한가... 이런 생각을 했지만 불과 몇 초 뒤에 볼펜은 그 직원분의 손에 의해 건져 올려졌다. 후에 업무의 배치가 좀 바뀌어서 그 직원분의 업무량이 많아졌을 때, '00님이 왜 그리 말했는지 힘드니까 참 이해가 가더라'라는 말을 들었다.

작년 9월, 수술을 앞두고 급격하게 몸이 안 좋아진 나는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수행해오던 '가장의 자리'를 내려놓아야 했고, 운이 좋게 동생이 내가 퇴사하기 이전에, 그 자리를 물려받음으로써 집안내에서의 업무분담도 배치가 이루어졌다.

기존처럼 요리는 어머니가 하시는 큰 틀은 바뀌지 않았지만(항상 감사한 어머니), 청소 설거지 빨래 장보기 등은, 기존에 어머니를 도와 열심히 해오던 남동생이 출근하고 그런 일들에 무관심하던 내가 쉬게 되면서 이제는 내가 어머니를 도와하게 되었다.

요리도 종종 도와드리긴 한데, 그리 자주는 아니고 기껏해야 돕는답시고 하는 일도 카레에 들어갈 야채를 썰거나, 아침에 먹을 사과를 깎는 그런 부차적인 일들이다.

그래도 빨래를 너는, 비교적 지식이 덜 요구되는 일은 도맡아서 하는 편인데 그마저도 퇴근한 동생 눈엔 (빨래를 널어놓은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치... 그럼 지가 다하든지...'

우리 집에서는 와이파이를 쓰려면 스위치를 켜놔야 하는데 외출 시에는 (동생의 경우엔) 무조건 끄는 편이고, 나랑 어머니는 (TV에 다시 연결되는 로딩 시간이 귀찮기도 해서) 켜 두기도 한다.

밤늦게까지 태블릿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려면 거실의 그 스위치를 켜놓아야 하는데, '부지런한' 동생이 벌써 꺼버리면 방 안에서, '와이파이 쓴다 ~끄지 마라~'라고 외칠 때도 있다.

거실 텔레비전 스위치를 매번 끄는 사람도 대부분 동생이고, 스마트 티비 기능을 이용할 때 항상 셋톱박스를 끄는 일도 동생이 주도해서 나도 실천하게 된 일이다.

이런 알뜰살뜰한 동생은, 청소기를 밀면 바로바로 먼지주머니 청소를 하고, 직장생활로 힘들 텐데도 습관적으로 의자에 걸린 옷들을 다시 바로 정리하고, 설거지 그릇을 놓은 쟁반의 물을 털어 내고, 현관의 신발을 정리한다. 나로서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깔끔한 동생의 눈에, 온갖 잡동사니가 널브러져 있는 '누나방'은, 구제 불가능한 그런 곳일 거다.

가끔 청소기를 돌리는 어머니와 동생이 내 방의 물건들을 한 데 모아 놓거나, 정리해주시긴 하는데, 어쩌면 나는 그런 고마운 행동들을 당연한 듯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런 깔끔쟁이 동생이라도, 사람의 에너지는 유한하니 안 하는 일들도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가스레인지를 닦는 일'이다.

인덕션이 아니고, 그냥 옛날 가스레인지인데 음식이 넘쳐흐르거나 튀거나 하면 자국들이 많이 남는다. 제때제때 안 닦아주면 굳어버리는데, 이런 자국들을 제일 열심히 닦아 내는 분은 역시 어머니이고, 그다음으로 내가 가끔씩 설렁설렁 닦는다.

요새 동생이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가끔 동생 방에 들어가서 쉬다 나올 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귀신같이 알아채더라.

'누가 내방을 이리 어질러 놨냐~'하고 핀잔을 줄 때면 못 들은 척 킬킬거리는 밉상이 바로 나다.

동생의 책상은 어쩔 때 보면 숨이 막힌다. 아마 군대에 다녀와서부터 더 그런 것도 있는지, 모든 물건은 정방향으로 놓여 있고, 특정 위치에 특정 간격으로 놓여있다.

수건이나 양말 등은, 가족들이 다 같이 쓰는 공간으로부터 벗어난 동생 방의 동생만의 위치에 있는데, (수건은 베개에 깔고 자는 수건) 그 정돈된 모습을 보면 나로서는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동생이 신는 양말들은 같이 묶어 개는 것이 금지다. 뭐 양말 목이 늘어날 수 있다나 뭐라나.

오죽하면 개어 논 빨래 중 동생 것들은 그냥 알아서 정리하라고 침대 위나, 책상 위에 두고 나오는 편이다.(가끔씩 주말마다 옷장 정리도 그렇게 열심히 하더라)

"야, 니 마누라는 억수로 피곤하겠다"하고 놀리기도 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공생하고 있다.

직장과 집만 왔다 갔다 하던 몇 년 동안 집안일의 중요성에 대해 잊고 살았다. 예전에 어떤 글을 보니, '집안일을 하는 것이 정신에 꽤나 안정감과 위로가 된다'하더라.

비록 보잘것없어 보이고 보수도 없는 설거지나 빨래 널기 같은 일을 하고 있다 보면, 확실히 뭔가 안정감이나 차분함이 생기기도 하더라.(절대 '짜증'이나 '생색'부리면서 하려고 하면 안 된다, 집안일은 누구 하나만의 몫이 아니라 그 집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소임이다)

아직까지도 주말이면, 빨래를 너는 일은 동생이 먼저 선점해서 하려고 하는 편이다.

그래도 어쩔 거야. 평일에는 일하러 가니 누나가 빨래를 어떻게 널어놓든 참고 살아야지?

엄마와 동생이 입 모아 말하는 '물 칠갑이 된 싱크대'일지라도 누나가 설거지하는 게 어디냐?(생색내면 안 된다 해놓고 생색)

오늘은 하루 종일 동생과 집에 같이 있을 거 같다.(삼일절~)

", 잔소리 좀 고마해대고 고마 자라."

어제는 동생은 내가 소파 위의 이불을 늘어뜨려 놓고 퍽 나자빠져 있는 모습을 찍고,

나는 동생이 퇴근 후에 (엄마가 말하는)'살찌는 음식'들을 은밀하게 펼쳐놓고 맥주캔을 쌓아 놓은 그런 모습을 찍어서 '가족 단톡'에 보내면서(부모님이 타지에 놀러 가심)

'디스 및 고발전'을 펼쳤더랬다.

비록 한 발짝 늦어서 '재빨리 맥주캔을 숨기는 모습'을 포착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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