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울렁거림
몸이 아프면 잔걱정은 사라진다
아마 어제 먹은 순대 또는 회가 화근인 것 같다.
특이점은 같이 먹은 아버지, 어머니, 동생은 큰 증상이 없고, 그나마 저녁에 따로 차돌박이를 드신 어머니는 체한 듯 식겁하시긴 하셨지만 내가 조금 주물러드리고 약을 챙겨드려서 아침에는 괜찮다 하셨다.
나도 같이 약을 챙겨 먹고 잠은 잘 잤으나, 아마 잠을 깨는 것과 동시에 울렁거리고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지금도 바닥에서 자는 나는, 종종 잡일을 하러 일어나는 것이 귀찮다. 그렇다고 침대를 당장 사고 싶은 것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바닥에서 뒹굴면서 자서 뭔가 바닥이 편할 때가 많다. 다리를 뻗으면 닿는, 식은 방바닥에 가끔 자는 동안의 열기를 가라앉히기도 한다.
가만히 버티면서 토를 할 수는 없었기에, 바로 식탁으로 가서 배탈약을 먹었다. 짜 먹는 물약인 그 약을 먹고 얼마 버티지 못하고, 토를 했다.
어제저녁을 조금 먹어서 그런지 신물과 침만 계속 나왔다. 정말 오랜만에 '위장과 식도의 존재감'을 느꼈다. 어떻게든 토를 해서라도 이 울렁거림을 떠나보내고 싶었고, 그런 내 생각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위(胃)에서부터 전율이 일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변기에 토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동안 변기 자체의 더러움 때문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으나, 어쩌나... 그렇다고 화장실 바닥이나 세면대는 아니다. 하는 수 없이 나도 변기에 토를 해댔다. 한쪽 눈에는 눈물이 나오고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차가운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있으니 없던 기운마저 빠지는 듯했다.
'엄마~'하고 우리 집에서 내 방과 가장 먼 방에 주무시는 어머니를 불렀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겨우겨우 진정된 나는 어머니가 계시는 거실 화장실로 가서 당장의 상태와 토를 한 것에 대해 말하고, 걱정해주시는 어머니의 간호를 받으며 아침 시간을 보냈다. 생리통 때문에 자주 썼던 황토온매트 작은 것이 어제 어머니가 탈이 났을 때나, 오늘 아침 내가 끙끙댈 때 꽤 도움이 된 듯하다. 몸이 따듯하면 혈액순환도 잘 되고 이어서 소화에도 도움이 되는 듯했다. 30분마다 꺼지게 설정해 놓은 황토매트로 배를 감싸고 저절로 꺼지면 다시 켜면서 몽롱한 의식 속에서 한참 헤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울렁거림'이 점차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배를 바닥에 두는 방향으로 누워있는 자세가 울렁거림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는 듯했으나, 생리통을 완화할 때 자주 하는 자세인, 일명 태아 자세, 몸을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웅크려 보기도 하면서 복통과 울렁거림에도 효과가 있길 바랐다.
'위가 어느 쪽에 있더라.' 늘 헷갈린다. 아마도 심장과 가까운 왼쪽인 듯했다. 그러면 태아 자세는 오른쪽이 바닥을 향하도록 해야 왼쪽의 위를 누르지 않으려나... 잦아든 울렁거림 속에서 더 편하게 그 남은 울렁거림 마저 다 없어질 자세를 끊임없이 모색했다.
어머니는 쌀을 불리고 계셨다. 말은 괜찮다고 그걸로 딴 거 해 먹자 했지만, 이전의 경험으로 '배탈에는 흰 죽만 먹는 것만큼 더 좋은 치료 방법이 없음'을 알았던 나는, 부모님께 먼저 식사를 할 것을 말씀드리고, 그동안 부엌에서 흰 죽을 끓였다. 지금까지 한두 번 정도 죽을 만들어 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흰 죽, 그다음에는 어머니 사랑니 발치 이후에 소고기야채죽. 그리고 이번이 처음이다.
비교적 최근에 끓여본 소고기야채죽의 레시피가 문득 기억이 나는 듯했다. 어머니의 말대로 참기름을 조금 두르고 불려놓은 쌀을 먼저 볶고, 물을 조금 넣고 팔팔 한소끔 끓으면 불을 조금 줄이고 물이 거의 줄어들면 다시 물을 조금 넣고 불을 조금 올리고를 반복했다. 이윽고 통통한 쌀은 작은 빗 모양처럼 균열이 생겼고 죽의 모양새를 띠어갔다. 어머니는 나를 위해서 급하게 국산 두부로 된장을 끓여놓으셨고, 갓 만든 흰 죽에 된장을 곁들여서 아침식사를 마쳤다. 죽은 단순해 보이지만 꽤 시간이 걸린다. 괜히 가스비가 걱정될 정도로 왜 이리 오래 걸릴까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가끔씩 죽을 끓이며, 그 죽을 먹을 아픈 사람에 대해 더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죽은 속이 편하다. 게다가 어느 음식이랑 곁들여 먹든지 본연의 싱거움과 구수함 덕에 잘 뒤섞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흰 죽'은 그래서 정감이 간다.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으면 쓸데없는, 하지 않아도 될 걱정거리가 가득인데, 크고 자잘하게 몸이 아프면, 그저 '빠른 회복만을' 바라게 된다.
어서 회복되어서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길. 약 효과가 어서 나타나길. 그 순간에는 분산된 생각들이 하나의 생각으로 집중이 되는 것도 같다.
가끔씩 아픈 것은 정신을 한 번 정화시켜주는 것 같기도 하다. 또 당연한 듯 무심하게 대하는 내 몸에 대해서도 '살아있음'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