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여름, 대학교에서 주관한 단기어학연수 프로그램으로 중국 하얼빈에 갔다. 다양한 과의 사람들과 함께 갔는데, 나는 11학번이라서 막내였다.
김해공항의 서점에서 '혈액형에 관한 고찰'이란 책을 집어 들었다. 그 시절에는 어쩌면 비과학적인 띠궁합, 혈액형별 성격, 별자리 이런데 관심이 많았다.
우리 조에는 키 큰 오빠 한 명과 늘씬한 언니들, 동갑내기 친구 한 명이 있었다. 조 단위로 활동을 자주 한 것은 아니나, 특정 조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 조원들과 꽤 유대감을 느꼈다.
나는 지금까지도 안경을 즐겨 쓰는데 그 시절에도 여전히 안경을 쓰고 앞머리를 내리고 보이시하게 옷을 입었다.
하얼빈의 대학교에서 레벨테스트를 통해 각자 속한 반에서 중국어 수업을 들었는데, 그래서 다른 조 사람들과도 많이 마주쳤다.
약 한 달 여정도 그곳의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우리는 수업 외 일탈에도 나름 힘썼다. 이러한 결과로(?) 우리 기수가 이후에 귀감이 되기도 했다.
밤이면 시원한 밤공기 속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얼음땡을 하면서 놀았고, 우리나라보다 훨씬 저렴한 과일들을 마음껏 먹었다.
시간이 멈춘 듯 마치 꿈 속인 듯 모두가 여유롭고 행복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마치 붕~ 뜬 기분이다.
우리는 오직 중국어 수업만 듣는데 그 시간을 소모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백두산도 가보았고 호랑이 공원에도 갔었다.
백두산까지 달리던 그 복잡한 기차, 지저분하고 상상을 뛰어넘는 화장실, 백두산을 오르는 롤러코스터급의 우리나라 봉고차들(목숨이 한 개뿐이라는 사실이 무서웠다)...
이미 공항에서 혈액형 도서를 모두 읽은 나는, 마주치는 모두에게 혈액형과 생일을 물어보았으니 그들이 기억하기엔 참 유별나보이기도 했겠다.
처음에는 아마 심심풀이와 낯선 이들과 얼음을 깨는 용도로 했던 질문이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나름 꽤 중요한 목적이 생겼다.
다 같이 모여 이상형을 말하는 술자리에서 그를 지목하는 사람은 나 외에는 한 명도 없었을 정도로, 그의 외모는 크게 출중하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면에서는 개구리를 닮았기도 했다. 연수기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짝사랑하게 되었다.(이런 금사빠...)
그의 생일과 혈액형을 묻기 위해서 너무 서둘러 물으면 사람들이 내 감정을 눈치챌 거 같아서 일부러 모든 이들에게 혈액형과 생일을 묻고 다녔다.
그 시절에는 또, 수첩에 기록하는 병이 있었는데... 그들의 생일과 혈액형을 묻고 기록했다.(참 유별나 보였겠다...)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결국 그의 혈액형이 오형이라는 것과, 생일이 2월 며칠임을 알게 되었고, 나의 정보수집 작전은 종결되었다.
그래도 그에게 특별히 고백 같은 것은 하지 않았던 게, 장난스레 한 '이상형'이야기에서 그가 다른 사람을 지목하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내가 무척이나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후에 치러진 중국어 시험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었다. 공부 욕심이 많아 보였고 고시를 준비할 것이란 얘기도 얼핏 들은 것 같다.
한 달여의 시간이 끝이 나고 다시 원래의 터전으로 돌아와서 이제 더 이상 그를 볼 일도 없었다. 그렇게 싱거운 짝사랑도 끝났다.
어쩌면 단순하게 그의 외모보다는 그의 유머스러운 성격에 매료되었을 수도 있다. 지금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의 외모는 내 스타일이 아니었기에...
해외로 가면 연애를 하고 싶어지는 건가. 그 기수에서 실제 연인이 생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별했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다.
다만 '나의 혈액형 자료 수집병'은 계속 남아서 이후에 진학한 다른 대학교에서도 동기들의 혈액형을 줄줄이 외우고 다녔을 정도이다.
'오형에 게자리 또는 전갈자리에 뱀띠'인 사람을 찾으려고 한 적도 있다. 이 조건에 다 들어맞는 사람 한 명이 있었는데, 그는 누구나 다 좋아하는 사람이라 동기 여자들 간에 경쟁이 치열해서 꿈도 못 꿔보았다.
게다가 에이형 여자랑 잘 맞다는 오형들은... 적어도 내가 만난 오형 남자들은, 외모를 너무 많이 봐서 애초에 사귀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결국 이런 혈액형과 별자리, 띠를 따지던 습관은 흐물흐물해져버렸고 머릿속에서 점차 지워나가는 중.
참, 여태껏 사귄 사람들도 오형이 없으니... 오형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지... 이제는 바이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