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까지의 인생을 돌아보며
변화에 익숙해질 것
다음 주면, 이제 곧 서른이다. 사실 양력으로 하면 그렇지만, 이미 주민등록증 상 더 이른 음력 생일은 지난 터라 법적으로는 벌써 서른 살이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기뻤던 일이나 슬프거나 힘들었던 일들에 대해 대략 적어보려고 한다.
먼저 기뻤던 일은...
각종 시험에서 합격한 일들...이 있겠고.(딱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슬프거나 힘들었던 일이 오히려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대부분 인간관계 때문에 방황했던 일인데, 사람들이 항상 내게 호의적이길 바랐던 욕심 때문이었나 싶기도 하다.
먼저 고3 시절. 자습실에서 공부를 하다 돌아온 교실의 내 책상에 보이고 싶지 않은 성적표가 떡 하니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올라와 있었고, 그 성적표를 인지하는 순간 동시에 비웃는 듯한 같은 반 여자애의 시선도 느꼈다. 그 여자애의 인성에 대해서는 뭐 더 이상 말할 것도, 기억하고 있는 많은 것도 없다. 그런 사소한 일들로 한창 성적에 민감하던 나는 나 스스로 서는 힘도 잃어버리며, 그동안의 노력을 모두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도 생각지 못하고 방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적당히 무시하고 내 갈길만 가면 되었건만, 타지의 기숙사 학교에서 같은 처지의 학생들과 부대끼면서 받은 상처에 대한 타격은 꽤 컸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던 그런 일을, 약 8년 후, 인생에서 나름 중요한 또 하나의 시험을 준비하며 겪었고... 오죽하면 '가족이랑 떨어져서 있으면 항상 이렇게 탈이 나는가' 싶었다.
어쩌면 고등학교 시절보다는 더 유대감이 적었을 그런 나이대의 사람들과 동기로 지내면서, 여전히 생각과 마음이 어렸던 나는, 끊임없이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결국 나 스스로 한없는 심연 속으로 빠져들었고, 미궁 속에서 홀로 헤매었다. 마치 끝없는 바닷속으로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나를 바다로 끌어당기는 추는 나의 피폐해진 정신이었다.
이렇듯 대부분 나의 우울한 이야기들은 다 인간관계로부터 비롯된 이야기이다.
이후, 인간관계에 크게 흔들리고 싶지 않아서 사회에 나와서는 더욱 누군가에게 정을 쉽게 주지 않으려 했으나, 원래 사람을 좋아하다 보니 그런 게 쉽지는 않았다.
직장을 나와서 쉬고 있는 지금이 더, 내 마음을 굳건히 하기 좋고 오직 나만 더 생각할 수 있지만, 이렇게 하고 나서도 새로운 직장에서 과잉 친절을 베풀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이 과정에서, '다 너처럼 생각하는 게 아니다', '남 마음이 다 니 맘 같은 줄 아나'이런 말들을, 그 기간 방황하던 내 손을 잡아준 어머니와 이모로부터 참 많이 들었었다.
알게 모르게 그동안 나는 사람들에게 과잉 친절을 베풀면서, 그들도 마냥 '내가 해준 것처럼' 나를 대해주길 바라 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직도 이런 문제점은 개선된 것 같지는 않은데, 최근에 뜻하지 못한 친절함을 받으면서 나는 '그보다 더' 해줘야겠다는 마음이 순식간에 나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그저 사소한 것에는 사소하게, 작은 것에는 작은 것으로, 큰 것에는 큰 것으로 단순하게 생각하며 보답하면 되는데, 나는 항상 '플러스 알파'를 생각했다.
어쩔 때는 그런 '주고받음'또는 '받고 돌려줌'의 과정이 마치 하나의 의무처럼 느껴졌다.
'자기 것만 챙기는 사람'들은 손윗사람들도 기피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지만, 그렇게 까진 아니어도 나는, '자기 것을 잘 지킬 줄은 알아야 했다'.
어쩌면 그동안 충분히 돈을 벌었지만, 그만큼 많은 저축은 하지 못했고, 때로는 분수에 넘치게 베풀면서 당사자로부터 특별한 감사함을 못 받으면 '받기만 하고 고마워할 줄은 모르는' 그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내가 베풀려고/잘 보이려고 사는 것들을 기억하는 것은 오직 카드사뿐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 굳이 무리해가면서까지 뭘 주지는 말자. 그만큼 나를 적어도 '대우'라도 해주는 것은 카드사뿐이더라. 게다가 그들은 내가 자기들의 프라임 고객이 되었다고 직접 메일까지 보내준다. 한편 받은 '사람' 중에 고맙다는 말 하나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기 껀 잘 챙기고 살자. 만약 자신이 빈털터리나 어려운 처지가 되었을 때, 내가 커피나 밥을 그렇게 사주었던 사람들이 과연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줄까?
적어도 갑상선암과 자궁근종이란 사소한 시련을 버텨온 내가 보았을 때는, '아니더라'.
'다 지들 살기 바쁘다'
그러니, 적당히 베풀고, 굳이 무리하면서까지 베풀지 말고...
좋은 사람이면 그저 '통하는 마음'만으로 받는 위로라도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