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의 그림 그리기
특별한 재능과 돈이 없는 자의 한계
만약 취미란이 비어있으면, 항상 '그림 그리기'라고 쓰곤 했었다. 유치원에 딸린 그림 학원에서 그림을 그렸었고, 초등학생 때는 우연하게 나간 사생대회에서 대상을 받아 그 기회에 일본(의 작은 시골마을)도 다녀왔더랬다. 딱 거기까지.
이후 그림으로 인해서 무언가를, 상을 받는 일은 없었다. 중학교 들어서 내신과목만 공부하기도 벅찼을 테지만, 더욱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되었다. 아, 사생대회 이후에 근처의 절에서 열렸던 풍경화 대회에도 나갔었지만, 내 그림은 심사위원들로 보이는 그들에 의해서 아마 '순위권'에 못 드는 그림을 두는 듯한 자리에 곧바로 놓여졌다.
운이 좋아서인지 풍경화가 아닌 사물을 그려서 받았던지 간에, 이전에 받은 사생대회 대상은 시작이 아닌, 하나의 '마침표'가 되었다. 이후에 그 조그만 재능을 발전시키기 위한, 어떠한 노력을 하지 않았기에, 특히 각종 명암과 구도가 필요한 풍경화에서는 고배를 마실 수밖에. 게다가 전문적인 학원을 다니지도 않았으니.
그림 그리기는 그렇게 묻혀졌다. 나처럼 그림에 관심이 있던 동생은 꽤 큰 금액을 들여서 학원에 다녔지만, 이내 그림 그리는데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을 알고는 포기했다. 홍익대 이런 곳은 사실 예술대 외의 다른 과도 학비가 만만치 않았다. 우리에게 그림 그리는 것은 단순 취미일 뿐, 업으로는 엄두를 못 낼 일이었다. 부모님의 고생도 우리가 자라면서 점점 잘 알게 되었기 때문에.
소소한 캐릭터를 그리면서 지내곤 했던 초등학교 시절, 그래도 그 추억들과 그때 만든 내 캐릭터는 불과 얼마 전에 저작권 등록까지 마쳤다.(이윤추구 목적은 아니고, 단순히 '나의 캐릭터'임을 입증하는 일로써)
다시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 것은, 약 2년 전 '그림모임'을 직접 만들면서부터이다. 그림모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들을 만났고, 그러면서 아이패드도 구매하고 그림 그리는 어플인, Procreate도 깔았다. 그렇지만 모임원들은 종종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술 마시는 일을 더 바랐고, 그런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한 나는 그냥 모임을 없애버렸다.
지금으로서는,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매우 한정적인데 오늘처럼 브런치에 꽤 많은 글을 쏟아내게 되는 날에, 그중 몇 개의 글의 제목에 넣을 그림을 그릴 때뿐이다.(이것마저 요새는 사진으로 대체해버릴 때가 더 많다)
그림은 거의 핸드폰이나, 아이패드로 그리는 편인데, 확실히 유료 어플을 이용하는 아이패드가 더 편할 때도 많으나, 집 밖에서 글을 쓰거나 아이패드를 충전 중이거나 하면 그냥 핸드폰으로 그리는 편이다. 그리고 종종 타인의 그림들을 감상하는 시간도 가지는데, 이것도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각종 수채화, 만화, 캐릭터 작업들을 훑듯이 감상하는 정도.
잠시 디자이너나 게임 쪽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것을 꿈꾸기도 했었는데, 가뜩이나 그런 쪽의 학교나 교육을 거치지 않은 데다, 점쟁이가 한 말이 발목을 잡았다. '얘는 모방은 잘하지 싶은데 창작은 잘 못한다'이런 뉘앙스의 말이었다. 그 말에 일정 부분 동감한 것은, 실제로 특정 사물이나 한자, 모양 등을 그대로 베끼는 데는 종종 타인의 칭찬을 들어왔었기 때문이다. 특히 한자수업시간에, 기존의 글자와 거의 흡사하게 따라 쓴 내 글씨를 선생님께서 학급 친구들에게 대놓고 칭찬을 한 적도 있다. 이후에 지우개로 몇 번이나 지워가면서 (어쩌면 수능에서는 그리 필요 없을) 한자 쓰는 일에 정성을 쏟았었다. 선생님께서는 이후에 기회가 되면 서예를 한 번 배워 보라셨지만, 아직까지 크게 생각은 없다. 여튼, 점쟁이의 말을 듣고는 나 스스로 창작이나 독창성에는 젬병이라고 치부해버리게 되었고, 그쪽 방면으로의 진로에 대한 생각도 접게 되었다.
벌써 10여 년이 훌쩍 넘은 그 점쟁이의 말은(역시 이래서 점 같은 거 함부로 안 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종종 머릿속에 맴도는데, 그림 그리기 모임을 하면서도 항상 무언가를 베껴서 그리는 경우가 많았던 나는, 스스로 창작을 해서 그리는 이를 보면 역시 점쟁이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며 그들이 내심 대단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굳이 점쟁이의 말에 매여있을 필요는 없으나, 그래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글을 쓰는 것도 소설 같은 것을 지어내는 것보다 실제 경험 위주로 많이 쓰는 것도 독창성이 부족해서인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특별하게 열등감을 느끼지는 않는데, 특히 글 같은 경우는 소설을 써야 할 의무 같은 것도 없을뿐더러, 기깔나게 잘 쓴 소설들은 굳이 내가 안 써도 충분히 많기 때문이다.
그림 그리기 외에도 이런 각종 예술 활동을 업으로 삼으려면, 돈이 무지막지하게 들 거라는 그런 선입견이 있었고, 그렇기에 예술 쪽으로 나아가는 것은 생각지 못했다. 어쩌면 내 그림이 타인의 그림과 비교되고, 타인에 의해 가치가 평가되는 그런 것도 싫었을 거 같다.
그림 그리기는 나에겐 그저 취미 생활 중 하나일 뿐이다.
한마디로 배고픈 상태서 그림은 못 그릴 것 같다. 가뜩이나 배고픔을 평소에 잘 참지 못하는데.
이렇게, 어쩌면 안정적인 것만 편한 것만 추구하다 보니 직업도 그저 남들 보기에 안정적, (실제로는 3D 직업임을 본업종 종사자들은 다 앎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는 편하고 돈 많이 버는 직장으로 여겨지더라.
그래도 뭐 어쩌랴. 이 일을 선택한 것은 나 자신이고. 굳이 그림 그리기를 업으로 삼지 않은데 일말의 후회는 없으니. 더군다나 그 정도의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