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껏 했던 국내여행들
가는 곳만 또 가는 스타일
제주도에 가면 항상 가는 곳이 있다. 서귀포의 한 게스트 하우스, 동네 이름이 잘 기억나질 않는데, 올레 시장 같은 것이 있고, 그 밑으로 바닷가 내려가는 길에는 각종 소품샵과 카페들이 있다.
내려가는 길 중턱에 온통 분홍색으로 칠해진 음식점도 있고. 참, 게스트하우스 이름은 '백패커스홈'이다. 초행길에는 위치를 찾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기도 한데, 주택가 안에 위치해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를 가면 습관적으로 백패커스홈을 예약하고, 제주공항에서 시계방향 또는 반시계 방향으로 버스를 타고 내려가서 서귀포의, 백패커스홈이 있는 동네에 안착한다.
그 사이에 협재나 김녕 같은 제주시의 해수욕장을 한번 들렀다오면 사실 그날의 일정은 거의 끝이다. 익숙한 올레시장을 한 바퀴 돌고, 백패커스홈에서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한다.
아, 물론 혼자 갔을 때 이야기이다. 아니면 기왕 제주도 왔는데 이렇게 시시하게 보내고 싶어 하는 일행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백패커스홈에는 (코로나 이전) 혼자, 동생과 갔었다. 남동생과 갔을 적에 웃지 못할 일이 하나 있었는데, 노크소리가 들려서(원래라면 그냥 무시하고 넘어갔을 건데 혼자가 아니라 든든한 동생이 있으니 문을 열었다) 문을 여니, 한 남성이 '술 같이 먹어요'라고 했다.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냥 방에서 동생과 푹 쉬었다.
혼자 갔을 때는, 바베큐파티(백패커스홈 10번가서 한번 참여해봤다)자리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과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었는데, 맞은편에 앉은 남자분은 아마 최근의 여친과의 이별에 대해 계속 얘기했던 것 같다. 어느 정도 맞장구를 쳐주다 금방 피곤해진 나는 바비큐도 충분히 먹은 터라 후다닥 방으로 들어왔다.
우스갯소리로, '게스트하우스가 왜 게스트하우스냐면, 그 숙소에서 묵는 이들은 다른 숙소에 게스트로 가기 때문'이란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즉, 게하에서 눈 맞은 두 남녀가 서로 나가서 다른 숙소서 묵는다는 것이다.(게하가 보통 10인실, 8인실, 6인실, 4인실, 2인실, 1인실 형식에다 다인실 위주이므로... 자세한 건 짐작하시길)
그래도 백패커스홈은, 바비큐 파티는 신청인원을 통해서만 진행하고, 여타의 다른 술자리 같은 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반면, 매일 밤 신나게 파티를 벌이는 게스트하우스도 많다고 들었다. 이 얘기는 이쯤 하고...
아마 백패커스홈 근처에, '전화 예약을 해야만' 사 먹을 수 있는 김밥집도 있었고, 아침이면 매일 가던, 좁지만 여유롭던, '유동커피'라는 카페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문득 떠오르는 유동커피의 화장실이 참 인상적이다. 유동커피는 최근에 부산에도 문을 연 듯했다. 그렇지만 왠지 제주의 유동커피를 고집하게 된다.
한창 교회에 다닐 적에는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새벽기도를 드리러 그 부근의 언덕배기에 서있는 교회에 드나들기도 했었다. 운전을 못해서, 교통이 불편해서, 단지 그곳이 편해서, 어쩌면 괜하게 벌인 여행 자체가 귀찮아서 계속 같은 장소에서만 맴돌았다. 나에게 낯설거나 익숙지 않은 것은 불필요하게 스트레스를 주는 걸지도 모른다. 아마 당장 내일 제주도로 떠나야 한대도, 그곳으로 갈 것 같다.
그시절 애용했던 백패커스홈의 4인실, 사진찾다보니 2016년도까지 올라간다.
20대 초반에는 내일로기차여행을 했었다. 친구와 함께, 부산-순천-담양-전주-서울-경주(순서는 정확하진 않음)를 7일 동안 여행했다. 아마 서울 가는 구간에는 KTX를 이용했던 것 같다. 순천만도 제주도의 그곳들처럼 내게는 익숙하고 편안한 장소중 하나이다.
굳이 새로운 시도를 하기 싫을 때 가는 조금 낯익은 그런 곳.
전주에서는, 다소 낡은 찜질방에서 세면도구를 도난당한 기억이 있다. 친구와 사소하게 다투기도 했다.
그 여행에서 제일 좋았던 것은, 담양에서의 기억이다. 무난한 찜질방 시설과 죽녹원, 죽통밥과 떡갈비.
서울에서의 기억은, 그 여행 이전과 이후에 서울 자체만 여러 번 오고 갔던 터라 특별히 남아있지 않다. 이는 경주도 마찬가지.
이제 통영으로. 역시 3번 정도 갔었던 낯설지 않은 곳이다. 아, 내게 익숙한 곳은 매번 갈 때마다 갔던 일부 장소에 한정된다. 꿀빵 파는 시장과 동피랑길, 이순신 공원 정도. 한번 가보았던 산속의 사찰과 해저터널 같은 장소는 익숙한 곳은 아니다.
자차가 있거나 렌트를 하지 않는 이상, 제주도나 경주같이 여행이 불편한 곳이 많다. 아님 택시비가 두둑이 있지 않은 이상... 그래서 경주에서도 늘, 황리단길 부근에만 갔다. 어머니랑 한번 한옥에 묵은 적이 있는데, 옆방의 코 고는 소리가 마치 바로 옆에서 자는 것처럼 그대로 들리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황남빵은... 정말 외면하기 힘들다.
이제 대구, 특히 동대구역. 역 앞에 신세계백화점이 생기면서, 경기도에 살았던 썸남과 그곳에서 데이트를 하기도 했었다. 큰 이모가 계신 곳이고 어머니의 젊은 시절이 있었던 곳이라 마냥 낯설지만은 않다. 그래도 여행을 간다 하면 썩 당기지 않는 도시이다. 괜히 학생 때 '분지지형'이라고 배운 탓인지, 먼가 여행지로서는 갑갑하게 느껴진다.
가까운 부산. 제일 추억도 많고, 집에서도 가깝고. 지하철, 버스, 자차 모두 가능하다.
제일 좋아하는 곳은 남포동이다. 남포동 특유의, 시장 부근의 너저분함, 빈 깡통이 굴러다니는 번잡스럽지만 새벽이나 저녁에는 을씨년스러운 골목길. 조명들을 파는 거리, 밤이면 펼쳐지는 야시장과 이어지는 사람들의 행렬. 인근의 숙소에서 묵는다면, 시끌벅적한 야밤의 소음과, 고함소리, 경적소리들은 덤이다. 아직까지는 이런 요란함도 종종 느끼면 반갑고 마냥 불편하지만은 않다.
그리고 남포동이랑 비등하게 좋아하는 곳은 광안리. 그저 광안대교와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사실 코로나만 아니고, 재정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다면 간만의 백수생활 동안 광안리의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하루를 통째로 공치고 싶을 정도이다.
광안대교 사진이 사진첩을 한참 뒤져도 안 나와서 겨우 찾았다.
광안대교 야경, 2016 or 2017년
교통편에서 제일 무난한 곳은 역시 서면이다. 남포동과 비슷한 느낌의, 그렇지만 바닷바람이 한결 빠진 공기 속의 번잡스러움과 너저분한 골목들. 밤하늘 아래의 서면은, 당장 고민하고 있었던 것들을 잊게 만들기도 하고, 만약 썸 타는 사이의 이성과 함께라면 왠지 그날에는 상대와의 거리가 한참 줄어들 수 있을 거라는... 그런 느낌도 준다.
뭐 이렇게 적어보고 나서 생각해보면, 막상 서면에서는 썸을 타본 기억이 그리 없는 나로서는, 비좁은 골목길 쏟아지는 양방향의 사람들을 헤치며 썸남/썸녀와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나이가 좀 들어서 그런지) 80%의 체력이 고갈되어 버릴 거 같긴 하다. 거기다 목적지의 식당이나 카페에서 웨이팅이라면? 남은 20%마저도 날아가버릴 것 같다.
그래도 서면에 가면 기분이 괜스레 좋다. 마치 잊어버린 몇 년 전의, 좀 더 젊었던 그 시절에 맞은 바람들이 다시금 와서 얼굴에 부딪히는 것 같다.
서면의 골목을 걸으며, 위 사진들보단 비교적 최근.
사실은 바다도 좋지만, 요즘에는 인근의 산에 더 자주 오르는 편이다.
'바다 vs. 산'에서는 아직까진~ 바다라고 대답할 거 같지만. 산에 가는 것도 나름의 매력이 많다.
특히 요새같이 신선한 공기가 귀한 시절에는 그런 공기를 산에서 만끽할 수 있고, 인공적인 것들을 한 꺼풀 벗어난 나무와 땅과 흙과 풀, 돌들. 구경할 것도 많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산에 오르는 것은 그저 심심하고 지루한 일이었지만, 겨우 몇 살 더 먹었다고 어머니가 자주 가시는 동네 뒷산이 나도 참 좋아하는 장소가 되었다.
클라우드를 굳이 뒤지질 않아도 갤러리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어제 자 따끈따끈한 사진 그런 여파로, 또 살도 빼야 해서 등산모임에 들었지만, 그들과 나의 등산 수준의 차이가 걱정되어 쉽사리 나서지는 못하고 있다. 게다가 주말 등산, 많이 알려진 산으로의 등산은 코로나 때문에 뭔가 조심스럽다.
그것보다는 인적이 드문 집 뒷산에 세상에서 가장 편한 사람인 엄마와 함께 오르는 일이 더 좋다.
물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산을 오르는 일도 나름 괜찮을 것 같아, 조금 더 산을 오르내리는 일에 자신감이 붙으면 도전해볼 생각이다.
코로나 핑계로, 그리고 무엇보다 귀찮고 집에 있는 게 제일 편해서 이제는 근교의 도시에도 여행을 잘 가지 않는다. 여행 유투버들이 다 대신해서 체험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직장인 때보다 시간은 많아졌지만 그만큼 재정은 빠듯해졌기에, 어디 숙소비라도 내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다. 그리고 역시 코로나라서 돌아다니는 일이 조심스럽다. 생각해보면 여행을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었고, (아마 MBTI특성상?) 계획적인 여행을 하진 않았었다. 그저 숙소와 대략적인 목적지만 잡고 하루를 시작했었다. 인터넷을 뒤지며 맛집을 찾기도 했지만 그냥 느낌이 좋은 곳에 들어간 적도 많다. 여행은, 특히 국외여행은 내게는 엄청난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아, 물론 어마어마한 돈도.
그래도 혼자서든 아니면 누구랑 함께 떠난 여행지에서는, 원래 같이 그들과 있던 곳에서보다 다른 감정들을 많이 나눌 수 있고, 그들과의 추억이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혼자 하는 여행은 별로라고 생각한다. 누구와든 함께, 만약 가서 싸우더라도 가는 게 혼자 가는 것보다 덜 외롭고, 덜 심심하게 느껴진다.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비가 내린다. 어렸을 때는(초등학생때) 비 오는 날이 그렇게 좋았다. 동생과 '놀이'를 하면서 집 밖을 안 나가고 하루 종일 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동생과 나의 놀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번 써보려고 한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레슬링 선수놀이', '레고놀이', '인형놀이', '축구선수 놀이'같은 게 있었는데 사진을 인쇄해서 코팅하여 역할놀이를 하는 식이었다. 한 살 두 살 먹어감에 따라 놀이의 재미가 떨어져서 자연스레 끝내게 되었지만,
그 시간들 덕에 지금은 키가 나보다 큰 동생이랑, 알게 모르게 친밀감 같은 게 있는 건지도...
'누나랑 남동생'은 거의 데면데면하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