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영화를 볼까

편한 배경음악이 될만한

by 박냥이

정말 오랜만에 비가 내리는 날. 여기저기서 '봄비'라는 소리가 들린다. 어제까지의 따듯한 날씨와 선선한 저녁에 설레었던 맘도 다시금 차분히 가라앉는 기분이다. 방콕하고 영화보기 딱 좋은 날.

벌써 브런치에 몇 시간 매여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다.

이제는 블로그보다 더 자주 들어오게 되는 것은, 흰 도화지 같이 깔끔한 브런치의 글쓰기 화면 때문일까.

또는 글을 쓰면서 점점 파고들게 되는 내 마음속, 추억 속 이야기를 새삼 만끽하는 게 좋아서일까.


새로운 장소에 가는 것을 즐기지 않듯이 새로운 노래나 영화도 잘 시도하지 않는 편이다.

월 만 3천 원 정도인 넷플릭스를 구독하고 있지만, 그것은 같이 이용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과연 본전을 뽑을 정도인지 모르겠다. 넷플릭스에 왓챠에 유튜브 프리미엄에... 마음 잡고 보려면 끊임없이 볼 수 있는 영상들이 넘쳐나지만, 그렇게 영상만 들여다볼 때보다 이렇게 멍 때려 가면서 브런치에 주절주절 타자를 쳐넣는 게 더 흥미롭다. 오전에 글을 쓸 동안은 잠시 노트북을 이용해서 유튜브에서 음악을 틀어놓기도 했었는데, 그 특유의 기계음의 탁탁 치는 소리가 거슬려 자동재생을 꺼버리고, 익숙한 노래를 한곡 반복하다가 그마저도 별로 인듯해서 꺼버린 상태이다. 지금 들리는 소리는, 오래된 노트북의 펜소리, 거실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소리, 방문을 닫아서 옅게 들리는 티브이의 소음뿐이다.

문득 고교시절에 공부하던 때가 생각이 난다. 그 시절에는 무선 이어폰이 없던 시기라서 다들 콩나물 모양의 긴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다. 특히, 공부를 할 때 음악을 듣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걔 중에는 전교에서 내로라하는 성적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평소 정신이 산만하고 책상 위도 어수선하던 나는, 음악을 들으며 공부를 할 때는 괜히 인정하기 싫었지만, 똑똑한 그 친구들과는 다르게 집중력이 분산되는 느낌을 받았기에, 웬만큼 불편한 소음이 들리지 않는 이상, 공부 중에 시끄러운 음악을 듣는 일은 없었다. 이루마의 피아노곡 같은 조용한 곡들도 공부할 때면 예민하게 조금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

지금이야, 그런 수험생활은 끝이 난지 오래고, 무엇을 하든 100퍼센트 집중력을 발휘해야 할 때도 잘 없고 그것도 짧은 순간순간일 뿐이라서, 배경으로 깔리는 각종 소리들에 대해 그렇게까지 예민하게는 굴지 않으려 하지만...

위에 적었듯이 흔한 가요들도, 어떤 작업을 하는 중에는 그 노래를 듣는 것이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피로도를 높이는 느낌이다. 특히 운전이나, 글쓰기 같은 일을 할 때엔 가급적이면 가사가 없는 음악을 듣는 편이다.


침대에 누워서 영화보기 딱 좋은 날씨. 무슨 영화를 볼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매일 스쳐가는 머릿속 테이프가 있다. 비긴 어게인(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어바웃 타임-러브 액추얼리-브리짓존스의 일기-유브갓메일(톰행크스 주연)-당신이 잠든 사이에(산드라블록 주연)-터미널(톰행크스 주연)...

다들 한 번에서 10번 정도까지도 본 영화들이고, 굳이 특별한 날에 '안 본 영화'를 찾아 나서기보다는 평소에도 봤던 영화를 다시 보는 편이라 보통 이 영화들 중 선택을 한다. 영화를 볼 때 100프로 집중해서 보진 않지만, 이전에 내가 봤던, 자세히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다시 보는 재미도 있고, 받았던 감동을 되새김질하기도 한다.

지금 가장 당기는 것은, '유브갓메일'. 배경음악으로 틀어놓기에도, 극적이고 시끄러운 부분도 많이 없고, 중간중간 들어가 있는 사운드 트랙도 좋다. 그러고 보니, 오직 영화의 소리만 들으며 다른 일을 하던 적도 많다.

특히 '러브액츄얼리'는, 대강의 사운드만 들어도 영화의 어떤 부분의 무슨 내용인지 짐작할 정도로 그 사운드를 많이 반복해서 들었다.

이렇게 청각으로만 집중할 때도 있지만, 최근에 본, '러브아일랜드', '투핫'과 같은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을 볼 때는 출연진들의 매력적인 외모를 감상한다고 눈길을 쉽사리 떼기 힘들더라.

나도 여자지만, 특히 여성의 몸매는, 제각기 다 다르고 신비로운 구석도 많은 것 같아서 이국적인 외모의 남성 출연진보다 여성 출연진이 나올 때, 더 유심히 보게 되더라. 저마다 다른 곡선과 얼굴들, 눈매들, 머리 모양과 입술색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들었다.


여하튼 오늘 남은 시간 동안 볼 것을 대강 추렸다. 배경음악으로써 '유브갓메일'과, 미술작품처럼 눈이 더 집중할 '투핫'. '투핫'은 시즌이 끝나면 다시 보게 되진 않지만, 배경음악으로도 그냥 감상용으로도 좋은 '유브갓메일'은 아마 몇십 년이 지나도 계속 보고 있진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