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의 추억들

경상도 사람에게는, 서울 간다⊃경기도 간다

by 박냥이

부제의 '⊃'는 집합 기호인데 대충, 경기도 근처의 서울특별시 외의 지역에 가도, 서울 간다고 말해버린다. 집합 기호가 자판상으로는 찾기 힘들어서 웹 검색해서 복사붙여넣기했다. 허허. 가운데 줄 하나 더 그여 있는 원소 포함(?) 기호는 찾기 힘들어서 그냥 집합 기호를 썼다. (잘하지도 못하는) 수리적인 얘기는 이쯤 하고...

필자는 부산 근처의, 경상남도에 속한 한 도시에 산다. 보통 서울 경기 지역을 갈 때는, 부산역에서 서울역/행신역까지 KTX를 타거나 김해공항에서 김포까지 국내선 비행기를 이용한다.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경기도 어느 도시에 간다 해도, 간단히 줄여 '언제 언제 서울 간다'라고 말하고, 그들도 '니 언제 서울가노?'라고 묻곤 한다.


경기도 일산에서 갑상선암수술을 한다고 작년 말, 서울을 다녀왔다. 일산에 숙소가 마땅찮아서 서울 서촌에 머물기도 했으니, 불편하게 여길 사람이 있더라도 그냥 '서울에 다녀왔다' 해본다. 일산에서 서울 중심부까지 교통편도 괜찮았다.

이왕 추억거리를 쓰는데 수술 얘기는 잠시 접어두고, 서촌으로 가자. 서촌의 한옥 게스트하우스에서 부부 사장님들의 환대 속에 수술 전에 많은 쉼과 위로를 받았다. 아마 여름이어서 근처에서 젤라또를 사 먹었는데 그때도 코로나가 유행일 때라서, 숙소 안까지 들고 들어와서 먹는다고 젤라또가 금방 녹아서 줄줄 흐르던 기억이 난다.

수술일정 전에, 잠시 쉬어가려고 들린 곳이라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였고 활동에는 제약이 많았기에 '숙소 자체의 편안함'이 제일 중요한 여행이었다. 방바닥에 누우면 한옥의 서까래가 보였고, 아기자기한 앞마당에도 정겨운 느낌의 화분과 꽃이 있었다. 매일 아침, 사모님께서 직접 요리를 해주셔서 외지에 나가서도 아침은 꼭 먹어야 하는 나에겐 안성맞춤이었다.

다음 달에 또 외래를 가니, 기회가 된다면 그때 또 방문하고 싶다.


이제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경기도에 살던 썸남이 있을 때는 그와 같이 여의도에 불꽃축제를 보러 가기도 했었다. 어마어마한 인파 속에서 대중교통이용은 엄두를 못 냈고 1시간여를 걸어서 아마 종로 쪽에 와서야 늦은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썸남은 그 시간을 통해, 내가 배가 고파지면 예민해지고 말이 없어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덧붙이자면 그와 잘 되진 않았다.

서울에 가면 무조건 갔던 곳이 있다. 바로, 인사동.

인사동 특유의 그 분위기가 좋다. 굳이 어느 식당이나 카페에 가지 않아도, 그 거리를 걷는 것이 좋다.

가끔씩, '도를 아십니까'류의 사람들과 부딪치기도 하지만... 그러고 보니 인사동에 안 간지도 꽤 오래되었다.


오늘 아침에는 모 유투버의 영상에서 서울 남산을 보았다. 같이 보던 엄마가 '니 남산 가봤나?'라고 물으셨고, 이내 언젠가 나도 한번 가보았음을 떠올리게 되었다.

아마, 지금으로부터 7, 8년 전, 그 당시 사귀던 친구와 같이 남산에 가서 여느 커플들처럼 자물쇠를 걸었던가... 기억이 마치 실재의 일이 아닌 꿈같이 희미하다.


2017년 즈음 참여했던 국토대장정에서 같은 조의 모임원들이 대부분 서울 경기지역에 사는 사람들이었고, 국토대장정이 끝이 나고서도 한창 교류를 이어나갈 때 서울에 종종 갔었다. 그들 덕에 핫하다는 건대입구역에도 가보고, 나름 경남(나)&부산&전남인 3명에 대한 의리를 지킨다고 서울 사람들까지 집에 가지 않고 조원 전체가 어느 DVD방에서 다 같이 밤을 지새워준 기억도 있다. 그러고 보면, 매번 서울지역 사람을 만날 때 개인적으로 느꼈던 서운함이 그런 기억을 떠올리면 한결 덜어지기도 한다.

지금의 (부산 출신) 남자 친구와 농담으로, '서울 사람들은 엔빵 했는데도 입금 안 해주는 경우가 많더라(같은 서울지역 내에서 아니고, 그 사람이 타지로 놀러 와서 타지인인 본인이나 남친이 계산했을 경우)', '서울 사람들에게 베풀 필요 없다' 이렇게 말하곤 했다. 심지어 '내가 산다'라고 말한 적도 없고, 나중에 입금해달라고 덧붙였음에도... 오래도록 입금은 되지 않고 있다. 그리 큰 금액이 아니니 나서서 달라고 하기도 불편하고, 그냥 두고 있지만, 다음에 그들에게 무엇을 사주거나 베풀 의향이나 그들을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마저 크게 없어졌다.

남자 친구는, '뭐 나도 이해가 되긴 하지만, 사는 것 보면 치열하니까...'라고 대답을 흐렸다.

(그렇다고 지방에서의 삶이 치열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런 일들은 지역보다는 그 사람의 문제겠지만...

보통 내 근처 지역의, '한 오지랖 하는 사람들'은 멀리서 온 (좀 가까운) 지인이 있으면 자신의 집에서 자고 가게 하거나, 자신이 아는 맛집에 지인을 데려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이려고 하는 열정(?) 혹은 인심 같은 게 있지만, 내가 서울에 그만큼 가까운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혈연인 외삼촌을 제외하고는) 서울에서, 그만큼의 호의를 받은 적은 없다.

서울 사람들을 만날 때는, 1:1의 비율을 내가 넘어서서 1.5배, 2배, 3배로 베푼 적은 있더라도, 그 이상을 돌려받은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뭐 지역에 대한 악감정 같은 것은 없고,

그저 '그러려니' 한다.

게다가 여태껏 만나온 사람들 중, 오랜 기간 교류를 이어나가고 있는 좋은 사람들 중 서울 경기지역에 사는 사람도 꽤 있다.


다시 여행 얘기로 돌아가서, 사건사고가 많았던 한강둔치에도 한 번, 그 국토대장정 사람들과 함께 가본 적이 있다. 그러니 대충 2017년 즈음이겠다. 뉴스에 나오는 사건사고들은 잠시 묻어두고,

한강둔치 특유의 낭만과 그 느낌에 대해서 써보려고 한다.

아마 국토대장정을 막 끝낸 즈음, 다 같이 한강둔치에 앉아서 치킨을 시켜놓고 맥주를 마시면서 웃고 떠들었다. 그때 했던 이야기는 하나도 기억나질 않고 오직 그 분위기가 시간만 기억에 남아있다. 해가 거의 저물어서 깜깜해졌어도 도시의 불빛으로 밝아 보이던 밤이었다. 여름이라 해질녘의 서늘한 공기가 시원했다. 웃긴 일 하나가 있었는데, 국토대장정에서 자신의 발을 찍어서 저마다 액자를 만든 것을, 한 조원이 실수로 다른 조원의 액자를 밟아 깨뜨려버린 것.

하긴, 거진 한 달 동안 여정이었고 다들 전국 각지에서 왔는데, 그 액자는 기념품이기도 했지만 또 꽤 신경을 써서 간수해야 할 짐이기도 했다.


기회가 되면 나도 서울에 살고 싶지만, 요새 각종 지표들도 너무 오르고, '서울에 태어난 것도 하나의 밑천'이라는 말도 들었을 정도로... 지금에서 서울에 들어가서 살아보긴 약간 버거운 감이 있다.

그리고 좋아하는 가족들이랑 가까운 데서 살고 싶은 마음도 크다.

이렇게 안분지족 하다가도, 가끔 근처 지역에서 병원들의 형편없는 실수와 무책임함을 목격할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오고...

중대질병이 생길 경우에 대비해서 서울권에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실제로 최근에, 어머니 친구의 아버지께서 심마비 상황에서 병원 몇 군데를 돌다가 결국 돌아가셨기에...

그리고 나도 갑상선 수술을 굳이(주위에 가까운 데서 받은 사람도 있었음에도), 일산에서 받았다.

갑상선암 수술은 특히, 첫 수술이 중요하기 때문에.

같은 분야에 몸담고 있긴 하지만, 역시 서울이랑 지방은 어느 정도 의료 수준에서 차이가 난다고 생각한다.

과도한 밀집과 경쟁이 꼭 나쁜 것은 아닌 게, 실속 같은 게 더 잘 드러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흠... 그럼에도 아직 내게 경상도는 참 익숙한 곳이고, 늘 그렇듯 나는 익숙한 게 좋고 편하다.

서울은, 무언가 많고~ 지방에 없는 것도 많고~ 구경거리도 많아서~ 종종 놀러 가려 한다.

그리고 재취업시에 1%의 확률로 서울 경기의 직장을 염두에 두고 있긴 해서 아직 어떻게 될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어 가든 그냥 마음 편히 놀러 가든 앞으로 서울에서 즐거운 추억을 많이 쌓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무슨 영화를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