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우유가 나오던 시절

초등학생의 우여곡절

by 박냥이

기억이 아득하다. 지금은, 2022년. 그 시절로 되감기 하려면 20년 정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갑자기 우유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은, 유튜브를 통해 각종 뮤직비디오를 관람하다가,(초반엔 이효리의 유고걸, 제시의 눈누난나 같은 신나는 뮤비를 보았다) 결국 자주 듣는 노래인 '시작-가호(이태원클라쓰 OST)'로 끝을 맺었기 때문이다.

뮤비에 나오는 장면 중 드라마상에서 장래에 펀드매니저로, 박새로이의 복수를 돕게 되는 친구(이호진인 듯)한테, 고등학생 시절 장근원이 흰 우유를 쏟는 모습이 나온다.

웃프지만, 포탈에 '이태원클라쓰 우유'라고 치니까 바로 나온다...

친구들은 그런 모습이 익숙한 듯, 또 학교 내에서 어마어마한 권력을 잡고 있는 장근원한테 아무 얘기도 못하고 그저 모른 체 하고 있을 뿐. 그런 와중에 전학생인 박새로이는 그런 불의에 참지 못하고 장근원에게 통쾌한 펀치를 날려버리며 드라마가 전개된다.

'박새로이 펀치'라고 치니까 나온다.

이태원클라쓰를 꽤 재밌게 보아서, 앞부분의 그런 우유테러(?)사건은 이후 각종 다양한 스토리로 잊어버렸지만, 매번 반복해서 뮤비를 볼 때마다 나오는 장면이라서 까먹어버려도 다시 떠올리게 된달까.

그냥 무심코 지나갈 수 있는 장면이고, 다른 장면에 비해 딱히 감동적이거나 시선을 끌만한 장면도 아니지만, 나에게는 나름 어떤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초등학교 시절, 초록색 플라스틱 박스 안에 흰 우유가 30개 정도씩 각 학급마다 들어왔다.(그때만 해도 초등학생이 많았다) 먹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했고, 그마저도 싫은 친구들은 집에서 초코 분말을 가지고 오기도 했다. 흰 우유의 비린 맛, 냄새, 먹고 나면 항상 하얀 설태가 끼여서, 여간 별로였다. 요즘엔 각자 먹고 싶은 유제품을 선택한다고 들었는데, 그 시절만 해도 일주일에 한두 번 딸기우유나 초코우유가 나올까 말까였다.


여튼 다시 이태원클라쓰로 돌아가서, 장근원이 주저앉은 이호진의 머리에 흰 우유를 들이붓는 장면.

어린 시절의 나는 잘 울고 수줍음 많고, 내성적이었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아마도 빠른년생으로 입학해서 그런지) 말수가 유독 적었고, 활발하지 못했다. 우리 초등학교에는 얼굴이 까맣고 키도 여자애들보다 작은, 초라한 행색의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몇 명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중 새까맣고 조그만 남자아이랑 아마 같은 반이 되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내가 한눈파는 동안, 그 애가 의자에 앉아 있는 내 머리 위로 흰 우유를 부은 것이 기억난다.

선생님은 그 아이가 '불쌍하다'는 이유로 특별하게 체벌이나 제제를 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지나가다 똥 밟은 격인 내 탓을 할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로 달려가서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물로 머리를 씻었던 기억이 난다. 바로 집으로 가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찜찜한 상태를 어찌 미련하게 견디고 있었을까.

아마 그 아이에게 내가 '만만하게' 보였던 것 같았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서도 화끈하게 욕도 찰지게 못했던 나는, 어쩌면 울음을 터뜨렸던 거 같기도 하다. 지금 내 기억에 남은 것은, 머리에서 비릿한 냄새의 우유가 흘러내리는 불쾌한 감각의 일부분뿐이다. 이런 일 때문에 이태원클라쓰의 그런 장면들을 쉽게 지나치지 못했다.

이후 그 아이로부터의 괴롭힘은 어쩌면 그것을 시작이자 마지막으로 끝이 났는데, 해결방법은 의외로 간단한 것이었다. 그 아이가 또래들이 다 스스로 하는 옷 입는 거나 씻는 것 등을 아직도 어머니에게 의지하고 있으며, 그런 사실을 아는 그 어머니의 친구의 자녀와 친해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는 그 친구와 내가 가까이 있는 모습을 보자, 그 아이는 더 이상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어쩌면 1:1의 왕따였을까? 나의 마음 깊이서, 제대로 사과받지 못한 어린 시절에 대한 자그만 화가 싹트고 있었던 것일까? 이후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행색이 초라하고 비듬이 많았던 또래 여자아이 한 명을 친구들과 같이 왕따시켰다. 어떤 면에서는 조금 악랄했는 게, 그 친구 앞에서는 그 친구한테 호감이 있는 듯 행동하고 친절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다 그렇듯, 뒤에서는 그 친구를 무시하고 소외시켰다. 그런 악몽의 전염과 순환고리 때문인지, 마찬가지로 그 친구 또한 마음속에 자기도 모르게 뭔가 쌓였나 보다. 이후에 친구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되고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을무렵, 우리가 왕따시켰던 그 친구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자신보다 아마 약했을) 저학년을 상대로 삥을 뜯고 다니는 학생이 되었다고 하더라. 그 친구가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그 친구가 그렇게 된 데에는 우리의 탓도 있을 것이다.

일련의 사건들을 간단하게 왕따라고 한다면, 나도 사과받지 못했고 마찬가지로 그 친구도 나로부터 사과받지 못했다.


중학교 이후에는 어쩌면 친구보다 성적이 더 중요해졌지만, 그래도 왕따는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의 그런 경험들이 나도 모르게 어떤 왕따 사건에 '끼는 것' 자체를 꺼리게 했고, 혹여 나의 가까운 데서 그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나와는 무관한 듯, 모른 체 하고는 했다.

중학교 시절이야, 나에게는 한없이 아름답고 좋았던 시절로 미화되어 있으니 바로 고등학교 시절로 가보면,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성적의 친구들이 모인 그곳에서 왕따는 꽤 많이 목격되었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조금 더 이기적인 면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친구들을 곧 왕따로 몰렸고, 몇몇은 자퇴를 했다. 그중 자퇴를 하고 나서 더 성공한 것 같아 보이는 친구도 있다.

그들 중 한 명은 다른 친구들의 책을 마구 훔쳐댔다. 기숙생활중에 그런 일들은 쉽게 밝혀지고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아마도 '공부만 잘하면 되는 아이'로 자라왔을 친구들은, 겉으로는 절친 사이였음에도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한쪽이 한쪽을 일방적으로 폭행했고, 이는 추후에 피해자 친구의 용기로 밝혀지게 되었다.

가해자인 그 친구 또한 왕따가 되었지만, 아마 고3 수능 가까운 시기에 밝혀진 일이라 그런지, 자퇴까지는 하진 않더라. 다만 기숙생활을 지속하긴 두려웠는지 먼 도시에서 부모님의 도움으로 통학을 시작했다. 그런 왕따의 입장에서도 공부에 뒤쳐지는 것, 아니 학업적인 면에서 마음이 안심이 되는 공간에 있는 것을 포기하기 싫은지, 굳이 편안한 집에서 공부하지 않고 학교에 나왔다.


어쩌면 가담하고 싶지 않을 그런 왕따 만들기에 나도 은연중에 동참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당사자 중 한 명이 나의 룸메이트였기에. 그녀와 나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때때로는 가슴속에 서로에 대한 불만도 가지면서 2년여를 함께 했다. 그녀를 왕따 시키려는 나와 가까운 친구 중 한 명의 계획을 이미 알고 있던 터였지만, 그 친구가 그녀를 버릴 동안 나는 끝까지 모른척했다. 단지 그녀가 '너무 남자를 밝힌다'는 이유로, 또 각종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 때문에 그녀와 이제 절교를 하겠다는 그 친구의 말을, 하필이면 같은 방을 쓰는 처지이고 그 친구에게 일전에 그런 계획들에 대해 들었던 터라 그저 잠자코 앉아서 듣고 있었다. 그 순간에는 누구의 편을 들어주거나 변명하지도 않았다.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그렇지만, 행동이나 시선으로 무심코 그녀가 아닌 그 친구의 편을 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니까.

위에서 룸메이트를 그 친구와 구분한다 해서 '그녀'라고 쓰긴 했지만, 그 친구나 그녀나 다 여자이고, 여자들의 인간관계는 언제나 잡음이 많은 편이다. 다소 특별한 기질이 있었던 룸메이트는 그런 면 때문에 그 친구로부터 절교를 당하긴 했지만, 룸메의 그런 무신경한 면이 같은 방을 쓰는 나로서는 불편하게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편한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면, 일찍 일어나는 나와는 달리 그런 '아침의 소음에도 아랑곳 않고' 아침잠을 충분히 자는 부분과, 룸메나 나나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있기 때문에 배려못한 일정 부분이 있더라도 내가 가끔씩 터놓고 말하면 서로 고치려고 했던 부분도 있었다. 그렇기에 비록 '그 일'로 나의 무리에 들어온 룸메의 '전'친구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고, 고2가 지나가고 고3 시절에도 둘이서 1년 동안 방을 함께 썼다.(고3 때는 예민한 시기라서 룸메를 각자 선택할 수 있게 해 주었던 것 같다) 최근의 그 룸메는, 가끔씩 페이스북을 통해 소식을 접하는데, 여전히 자신의 생각과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면서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의 그 친구처럼 그렇게 크게 흔들리진 않아 보이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하긴 섣부른 것도 있다.


여튼, 흰 우유 얘기로 돌아가서. 흰 우유가 그래서 마냥 좋지만은 않다. 특히, 200미리인지 초록색과 하얀색이 섞인 곽우유, 종이접기를 하듯 열고 닫는 그 우유. 오늘 아침에도 흰 우유를 넣어서 토스트를 해 먹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1리터 2리터 플라스틱병에 든 우유이지, 200미리 흰 우유는 내게는 폭탄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나마 우유의 디자인이 조금 바뀌어서, 빨대를 꽂아먹는 직육면체의 우유 모양으로 많이 바뀐 게 쓸데없이 안심이 되기도 한다. 적어도 종이 접기로 여는 것보다는 꽤 열기 힘들고, 빨대 구멍도 작으니 그것으로 누구를 괴롭히기는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아, 그리고 올해 서른인데 위에 적은 사람들 중 지금까지 연락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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