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근종 수술과 그 이후
처치곤란이었던 면생리대의 재등장
필자는 올해 초, 자궁근종 제거 수술을 받았다. 근종을 처음 발견한 것은 2018년 12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 해에는 여러모로 힘든 일이 많았어서 1차 병원 산부인과에서 대학병원으로, '근종이 있으니 제거하러 가세요'하고 의뢰서를 써준 그날, 어머니랑 통화하면서 나도 모르게 울음을 터뜨렸다.
근종은 여자들에게는 흔한 질병이고, 증상도 없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뭐, 그리 구슬프게 울 일은 아니었더래도... 그냥 단순히 병이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서러움이었다고 할까. 4년 전의 시간이라 기억이 희미하다.
집 근처에 있는 대학병원 의사는, 수술보단 약을 먹는 것을 권했고 꽤 비싼 가격이었지만 실비보혐이 있어서 그 약을 반년 정도 먹었던 것 같다. 이후, 유럽 쪽서 그 약의 부작용으로 간부전 이슈가 터졌고, 처방받아먹고 있는 중에 전화가 와서 이후로는 안 먹었다. 아마, 지금 집구석 어딘가 처박혀 있거나 옛날에 환불처리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너무 자세한 얘기와 정보는 예전에 자궁근종카페에 썼었기에, 여기에는 그냥 수술 이후 현재의 상태와 그 이전의 생각나는 일 몇 가지만 적어보려 한다.
진통제를 갖가지 털어 넣어서 근무 중의 생리통을 견디는 일이 빈번했었다. 약의 효과가 나타나는 시간을 버티기 힘든 적도 많았다. 물론, 지금은 생리기간이 일주일이라고 치면 하루정도 한알~두 알 정도 먹는 게 끝이다. 그 시절에는, 진통제 종류별로 해서 하루에 10알은 먹었을 것이다. 시간 텀을 기억하려고 '나와의 카톡'에 약을 먹을 때마다 적어놓았었다.
생리량도 많았다. 갈수록 더 많아졌기에, 애매한 수술방법을 권하는 대학병원에는 꽤 오랜 기간 발길을 끊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직장에서 가까운 병원에 가서 수술일정까지 잡을 수밖에 없었던, 증상이 심각했던 날도 있었다. 처음으로 수혈이란 것을 받아보기도 했다. 피가 쏟아지니 직장에 더 이상 다닐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갑상선암이 발견되어 자궁의 치료는 한참 뒤처졌다. 아무래도 '근종'보다는 악성종양, '암'을 처치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러고 보니 갑상선암 수술기간에도, 근종 수술기간에도 그 힘들었던 생리기간이 겹쳐있었다. '한 달에 두 번, 열흘 이상, 어마어마한 양', 오죽하면 자궁수술을 어서 빨리 받았으면 했다.
근종카페에서 '이러이러한 증상이 수술을 통해 나아질 수 있나요?'라고 올렸던 글에 대한 희망적인 답변들을 많이 보았던 탓도 있다.
어찌저찌 3개월의 텀을 두고, 갑상선암수술과 자궁근종수술을 마쳤다. 암은 경기도에서, 근종은 가까운 부산에서 받았다. 두 분의 의사 선생님은 충분히 믿고 수술을 부탁드릴만했다.(아마 정보가 궁금하신 분들은 ㄴㅇㅂ 카페 중 갑상선포럼과 근종힐링카페의 도움을 받길 바란다, 아마 내가 상세히 쓴 글도 그 어딘가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도움을 많이 받았던 카페들이다)
자궁수술 이후에도 한두 차례의 생리기간 동안은 양이 많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조금 낙심하기도 했지만, 시간은 꽤 빠르게 흘러가더라. 이제 아마 수술 후 두 번째 생리기간까지 거의 끝이 나고 있다.
'늘 주문하던' 양과 크기의 생리대는 '아차' 싶을 정도로, 지금의 상태에서는 '너무 많이 샀네'할 정도이다.
물론 재발의 위험이 크기에 운동을 열심히 하고 살도 빼고 식습관도 관리해야 한다.
그래도 현재는 참, 행복하다. 수술을 하면, 예를 들면 갑상선은 목 쪽이므로 이런 수술 부위들을 심장보다 높게 해서 잠을 자는 것이 좋은데(부기 회복에도 좋다), 그래서 몇 달간 거의 앉아서 잤다. 베개를 몇 개나 받쳤는지 모른다.
반면, 자궁수술은 다리 쪽을 올리진 않았으나, 수술 이후에 예기치 않은 출혈이 종종 있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수술만 하고 나면 영영 이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갑작스러운 하혈에 대한) 생리대를 늘상 차고 있어야 했다.
게다가 양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많았던 수술 이전의 시절처럼, 편하게 누워서 잠을 자지 못할 때도 있었다.
약 50~60도 정도 경사로 누워서 자야지 뭔가 안심이 되었다. 아마, 전신 마사지 같은데 쓰일 붉은색 대형 타월은, 피가 샐 걱정으로 진작 구입해서 생리기간이면 항상 이불 위에 깔아 놓는다. 한 장은 부족해서 두장과, 어두운 남색의 담요까지... 피가 새면 세탁기로 빨면 그만이지만, 그것도 자주 안 새야지 가능한 일이다.
수술 이후 두 번째 생리기간. 자고 일어나면 완전 쏟아지는 양과 통증, 이런 것들이 일부 나아진 것도 있었지만 남아있는 증상도 있었다. 그렇지만 확실히 모든 면에서 양과 통증이 줄었다.
유독 힘들었던 특이한 증상도 그분들이 써주셨던 댓글들처럼 수술 이후 말끔히 사라졌다.
물론, 감사한 의사 선생님께서 한 수술 덕도 있겠지만, 그동안 나는 찬 음식을 멀리하고 운동도 조금씩 해왔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지막으로 마셔본 때가 언제였더라...
사실 엊그제도 시원한~ 음료를 사 먹고 싶은 마음이 잠시 일었다. 그래도 잘 참았다.
이제는 시원하게 보다는, 미지근하게 먹는 편이다. 특히 유제품은 어쩔 수 없이 냉장고에 둘 수밖에 없는데, 먹기 전에 살짝 밖에 둬서 냉기를 한소끔 뺀 후 먹는 편이다.
카페인도 줄이고 있다. 완전히 안 먹기는 힘들다. 그리고 몇 달 후 외래 가기 전까지 살을 빼야 할 의무가 있다.
의사 선생님을 뵐 때마다 걱정스러운 잔소리를 해주시기 때문이다. 염치가 있으면 적어도 3킬로라도 빼가야 한다.
참, 면생리대에 대해서 잠시 덧붙이자면, 꽤 비싼 가격으로 면생리대를 샀었는데, 어마어마한 양을 감당하긴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항상 일회용 생리대를 썼고 구입했던 면생리대는 모조리 수납장 깊숙이 처박아 두었다. 어떻게 다른 용도로 쓰기도 애매했다. 잘라서 뭘 만들 수도 없고... 같이 구입한 세제 같은 것도 가벼운 손빨래를 할 때 겨우 쓰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나는 오랜 기간 일회용 생리대를 쓰면, 피부에 알러지가 일어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생리대를 하기도 안 하기도 애매한 상태였다. 그렇지, 면생리대가 있었지. 도저히 가려움과 접착제 특유의 불편함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던 나는, 수납장에서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던 면생리대를 꺼냈다.
조금씩 묻어 나오는 정도의 양. 면생리대를 하고 있으니 촉감이 편하고 더 이상 가렵지 않다.
물론 처음엔 나도, '그 피'를 더럽게만 생각했고 그런 게 묻은 것을 어떻게 내손으로 빨래를 하나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비록 절반 정도 공부하다 자퇴했지만 화학공학과였던 나의 짧은 지식(이는 겨우, 학과 건물에 늘상 풍겨오던 화공약품의 매캐한 냄새 같은 것, 각종 '해골+X'표시가 붙어진 실험실 유리장 속의 흑갈색병 속 시약들... 을 통한 일말의 느낌들과 이미 잊혀진 각종 전공지식들에 불과하다...)과, '유기농 순면'이라고 쓰인 생리대라도 썩 예민한 나의 피부에서 나타나는 불편함과 함께, '그 정도 빨래쯤이야' 오히려 내 건강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생리 끝물 즈음에는 피부에 일어나는 발진이나 가려움을, 약이나 연고로 다스리기보다는, 재등장하게 된 면생리대를 써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