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정리는 힘들어

새로산 외장하드

by 박냥이

나에겐 아버지로부터 받은 오래된 외장하드가 있다. 언제 받았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지만 설명해보면, USB 포트가 A to A, 즉 같은 모양 두 개가 양쪽 끝으로 있는 구식 USB 케이블도 필요할뿐더러, 겨우겨우 그 케이블을 찾아 구매하여 연결했으나, 여태껏 몇 번 떨어뜨리고 했더니 USB 본체 자체가 손상이 된 것 같더라. 한마디로 아예 인식이 불가능했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복구할 수 있는 방법도 있던데, 5만 원 이상 비용이 들 것 같아서 추후에 하기로 미뤘다.(필자는 지금 백수입니다... 흑흑) 아마, 그곳에는 2009~2011년도의 사진이 들어있을 것 같다.

얼마 전 생일에 선물 받은 외장하드는 그 시절의 외장하드보다 용량이 배로 커졌다. 고작 몇십 GB에 불과했던 외장하드에 비해 지금의 외장하드는 2TB이다. 워드프로세서를 공부한 지 꽤 오래되어서 GB이상은 단위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여튼, 이 외장하드를 산 목적은, 지금 쓰고 있는 노트북도 100GB 정도밖에 용량이 되지 않아서 서브로 쓸 하드웨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는 공유기를 한번 교체했음에도 불안정한 WIFI의 속도가 방마다 제각각이다. 이 노트북은 대개 WIFI가 제일 안 터지는 동생 방에서 주로 썼었다. 무엇보다 내 방에는 편하게 앉아서 노트북을 할 책상과 의자 같은 게 없고, 그나마 땅바닥에 앉아서 쓸 수 있는 좌식 책상뿐이라서 노트북을 사용할 때는 거의 동생 방을 이용했었다.

이는 꽤 눈치를 보아야 하는 면도 있었는데, 가끔씩 동생이 퇴근할 때까지 노트북으로 할 일을 다 못 마치고 동생 방에 꿈지럭거리고 있으면, 동생이 달가워하지 않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제저녁에는 (동생 눈치 볼 바에야) 그냥 노트북을 내방으로 들고 왔다. 결국 지금도 땅바닥에 앉아서 쓰는 중이지만, 사실 WIFI는 내 방이 더 잘 터지긴 한다. 그리고 그동안 미뤄왔던 클라우드의 사진 파일들을 외장하드로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다.(동생방에서는 바로 불가능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WIFI...)

이 과정에서 필요한 데이터 전송량에 비해 WIFI가 내방에서도 턱없이 느리긴 해서, 파일 다운로드가 종종 실패를 거듭한다. 여간 귀찮은 과정이지만, 한번 해놓으면 뭔가 안심이 될 거 같달까...

수첩과 볼펜으로, 연도별 월별 사진의 개수, 다 옮겨진 여부를 체크해나간다.

한 해의 사진을 한 번에 옮기는 것은 힘들어 보인다. 그냥 각 월별로 천천히 옮겨간다.(각월별 몇십~몇백 개 정도이다) 클라우드에는 약 2014년도에서 2018년도의 사진이 있다. 무료로 주는 30GB의 공간은 이미 다 차 버린 지 오래다.

이후의 사진은 구글의 포토(?)라는 곳에 또 저장이 되어 있고, 이것들은 이미 외장하드에 옮겨놨다.


뭐 너무 완벽성을 기하면 힘들어지니, 되는대로 하는 중이다. 2014년도까지는 어렴풋이 끝을 냈고, 2015년도 1월, 2월, 3월까지는 각 월당 몇십 장이어서 비교적 수월하게 끝이 났고, 이제는 2015년 4월, 갑자기 사진이 800장 정도로 불어났다. 아니나 다를까 압축파일을 다운로드하는데도 꽤 버퍼링이 걸리고 쉬이 되질 않는다. 여기서부터는 진짜 정체구간이다. 이 해의 사진 중에는 그때 사귀었던 연인과의 사진도 있다. 다른 연인들의 사진은 거의 지웠지만, 한때 나의 정신적 지주였달까... 이 사람은 사진을 남겨놓고 싶다. 그렇다고 이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갑자기 의외로 빠른 속도로 2015년 4월의 사진이 다운로드되어 브런치 화면과, 클라우드 화면과, 외장하드의 화면을 왔다 갔다 한다.

아까 말한 그 사람의 사진을 지금의 남친도 본 적이 있다. 조금 질투하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지우고 싶지 않다. 그냥 그 시절을 기억하며 살고 싶다. 사진을 지워버리면 그 시절의 그가 아닌, 나까지도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클라우드를 통해 새삼 느끼게 된 것은, 동생이 꽤 긴 시간 동안 군대에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워낙 사진을 많이 찍기도 했으나, 집에서 동생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고, 드문드문 군복을 입은 동생의 사진이 나오는 기간이 꽤 길게 느껴진다. 그래, 한두 번 면회도 갔었지. 뭔가, 누나가 예쁘면 동생이 군생활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 잘 보일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조금 있었기에, 예쁘지 않고 뚱뚱한 누나가 경상도에서 충청도까지 군대에 찾아가면서도 알게 모르게 주눅이 들었었다. 그래도 뭐 어때~ 그때 먹은 치킨이 참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가끔 여행지에 가서, 사진만 줄곧 찍을 때면, 사진 찍는 것 자체에 집착해서 실제의 모습과 공기를 체감하지 못할 때도 많았던 것 같다. 그래도 사진을 아예 안 찍기는 뭔가 아쉽다. 그냥 적당히 찍는 게 좋을 것 같다. 카메라를 통해서도 보고, 그냥 맨눈과 손과 발을 통해서도 보고 느끼고.

사진을 '클라우드에서 외장하드로 옮기는 일'의 의미는, 당연히 대형 포탈의 클라우드라 그 안전성에 대해서는 크게 염려하지 않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아버지 명의로 있는 그 공간에서 진짜 나의 프라이빗한 공간으로 느껴지는 귀여운 모양의 외장하드로 추억 어린 사진들을 옮기는 것이, 해야만 할 일 같이 느껴진다.

아마 오늘 안에 다 끝내진 못할 것 같다. 와이파이가 영 따라주질 않는다. 그렇다고 핸드폰으로 핫스팟을 쓰려니, 이미 다른 일을 한다고 이번달초에 모두 소진한 상태다. 핸드폰 요금제는 꽤 비싼데... 뭔가 핫스팟으로 쓸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은 매우 제한적이다. 나같이 도시 외곽 지역 사람들은 와이파이도 힘든데 조금이라도 더 얹어주면 하는 욕심을 잠시 내기도 한다.


과거에 너무 얽매이는 것은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과거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일은 가끔씩 새롭게 느껴진다. 가족과의 일이라면 가족 단톡방에 올리기도 한다. 예전에 필름 카메라를 썼던 시절에, 아버지께서는 정말 많은 사진을 (아마 어머니는 귀찮으셨을지도) 남겨놓으셨다. 당장 집에만 해도 두꺼운 앨범이 최소 5개는 된다. 작은 앨범들은 10개 정도. 최근에 동생방을 드나들며 책꽂이에서 우리의 과거사진을 많이 보았다. 그중에는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외손녀 외손자인 나와 동생이 같이 찍은 사진도 있었다. 당연히 사진가는 아버지.

그 사진을 매일 사소한 톡을 주고받는, 대구의 큰 이모한테 보냈고, 이내 이모는 그 사진을 형제자매방에 올렸다고 한다. '외손녀 외손자랑 같이 찍었네~', '우리 엄마 보고 싶다' 이런 말이 오고 갔다고 한다.

새삼 내가 누군가의 외손녀였다고 생각하니 신기했다. 항상 아래에서 위로, 즉, '외할머니'로 올려다보았던 게 더 익숙했기 때문일까... 한편으로 나에게 '외손녀 외손자'란 말이 익숙하지 않았던 탓도 있다.

외할머니께서 살아계실 적에, 외할머니는 나를 귀여운 별명으로 부르셨지, '우리 손녀'라고는 부르지 않으셔서 그런 말들이 낯설 수도 있겠다.


과거의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사람들에게 꽤 많이 의지하고 휘둘렸다. 그래도 자신만의 고집은 쓸데없이 꽤 셌다. 오죽하면 친한 동기 오빠가, (항상 거의 모든 고민에 대해 남의 조언을 구하는 나를 보고) '니는 말해줘도 안 들을 거면서 왜 물어보는 거고?'라기도 했다.

순간 '아차' 싶었고, 이후로 그 동기 오빠와 내심 (일방적으로 나 혼자) 소원해져 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 나는 '답정너'이기도 했었다. 이미 답을 정해놓고 그저 '날 알아달라는 건지/내가 이런 고민 중인걸 알아달라는 건지'그런 마음으로 여기저기 지인들에게 고민상담 명목으로 말을 걸곤 했던 것이다. 마치 내가 이미 내린 결정의 옳고 타당함에 조금의 지지를 받고 싶었달까...


이만큼 주절주절 떠들고 있는데도, 심지어 브런치는 그리 큰 비율의 데이터 처리능력(?)을 뺏어가지 않을 것 같음에도, 2015년의 5월에서 꽤 버퍼링이 걸리고 있다. 이미 두어 번 다운로드 실패다.

아마, 특별한 일이 있어서 와이파이 기기가 있는 거실로 (일말의 기대를 품고) 노트북을 들고나가거나, 아니면 다음 달 1일에 핫스팟 데이터가 새로 들어오지 않는 이상은, '이 작업'은 꽤 오랜 기간 동안 미완성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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