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변신'이란 책. 제목도 작가명도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략 10년 전 인상 깊게 읽었더랬다. 지금은 정확한 내용도 기억나진 않지만, 아침에 주인공이 거대한 벌레로 변해서 방의 침대에 누워있는 그런 장면과, 아마 결국 죽었던가... 중간중간 가족들이 외면하던 그런 모습들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카프카의 변신에 관한 자세한 내용이나, 똑 부러진 해석에 대한 글은 아니다.
그저 또 다른 공상을 피워본다. 마치 습관처럼, 시시때때로 누군가 담배를 피우는 것 같이.
지금은, 그 거대 벌레의 겹겹의 형체가 나를 감싼다는 것이, 다른 면에서는 여러 가지 가면을 쓰는 모습에 비유된다. 다만, 그 결과물이 변신에서처럼 '흉물스러운 것'이 아니라,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인 차이점이 있다.
집 밖에서는 조~용~하다가, 집안에만 들어오면 가족들의 귀청이 따가울 만큼 끊임없이 지껄이는 나다.
집 밖에서 쓰는 가면이 한 꺼풀 두 꺼풀 세 꺼풀 벗겨진 채 가족들과 뒹굴거리다 보면, 나의 쉴 새 없는 떠듦과 에너지에 가족들은 방전돼버리기도 한다. 참, 이런 습관은 남친에게도 마찬가지라서, 직장을 다닐 적에는 하루 종일의 스토리를 1부터 100까지 읊고 내가 느낀 기분 같은 것에 대해 열심히 설파하다 보면 남친은, 그 시간 동안 인내하며 형식적인 대답으로 대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저 가까운 이들에게는 내 얘기를 마음껏 (그들의 의사는 고려하지 않고) 편하게 늘어놓을 수 있달까.
변신에서처럼 비자발적이지 않은 이상, 자발적으로 자신을 깎아내리거나 혐오스럽게 치장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다들 누군가에게 좀 더 잘 보이길, 남보다 더 잘나 보이길 바랄 것이다.
비싼 코트와 가방으로 치장하고, 화장품을 몇 겹 바르고, 비싼 시계를 하고 비싼 차를 몬다.
그러면 좀 더 있어 보일 것이다. 남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도 바뀔 것이다. 함부로 깔보지 못할 것이다.
몇 달간 직장을 쉬고 있는 나는, 요즘 들어서 가끔 내가 진정 원하고 편하게 느끼는 내 모습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예민한 기질의 나는, 얼굴에 닿은 머리카락 하나도 못 견뎌하고 곧 떼내어야 했으며 쏟아져내리는 머리카락도 귀뒤로 항상 넘겨줘야 했고, 앞머리도 헝클어지면 무조건 휴대하고 다녔던 꼬챙이빗으로 빗어줘야 했다. 꼬챙이 빗으로 앞머리를 정돈하는 습관이 마치 나의 하나의 트레이드마크였다고 할까.
집 밖을 나설 때 핸드폰을 챙기는 것만큼이나 여분의 꼬챙이빗은 필수였다.
요즘에는, 여전히 머리카락 한가닥은 못 견뎌하지만, 귀 뒤에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종종 그냥 내버려 둬버리기도 한다. 더군다나 지금은 타인의 시선에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백수이다. 자주 가는 장소도 동네 뒷산. 모자를 눌러써서 앞머리의 상태는 어떤지 모르겠다. 꼬챙이빗을 안 챙긴지도 꽤 되었다.
문득 이런 내 모습이 참 편한 것을 느꼈다. 그래, 어린 시절에 놀이터에서 흙을 가지고 놀았지, 계곡과 바다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영하고 컵라면을 먹기도 했었지.
땀 흘리고 바로바로 씻지 않아도 항상 즐거웠지. 더 놀고 싶었지만 체력이 부족하기도 했겠지.
이제는, 크게 신경 써야 할 자리가 아니면 머리카락의 모양새에 너무 집착하지 않는 편이다.
등산을 하며 여기저기 묻는 흙들이 참 좋다. 약간 헝클어지고 어질러지는 것이 더 편하다.
깔끔하고 정돈된 것보다.
그러고 보니 나의 카톡 프사는 정말, 난장판이었지. 배경 프사까지 해서 도합 200장이었던가.
그건 그래도 (식구들의 잔소리에) 정리했지만, 약간 널브러져 놓아진 것들이 편하다. 유치원 때 들어갔던 작은 공이 잔뜩 든 풀장에 뛰어드는 것처럼, 그런 것들과 뒤섞이고 싶다. 어떤 공간에 이것저것 많이 들어차 있는 것이 보는 재미가 있다. 지금 모는 자동차도 살짝 지저분해도 좋다. 그런 공간이 더 편하다.
시골 할머니 집도 생각이 난다. 아주 어린 시절의 사진에서 외할머니 집 흙마당이나 툇마루에 서서, 고무줄로 머리를 한 움큼 묶고 있는 나는, 새까맣게 그을린 채 맨발과 가벼운 옷차림으로 웃고 있었다.
영화 어바웃타임의 어떤 대사도 생각이 난다. '현대 패션의 선구자로 보이지만..... 여전히.... 해변에서 뛰어노는 모습이 남아 있어요....' 아마 케이트 모스였던가.
나도 그런 자연스러움이, 좋다. 뭔가 신발이 더러워지는 것을 걱정해서 파도가 들락날락하는 모래사장 위를 걷는 것을 꺼리지만, 그냥 그런 것들은 나중에 걱정하고 신발은 한 손에 움켜쥐고 맨발, 발가락 사이에 모래와 바닷물의 감촉을 느끼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 옷이든 양말이든 좀 버리면 어떤가.
그냥 조금 더, 나를 구속하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 깔끔해 보이거나 단정해 보이기보다 조금 어수선하고 너저분한 것이 나에겐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