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 이건 너무 따뜻하잖아!
어제 에어팟을 잃어버렸다. 그날은 유독 에어팟에 새로운 액세서리를 달아주고 싶은 날이었다. 약해 보였지만 귀여워서 그 가느다란 쇠 몇 조각에 내 17만원 짜리 에어팟의 운명을 맡겨버렸다. 게다가 그날은 오랜만에 술을 마시고 또 오랜만에 버스정류장에서 10분 거리의 집을 걸어가고 싶었다. 집에 도착해서는 술기운에 어서 샤워를 하고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아침 운동을 하려고 나서는 길에 유산소 도우미 에어팟을 챙기려고 어제 맨 가방을 뒤졌다. 어라…? 에어팟이 달려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애처롭게 가느다란 쇳조각 몇 개만 얄밉게 대롱대롱 달려있었다. 내가 너무 미웠다. 더 이상 나에게 무선 이어폰을 꼽게하는 사치는 없을 것이라며 줄이어폰을 챙겨 헬스장으로 향했다. 그럼에도 우울하고 분한 마음이 해소가 되지 않아서 그 유명한 당근 마켓 동네 생활에 처음으로 글을 올렸다. “곰돌이 케이스 에어팟을 분실했습니다. 장소는 ~~이고 너무 우울하네요…” 글을 올리고 마음을 가라앉힌 후 열심히 두 시간가량의 운동을 마치고 핸드폰을 확인하는데, 내 글에 여러 개의 댓글이 달려있었다.
밑에 글 올라왔어요. 확인해 보세요!
찾으셨나요? 찾으셨는데 왜 우울하실까요~?
여러 명의 당근 제군들이 나의 에어팟 찾은 글에 대한 제보를 해주었고, 나의 우울함을 걱정해 주는 댓글도 달렸다. ‘와 세상이 아직 따뜻하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정말로 내 에어팟을 정확히 어디서 줍게 되었으며, 비가 오는 날이라 망가질 까 봐 줍게 된 이유와 앞으로 돌려줄 방법도 적혀있었다. 나는 서둘러 댓글을 달았다.
분실자 저예요! ~~ 의 에어팟이라고 뜹니다.
나의 이름으로 된 에어팟의 이름까지 확인한 후에 에어팟을 찾아준 천사께서는 친히 가까운 역사에 에어팟을 맡기고 가주셨다. 불과 몇 시간 전에는 내가 미워 죽겠었는데 지금은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선량한 마음이 깃든다. 받은 선한 마음을 나도 돌려주어야 지하는 따땃한 마음으로 나는 행복한 저녁식사를 하며 그날 같이 밥을 먹은 친구들에게 나의 당근마켓 썰을 들려주었다. (에어팟 내용물은 잘 확인했냐며 의심 어린 질문도 받았지만 ㅎㅎ)
이런 글을 상세히 남겨 놓고 싶은 이유로 문득 우리는 ‘왜 나에게만 이런 억울한 일이 생기는가?’하고 분해한 적이 한 번은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한번 이상 그런 생각을 해봤다. 세상이 나를 이유 없이 등지는 것만 같고 억울함에 열이 뻗친 날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이 이유 없이 내 편을 들어준 오늘 하루의 기억으로 나는 그 억울함을 당분간은 느끼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어느 미래에 내가 다시 이유 없이 억울함을 느낄 그날, 이유 없는 세상의 호의를 되짚으며 살아갈 힘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마무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