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첩엔 행복이, 메모장엔 우울이

by 작심몽실

아쉬울 때마다 더욱 애타게 찾게 되는 것(또는 사람)이 있다.
남편, 기도, 글쓰기.
여유가 있을 때는 잘 챙기지도 않으면서
뒤숭숭하고 우울하고 두려울 때는 어쩜 그리 간절해지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아도 가증스럽다.

남편이 옆에 있을 때의 든든함을 모르고
보통의 날의 잔잔한 행복을 인지하지 못하고
무탈하고 건강한 날의 고마움을 간과하다가
그들의 부재를 경험해야만 겨우 그 중요성을 깨닫는다.


어제가 딱 그런 날이었다.
몸은 한가한데 마음은 심란하고 어수선한 그런 날, 며칠째 장사가 안된 날이다.
카페를 마감하고 반려견(이하 으뜸)의 저녁 산책을 하는데 오늘따라 으뜸이도 이상하다. 자세히 살펴보니 혈뇨가 보인다. 아침까지는 멀쩡했는데, 왜? 갑자기?! 벌렁대는 심장과 떨리는 손으로 수의사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놀란 초보 반려인과 달리 노련한 수의사 친구의 진단명은 ‘방광염’.

급하게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오고, 저녁밥과 함께 먹이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무릎 꿇고 기도를 했다. ‘우리 으뜸이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얼른 낫게 해 주세요. 건강하게 해 주세요.’ 그리고 우울했던 마음을 거쳐, 놀라고 서러웠던 마음까지 타지에 있는 남편과의 통화로 줄기차게 쏟아냈다. 그렇게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맨 처음 느꼈던 우울함이 아직 다 가시지 않아 마지막으로 찾은 것이 지금 하고 있는 ‘글쓰기’이다.


휴대폰 메모장에 크로키처럼 흘기듯 써놓은 단어들을 보며 차분히 마음을 정리하는데 문득 ‘왜 메모장엔 행복하고 즐겁다는 단어보다 우울하다, 무섭다, 시끄럽다, 고민, 걱정이라는 단어들이 자주 보일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되짚어 보니 ‘주로 어제처럼 이런 날 메모를 하고 글을 썼구나.’라는 걸 깨닫는다. 글쓰기와 더불어, 기도도, 남편도, 막말로 ‘지 아쉬울 때...’ 찾았다.

그렇다고 내 인생이 불행으로 가득한가? 그건 또 아니다. 메모장과 달리 사진첩은 대부분 행복했던 시간, 즐거웠던 시간으로 가득하다. 왜 즐거운 날을 글로 기록하는 경우는 드물까?

그래서일까? 나의 뇌 사전 속에는 우울과 슬픔을 표현하는 단어가 즐겁고 행복한 순간을 표현하는 단어보다 더 풍부하고 다양하다. 아마도 마음이 아플 때는 세심하고 적확한 단어를 통해 지친 마음이 더 이상 다치지 않고 달래려 애쓰는데 반해 행복과 즐거움이 가득한 감정은 세밀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탓인 것 같다. 들뜬 구름 위에 올라앉은 기분에 취해 구름에 가려진 내 진짜 마음을 들여다볼 노력을 게을리했다. 그래서 그런 기분은 그저 ‘즐거워, 행복해, 좋아.’라는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는 어휘로 그날의 감정을 기억할 뿐이다.


그 때문일까? 기록하지 않은 행복과 풍요에 감사할 줄 몰랐다. ‘옷은 선물이 아니야.’라는 첫째 조카의 망언처럼 보통의 날, 무탈하고 평범한 일상은 가만히 있어도 엄마가 사다 주는 옷처럼 기본적이고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조카를 보면서 ‘라테’(나 때는 생일날 옷 하나 받으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했는데!)를 언급하는 올케언니 같은 심정으로 위에 계신 그분도 괘씸하고 서운한 마음으로 나를 보고 계실까?


요 며칠 장사가 안되어 기운이 바닥에 붙어버렸다. ‘이유가 무엇일까’로 시작한 우울의 늪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경제적 걱정까지 눈덩이가 되어 나를 압도했다. 주변 친구들을 비롯해 다들 돈 걱정 없이 안정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에게는 언제쯤 정착과 안정이 찾아올까. 우울과 걱정의 늪에 비교와 열등감까지 덮쳤다.

그러다 문득 이 끝없는 뫼비우스 띠를 끊어야겠다는 보기 드문 바람직한 오기가 밑바닥 어디선가 뽀록 솟아났다. 그러기 위해서 좋으나 싫으나, 만족하나 안 하나 현재 가진 것에 집중해야 했다. 과거도, 미래도, 타인도 없는 오직 나, 내가 가진 것에!

여전히 오늘도 지지부진한 매출과 팔리지 않은 제품의 손실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답 없는 고민으로 머리가 아프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옷 선물을 받지 않으면 그마저도 못 받을 수 있다. 오늘이라는 선물이 기대만큼 특별해 보이지 않더라도 그것이 당연한 선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글 하나 쓰고 세상이 어제와 달리 오색찬란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무릎 꿇고 눈물 흘리며 여태 안 하던 감사의 기도를 드릴 만큼의 감동도 없다. 다만 노력이라는 걸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울한 감정에 대한 고찰만큼 즐거움과 행복도 깊숙이 들여다보아야 공평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행복을 곱씹어보니 ‘감사함’이라는 종착역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행복을 만끽하려면 감사를 습관처럼 해야 하고, 그 습관은 노력이라는 걸 깨달았을 뿐이다.

한 방울의 ‘감사’가 내 몸 곳곳에 파고들어 행복감이 퍼질 수 있을 때까지, 그때까지 노력해야 할 일이다. 쉽진 않을 것 같지만 해야 한다. 안 그럼 옷선물도 못 받을 수 있다.


나는 옷선물을 계속 받고 싶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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