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에서 인심 난다.’는데 내 곳간은 언제나 채워질까? 여유 있게 차고 넘쳐 아낌없이 나누며 살고 싶은데 쉽지 않다. 몇 년째 채워지지 않은 부족한 곳간 살림으로 남들과 나누며 살려니 날이 갈수록 버겁다. 점점 더 기본적인 ‘사람의 도리’를 못하고 산다랄까?
남편과는 아끼며 살기로 했으니 부부끼리 챙기는 기념일은 생략하더라도 때마다, 철마다 최소한의 자식 노릇, 고모 노릇, 친구 노릇을 하려면 얼마나 더 아껴야 할까? 그나마 먹여 살릴 자식이 없어 부모 노릇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이제 곳간 구석에 마지막 쌀 한 포대만 남아 내 몫을 더 아끼게 된다. 그런데 아끼고 아끼던 쌀을 바닥에 쏟아버렸을 때 그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찢어진 포대에서 스르륵 세는 쌀처럼 울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꽁꽁 싸맸던 마음 포대가 툭 터져 푸슈슈 꺼져버리는 허탈하고 속상한 마음.
그래서 결국, 어제 참고 참았던 설움의 눈물이 터졌다.
설움의 시작은 빵이었다.
11월부터 카페 메뉴에서 빵을 없앴다. 내 고집으로 7개월을 해왔지만 극히 드문 빵 손님에 나도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버리고, 나누어 주는 빵에 들어가는 재료값을 무시할 수 없었다. 결정을 내린 후에도 마음이 하루에 열두 번은 바뀌었다.
‘그래도 계속해봐야 하지 않을까? 아니야, 빵은 쳐다보지도 않는데, 뭘... 빵종류를 더 다양하게 해 볼까?’ 등 생각은 오락가락했고, 그 때문에 머리까지 어지러웠다. 아마도 내 고집 때문에 이 좁은 커피숍에 오븐과 반죽기, 발효기를 들여놨는데 결과가 너무 초라하고 창피해서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것 같다.
해보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결과이기에 후회는 없지만 더 나은 성과를 내고 싶었는데 기대했던 결과가 아니라 아쉬웠다. 상권이 더 형성될 때를 기다려보고 그때 다시 시도해 보자는 남편의 말을 위로 삼아 결국 빵메뉴를 삭제했다.
빵 손실을 줄여 아메리카노 할인 이벤트를 시작했다. 각종 기계 때문에 손님 앉을자리가 없는 우리 카페는 ‘진짜’ 테이크아웃커피 전문점이다. 그게 여러모로 약점이 되어 맛과 원가에 비해 가격을 올려 받을 수 없다. 비싸고 맛있는 원두로 만든 커피를 이 가격에 판다는 것이 못내 아쉬운 결정이었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라 생각하며 스스로 다독였다.
아까운 원두, 내 몫이라도 아껴보고자 하루 마시는 커피양을 줄였다. 곳간은 비었지만 손님과 가족들에게 박할 수는 없기에 두 잔 이상의 커피는 참아보았다. 그래봤자 얼마나 아껴진다고. 미련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쓸데없는 짓을 했다.
빵을 하지 않는 아침은 생각보다 여유로웠다. 언제쯤이나 되어야 손님으로 바글바글 여유롭지 않은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까? 커피집은 한가했지만 바로 옆 올케언니네 식당은 바빴다. 한가로운 내 손이 부끄러워 틈틈이 식당일을 돕다가 카페에 손님이 오시면 또 부리나케 달려가 커피를 내렸다. 그러다 일이 났다. 마음만 급해 실수로 호퍼에 들어있던 원두를 다 쏟아버렸다. 커피를 내어드리고 바닥에 쏟아진 원두를 쓸어 담는데 기분이 착잡했다.
이럴 거 뭐 하러 아꼈을까?
이럴 거 뭐 하러 옆 가게를 도왔을까?
이럴 거 뭐 하러 빵을 시작했을까?
이럴 거 뭐 하러....
한번 불붙은 부정적인 생각은 초의 심지처럼 빠르게 타고 올라가 모든 것을 부정하려 해서, 흐트러진 마음을 서둘러 대충 홀매 쳤다. 그리고 카페를 마감 후 늦은 저녁 남편과의 통화 중 대충 묶어둔 끄나풀이 풀려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울면서 겨우 하는 말이 “아까운 내 원두... 나는 아까워서 먹지도 못했는데...”
원두만 아까웠을까...
빵에 쏟은 내 열정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내 정성이
눈에 띄는 결과로 돌아오지 않는 나의 노력이
쏟아진 원두처럼 바닥에 버려진 듯해 그게 속상했겠지.
노력과 정성이 얼른 답을 주어 가시적인 결과(결국 돈이다.)로 돌아와 ‘사람도리’라는 걸 해보고 싶은데 급한 마음에 비해 빨리 답하지 않는 결과 탓에 마음은 자꾸 쪼그라들고, 그 쪼그라든 모습이 초라해 감추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 그걸 또 감추려고 하니 조급해지는 악순환이다.
아, 이 마음! 구면이다!
나의 삼십 대. 타인의 평가가 두려워 ‘싫어요, 못해요.’라는 말을 내뱉지 못했다. 버거우면 도움을 청해도 되었고, 아닌 것은 당당히 거절 의사를 보이면 되었을 텐데 그걸 무능함이라 여겼다.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배로 쏟은 에너지와 긴장감, 그리고 결국 방전.
그게 싫어 떠났던 직장 아니던가. 그런데 또 그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다.
글을 쓰고 보니 마음이 왜 그리 요란했는지 진짜 이유를 알았다. 쏟아진 원두, 삭제된 빵메뉴, 저렴한 커피값, 저조한 매출 등 여러 겹의 장막을 걷고 나니 ‘있는 척, 괜찮은 척, 잘 사는 척’하고 싶은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보였다. 게다가 시기와 질투까지 덕지덕지 붙어 어지간히 못생긴 마음이었다. 감추려 할수록 오히려 더 커지는 마음이었고, 그럴수록 더 조급해졌다. 전에 봤던 그 악순환이다!
반갑지 않지만 그래도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다. 악순환의 고리는 ‘인정’ 하는 순간 끊어진다.
인정하면 감출 필요가 없으니까. 잘 보일 필요도 없으니까. 조급할 필요도 없어진다. 그렇게 여유가 생기고 곧 편안해진다.
다행이다. 글을 쓰면서도 이 복잡한 마음을 다스릴 방법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글을 쓰며 깊숙이 숨어있던 마음을 찾아내어 대처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다행이다. 삽시간에 타던 부정적인 감정으로 나의 전부를 태워버리지 않아서. 나의 전부를 부정하지 않아서, 나의 전부를 후회하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이전 직장생활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장사는 마음을 수련하는데 더욱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인 듯하다. 더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겠다. 욕심도 자존심도 그리고 그 어떤 집착도.
문득문득 찾아오는 자격지심과 열등감으로 요란해지지 않도록 텅 빈 마음을 유지해야겠다.
그렇게 불보살이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