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에 걸렸다. 일주일 넘게 나가질 않는다.
A형 독감 걸린 조카가 남긴 미역국을 먹어도 멀쩡했던 나인데
독감도 아닌 코감기 따위로
기운도 상실하고
의욕도 상실하고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
오늘은 약발로 기운을 끌어모아
새로운 디저트를 구상해보고 있다.
무념무상으로 반죽을 치대니 머리가 차분해진다.
예전에 제과 학원 다닐 때 내가 손대는 반죽마다 손실이 크게 나서 같은 팀 동생이 ‘최손실’이란 별명도 지어주었는데
사장이 된 지금은 바닥까지 싹! 싹! 남김이 없다.
다 내 돈이니까.
그만큼 알게 모르게 손이 야물어지나 보다.
사장된 지 7개월 정도
여전히 아홉 명의 칭찬보다 한 명의 날 선 말에
하루를 우울함으로 장식하는 초보사장이지만
날 선 말의 ‘이유’를 찾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다음에 똑같은 이유로 다시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으니까.
쓴소리를 튕기지 않고 받아들여야 발전한다고
30년 넘게 장사하신 엄마가 해주신 말씀이다.
엄마 말 잘 안 듣지만 그래도 아주 멍청하진 않아서 필요한 말은 잘 골라 듣는다.
그래서 어제 오신 손님의 불만족스러운 반응을 어떻게 해소할지 고민했고 할 수 있는 선에서 수정을 해봤다.
고작해야 메뉴판 수정이었지만 해놓고 보니 오히려 할인이벤트홍보가 더 눈에 들어오더라.
미비한 안내로 괜한 오해를 만들어 속상했던 어제였지만 오늘은 그분 덕에 확실히 더 나아졌다.
어제 그 손님,
내게 스승이었네.
매사 일희일비를 실천하는 초보사장이지만
시나브로
손이 야물어지듯
마음도 더 야물어지겠지.
아프니까 멜랑꼴리 말이 많다.
감기야, 얼른 나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