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ynue Jul 09. 2023

숨은 K-Pop 명곡 100선, 마흔여섯

나른한 오후 : 박학기, 1집 - 1989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LlxikA5wuioeKnEXE1vbD93Gr_Basdrd


내 생애 가장 졸린 노래는?


혹시, 잠이 스르르 오는 나만의 노래가 있는지?


노래를 듣는다는 것이, 나름대로의 멋짐을 보태서 설명하자면, 하나의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일 텐데, 간혹 특수 치료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노래가 있다고는 해도, 뜬금없이 수면유도를 위한 노래가 있냐고 묻는다는 게 다시 생각해 보니 다소 어이없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졸립다는 것이 지루한 것으로 이해되거나 혹은 오해되기도 하기 때문일 텐데, 어쩌면 굉장히 아이러니한 일일 수도 있을 테지만, 내겐 졸린데 좋은 노래, 나를 편안한 꿈나라로 인도하는 자장가 같은 노래가 있다.


졸린데 어떻게 좋을 수가 있지?


오늘 소개할 마흔여섯 번째 숨은 K-Pop 명곡은 1989년에 발매된 박학기 1집에 수록된 '나른한 오후'이다.


대부분 박학기를 기억하는 대중들에겐 그의 1집을 데뷔앨범으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의 데뷔는 1년 전인 1988년에 발매된 우리 노래전시회 3집을 통해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앨범에 수록된 노래 '계절은 이렇게 내리네'는 김현철 작사/작곡으로 그의 1집에 다시 재수록되어 발매되기도 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중 하나는 이 우리 노래전시회 3집이 김현철에게도 자신의 곡이 처음으로 발매된, 작곡가로서의 첫 데뷔앨범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박학기와 김현철의 긴 음악적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박학기의 데뷔앨범이라 할 수 있는 옴니버스앨범 우리노래 전시회 3집 표지


모든 우리 노래전시회 시리즈가 그러하지만, 이 앨범에 수록된 다양한 노래들 중 대부분은 개인적으로 숨은 명곡으로 소개할 가치가 넘치고도 남는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앨범과 노래의 소개는 다른 편에서 준비하는 것으로 하고, 잠시 나중으로 미루기로 하자.


박학기는 1989년 5월 언더그라운드의 상징이라고도 불렸던 동아기획 사단 내부에서도 당시 가장 Hot했던 프로듀서 그리고 뮤지션이자 아티스트였던 김현철, 조동익, 이병우 등과 함께 1집을 발매하게 되는데, 곡의 대부분은 김현철이 쓴 곡으로 그의 데뷔앨범보다도 빠르다.


그래서, 혹자들은 박학기의 1집 앨범을 김현철 0.5집이라고도 하고, 같은 해 발매되어 그의 손길이 많이 묻어난 장필순 1집을 1.5집이라 농담 삼아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참고로 시간의 순서로 보자면, 박학기 1집(1989년 5월), 김현철 1집(1989년 8월), 장필순 1집(1989년 10월)으로, 불과 몇 개월 수준의 짧은 차이로 연속 발매되었다.


이 모든 앨범들이 K-Pop 역사상 자타가 공인하는 명반이라고 할 때, 이 시기의 젊은 김현철은 프로듀싱과 창작력이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많이 넘쳐 나온 시기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아니, 도대체 얼마나 많은 명곡들이
이때 만들어진 거야?


참고로 박학기 1집은 동아기획 내에서도 굉장히 히트한 앨범으로 그해 박학기는 골든디스크의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같은해 동아기획에서 발매된 김현철 1집(1989년 8월), 장필순 1집(1989년 10월)로 박학기 1집(1989년 5월)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앨범이 발표되었다.


박학기는 1집 이후에도 꾸준히 빛과 소금(장기호, 한경훈), 오석준, 임기훈, 조규찬, 조규만, 조규천 등 숨은 명곡 시리즈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최고의 프로듀서들과 함께 작업을 진행했는데, 1998년 6집을 마지막으로 잠시 정체기를 맞이하다가, 2008년 자신의 딸들과 함께 부른 '비타민'이라는 노래의 메가히트와 더불어 왕성한 활동을 재개하게 된다.


1989년에 발매된 박학기 1집 앨범


박학기는 데뷔당시 한국 가요계에 굉장히 드물었던 가성형태의 노래, 마치 여성의 노래를 흉내 내듯이 들리는 팔세토 창법을 구사했는데 아직까지도 박학기를 대표하는 음색으로 그리고 그를 대표하는 '미성'으로 기억되고 있다.


1집의 자켓 앨범 또한 마치 달리의 미술 작품을 보는 듯, 세련되고 모던한 일러스트레이션이 눈에 띄는데 박학기의 오랜 지인인 홍익대학교 교수 이인수 씨의 작품이다. 이 일러스트를 유심히 보다 보면, 이 앨범의 타이틀 곡인 '이미 그댄'이나 대중에게 비교적 많이 알려진 히트곡 '향기로운 추억' 보다는 오늘 소개할 '나른한 오후'가 보다 더 연상되는 것 같기도 하는데, 이는 개인적 바램정도로 치부해도 좋을 듯하다.


김현철과 조동익(어떤 날)의 색깔이 많이 묻어나는 이 노래는 가벼운 보사노바로 시작된다. 리듬의 간들거림을 담당하는 최고의 기타리스트 이병우의 연주 또한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 주기 충분하고 초기 김현철이 자주 활용했던 특유의 조바 뀜이 노래의 단락을 부담스럽지 않게 이어가 줘서 듣는 내내 약간의 긴장감과 더불어 편안함을 선사해 준다.


그리고 박학기 특유의 보컬이 마치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따뜻한 햇살이 그득한 나른한 오후의 어느 창가로 나를 안내한다.


그리고 어느새 난, 동화 속 마법과도 같은 그의 목소리와 함께 밀려드는 졸음을 이겨내지 못하게 된다.


미안하다. 네가 이겼다!
나는 잠이 와!


세상을 급히 살아내는 게, 인생의 목표로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 꿀맛과도 같은 오후의 여유를 가져본지도, 아무 걱정 없이 일상의 졸음을 즐겨본지가 언제인지 이젠 기억 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된 듯하다.


하루가 길게 느껴지는 요즘과 같은 더운 여름날, 박학기의 나른한 오후를 잠시 즐겨보는 건 어떨까? 직장 상사의 등짝 스매싱 정도는 이 아름답고 멋진 휴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터이니...




나른한 오후

박학기, 1집 - 1989


작사 : 김현철

작곡 : 김현철

편곡 : 김현철

노래 : 박학기


따가와 여린 햇살 저리로 나를 부르듯

팬지꽃 향기는 어지럽고 멀리선 기차소리 들려와


나른한 오후 음~


날아가 작은 새들은 살며시 부는 바람에

의자는 조용히 흔들리고 내게는 밀려드는 졸음


나른한 오후 음~ 나른한 오후


꼬마와 함께 산책을 나설까 읽다만 책이라도 다시 펴볼까

세상은 더 없이 평화롭고 나는 잠이 와~ 우우우우우우


들려와 고운 노래는 은은히 가만 가만히

진기한 숲속의 얘기들이 가슴 가득히 내게 스며와


나른한 오후 음~ 나른한 오후


꼬마와 함께 산책을 나설까 읽다만 책이라도 다시 펴볼까

세상은 더 없이 평화롭고 나는 잠이 와~ 우우우우우우


나른한 오후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

https://youtu.be/14IV0Ep5JjY

매거진의 이전글 숨은 K-Pop 명곡 100선, 마흔다섯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