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 없어, 김현식 4집 -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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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미친 듯이 그리운
가객, 김현식
아직은 서먹서먹하기만 했던 가을의 향기가 짙어져 기억과 추억의 내음으로 내 맘과 몸을 감싸고, 이젠 제법 계절의 익숙함을 느끼게 되는 11월이 즈음이면, 무척이나 그리워지는 사람, 유재하 그리고 김현식.
1987년, 그리고 1990년 11월 1일, 무슨 운명과도 같이 그들은, 같은 날 모두 하늘의 별이 되었다.
사실, 나의 유년 시절을 그들의 음악을 듣고 자란 수많은 팬 중에 한 사람이었던 나에게 이 두 레전드의 죽음은 그렇게 충격적이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유재하는 그를 이제 막 알기 시작할 무렵 교통사고의 소식을 접해서 슬퍼할 기본적인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었고, 이와 반대로 김현식은 굉장히 몸이 좋지 않아 가망이 거의 없다는 소식을 오래전부터 미디어를 통해 들어왔었기에 이미 마음의 준비를 꽤 많이 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 노래 한번 들어봐~!
1980년대 중반, 아마 나의 음악적 정체성이 조금씩 쌓여 갈 때 즈음, 친구가 건넨 카세트테이프 하나. 그건 바로 김현식 2집이었다. 당시 들국화 앨범에 큰 충격에 빠져있던 내게, 같은 레이블이었던 '동아기획'의 앨범을 추천해 준 친구의 정성스러운 배려였던 것도 같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김현식은 데뷔년도, 심지어 2집 발매년도가 들국화 1집보다 빨랐는데, 나와 성향이 비슷했던 친구는 우연히 삼촌이 듣던 노래에 매료되어 공테이프에 녹음해 준 것이었다.
그때가 정확히 언제였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친구가 추천해 줬던 노래는 아직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 있는데, 2집 앨범의 타이틀 곡이었던 '사랑했어요'가 아닌 '변덕쟁이'였다.
'변덕쟁이'는 사랑스러운 자신의 아들을 보며 김현식이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인데, 노래 전반부터 사랑과 평화의 최이철의 감칠 나는 기타 연주와 김명곤의 세련된 편곡이 듣는 내내 어깨를 들썩이게 만든다. 그리고 그 어릴 적 나와 친구들은 후렴구가 시작되는 첫 가사인 '아!'를 마치 탄식과 같이 함께 부르며 웃고 떠들곤 했었다.
아~ 언제 봐도
좋은 노래~!
김현식의 음악인생은 참 굴곡이 많기로도 유명한데, 고등학교 자퇴와 검정고시 이후, 당시 K-Pop의 등용문과도 같았던 종로 일대의 음악다방에서 활동하다 알려지기 시작하여 검은 나비, 동방의 빛과 같은 그룹사운드의 보컬로 활동하게 된다.
1978년 정식 데뷔를 준비하던 그는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되고, 이미 완료된 앨범의 발매를 늦추게 되는데, 결국 2년이 지난 1980년 자신의 이름을 건 1집을 발매하게 되지만, 당시 유행보다 조금 뒤처진 음악 때문인지 대중에게 외면받게 된다.
이후 김현식은 1982년 첫눈에 반한 여인과 결혼하여 외식업을 하기도 하였으나, 이 마저도 실패하고 다시 밤무대의 가수로 활동하던 중, 동아기획의 '김영'사장의 눈에 들어 1984년 2집을 발매하게 되고, 타이틀 곡인 '사랑했어요'가 인기를 얻으면서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다.
이 무렵 김현식은 김현식과 돌개바람이라는 그룹으로 밤무대를 일명 '평정'하게 되는데, 낮에는 '조용필', 밤에는 '김현식'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유재하(건반), 김종진(기타), 전태관(드럼), 베이스(장기호)로 구성된 봄여름가을겨울 밴드를 구성하고 3집 준비에 들어가는데, 중간에 탈퇴한 유재하를 대신하여 합류한 박성식(건반)을 포함하여 이때 밴드 멤버에게 노래 하나씩을 만들어 오라고 했다고 한다.
아 지금봐도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은
드림 오브 드림팀인듯!
이렇게 밴드의 멤버들이 만든 노래가 바로, 가리워진 길(유재하), 비처럼 음악처럼(박성식), 그대와 단둘이서(장기호), 쓸쓸한 오후(김종진)이며, 이 앨범은 K-Pop 역사상 빠지지 않는 최고의 명반으로 남게 된다.
김현식 3집은 뭐 하나 흠잡을 수 없는 최고의 명반이기도 하지만, 당시 30만 장이 넘는 빅히트를 기록한, 대중적으로도 성공한 앨범이기도 한데, 특히 '비처럼 음악처럼'은 지금까지 전 국민이 애창하는 노래이자, 김현식의 대표곡으로 알려져 있다.
3집의 흥행과 더불어 4집을 준비하고 있던 그는 1987년 마약혐의로 들국화 멤버였던 전인권, 허성욱 등과 함께 다시 구속되게 되는데, 리더의 부재로 방향성을 잃은 봄여름가을겨울은 뿔뿔이 흩어져, 빛과 소금과 봄여름가을겨울 두 그룹으로 나뉘게 된다.
이때 김현식은 자신의 음악생활과 지난 과오에 대해 깊은 반성과 후회 등 자성을 할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듬해인 1988년 그 유명한 삭발 콘서트 이후 감동스러웠던 팬들의 지지와 성원에 보답하고자 그 해, 밤을 새워 녹음하고 작업한 또 다른 명반 4집을 발매하게 된다.
김현식 4집은 드림팀이었던 봄여름가을겨울의 멤버는 사라졌지만, 당대 최고의 편곡가인 송홍섭(베이스)을 포함하여 이병우(어떤날, 기타) 박청귀(위대한 탄생, 기타), 배수연(드럼), 김희현(드럼), 김효국(11월, 오르간), 황수권(키보드) 등 레전드 세션 뮤지션들이 참여하여 훌륭한 연주를 보여주었고, 지금은 드라마 제작자로 더 유명한 송병준의 명곡 '언제나 그대 내 곁에', 고등학생 시절 만든 윤상의 작곡가 데뷔곡 '여름밤의 꿈', 여전한 지지를 보내준 유재하, 장기호의 '그대 내 품에', '사랑할 수 없어' 등이 수록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는 마약의 검은 손을 뿌리치고자, 자주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이는 다시 부메랑처럼 그의 건강을 해치는 결과를 낳고, 그의 목소리 또한 점차 그 선명함을 잃어가게 된다.
이후 그는 신촌 블루스 2집(1989), 비 오는 날 수채화 OST(1989)와 같은 앨범에 참여하여 '골목길', '비 오는 날 수채화' 등의 또 다른 명곡들을 함께 만들어 냈으며, 1990년 그의 5집이 발매될 시점에는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더 이상 술을 먹으면 살 수 없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고,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병원에 입원해 있을 동안에도 자주 탈출하여 6집 음반 녹음을 계속하였고, 술에 의존하지 않으면 노래를 부를 수 없을 정도가 되었지만 Live 공연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1990년 11월 1일...
바로 4년 전 자신이 사랑했던 유재하가 떠난 바로 그날, 그는 32세의 젊은 나이로 안타깝게 생을 끝마치게 된다.
오늘 소개할 예순두 번째 숨은 명곡은 1988년 발매된 김현식 4집에 수록된 '사랑할 수 없어'라는 노래이다. 이 노래는 김현식이 작사, 전 봄여름가을겨울 멤버이자 빛과 소금의 멤버인 장기호가 작곡하고 송홍섭이 편곡한 곡으로 앨범 발매당시 그의 불후의 명곡 중 하나이자 나의 최애노래이기도 한, '언제나 그대 내 곁에'와 함께 김현식이 타이틀곡으로 정한 노래이다.
물론, 이 앨범은 발매된 1988년 그해 골든디스크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겨준 앨범이기에, 뭐 하나 빼놓을 수 없이 모두 잘 알려져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최전성기의 김현식 보컬을 들을 수 있는 마지막 앨범이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언제나 그대 내 곁에', '여름밤의 꿈', '우리네 인생', '그대 내 품에', '우리 처음 만난 날'과 같은 명곡보다는 덜 알려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작사 김현식, 작곡 장기호, 편곡 송홍섭으로부터 느껴지는 어우러짐이 하나로 뭉쳐져 예전 그들의 오랜 케미가 눈앞에 상상이 되듯 서정적이고도 아름다운 발라드 곡에 그저 옅은 웃음을 짓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은은한 Elec String을 배경으로 피아노, 드럼, 베이스의 연주로 시작되는 전주를 지나, 무심코 툭하고 던져지는 그의 목소리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한국형 블루지한 매력을 모두 담고 있어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의 감성에 그저 한없이 녹아들게만 된다.
아. 그립다!
이 노래는 멀리 떠나버린 연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김현식 특유의 절제된 가사로 표현하고 있는데, 가을바람이 선선하게만 느껴지는 요즘과 잘 어울리기만 한다.
후렴으로 들어서면서 폭발하는 그의 감성과 목소리엔 이미 온몸에 소름이 돋아, 마치 세상에 울부짖듯 소리치는 그의 절규가 나의 가슴 한켠을 시리게 만들고, 애잔하기만 했던 그녀와의 추억을 소환해 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빨리 잊으라'는 말들을 자주 한다.
이는 현재의 사랑이나 현실에 충실하라는 충고의 의미도 있겠지만, 세상엔 아무리 벗어나려고 노력해도 운명과도 같은 인연 또한 있을 수 있기 때문인데, 난 운 좋게도 이 마법과도 같은 기적을 주변에서 많이 보아왔다.
그리고 언젠가 내게도 그런 기적이 올 수 있을 것이라 희망한다.
그러니, 너무 아파하지 말자. 너무 그리워 하지도 말자. 잊혀지는 것에 익숙해 지자.
언젠가 내게 불어 올 기적 같은 바람이
날 깨우고, 또 인도할 테니.
작사 : 김현식
작곡 : 장기호
편곡 : 송홍섭
노래 : 김현식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사이로 잊혀져간 그 모습 찾으러 갔었네
부는 바람에다 속삭여도 슬픔으로 젖은 나의 두 눈빛
내 맘에 와닿는 외로움을 그대 모습으로 달래도 보지만.
이젠 너무 멀리 떠나버린 그대이기에 우리는 사랑할 수 없네
바람결에 부는 내 사랑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이젠 내 맘 속에 추억만 남아 흐르는 저 세월에 잊혀져가네.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사이로 잊혀져간 그 모습 찾으러 갔었네.
부는 바람에다 속삭여도 슬픔으로 젖은 나의 두 눈빛
바람결에 부는 내 사랑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이젠 내 맘 속에 추억만 남아 흐르는 저 세월에 잊혀져가네.
내 맘에 와닿는 외로움을 그대 모습으로 달래도 보지만.
이젠 너무 멀리 떠나버린 그대이기에 우리는 사랑할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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