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목, 데이지 1집 - 1994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LlxikA5wuioeKnEXE1vbD93Gr_Basdrd
또 하나의 선입관을 없애준
충격적인 명반
1994년 어느 주말, 여느 때와 같이 레코드 가게의 신보를 뒤지던 내게 들어온 흑백의 앨범표지 하나가 있었다. 멀리에서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던, 표지 속 그 누구보다 밝게 빛나고 있던 익숙한 얼굴, 박광현.
그리고 앨범 속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생생하기만 하다.
오늘 소개할 예순세 번째 숨은 K-Pop 명곡은 1994년 결성하여 단 한 개의 앨범을 발매하고 사라진, 그룹 데이지(Daisy) 1집에 수록된 박광현 작사, 박광현/이영경 작곡/편곡의 '여울목'이라는 노래이다.
그룹 데이지(Daisy)는 본 숨은 명곡 시리즈에서도 이미 소개한 박광현(19번째 숨은 명곡)과 그룹 아침(25번째 숨은 명곡)의 멤버이자 재즈 피아니스트 이영경(피아노, 건반)이 당시 늦깎이로 재즈에 입문했던 임민수(드럼) 그리고 당시 국내 재즈 공연에서 연주가로 이름을 많이 알렸던 J.C.Clark(베이스)와 함께 결성한 재즈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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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외국인 멤버와 함께 그룹을 결성하여 대중적인 앨범을 발매한 것이 데이지가 K-Pop 역사상 처음이지 않나 싶은데, 모든 게 Global화 된 지금이야 너무나도 일상적이고도 평범한 일이 되었지만, 고정관념의 답답한 틀을 일찌감치 깨버린 그들의 아름답고도 찬란한 시도는 비단 멤버의 구성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추구한 음악에서도 충분히 스며들어 있다.
앨범 내 대부분의 노래들을 두 거장 박광현, 이영경이 작사/작곡/편곡하긴 했지만, What to Say(JC. Clark 작사/작곡/편곡), 휴가(임민수 작곡/편곡)를 통해 멤버 전체가 프로듀싱의 능력을 겸비한 출중한 올라운드 플레이어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앨범은 서울대에서 국악을 전공한 박광현,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한 이영경이 재즈라는 새로운 틀 안에서 다양한 장르적 결합과 재해석을 시도한 기념비적 앨범이자 시대를 앞서간 명반이라 이야기할 수 있는데, 특히, 국악과 재즈의 결합은 당시 퓨전 재즈로부터 시작된 내 음악적 취향과 관심이 서서히 정통재즈로 옮겨져 가고 있었던 내겐 충격과도 같았다.
물론 K-Pop의 다양한 장르에 국악을 접목했던 시도는 당시에도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장르의 결합이라기보단 말 그대로 국악적 요소를 기존 장르에 첨가하는 수준으로, 국악에서 사용되는 악기를 연주하는 정도가 대부분이어서 장르 결합이라 말하기 민망스러운 경우이거나,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대중성보다는 실험적 아트가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데이지의 음악은 진정한 장르적 결합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하고 아름다워서 이질감이라고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어느새 혼잣말로 수천 년간 이어져 내려온 음악적 깊이에 감탄을 연신 내뱉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국악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여울목은 '강이나 바다에서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빠르게 흐르는 여울이 턱진 곳'으로 K-Pop에서는 1986년 한영애 1집에 실린 동명의 노래가 세대를 뛰어넘는 명곡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는데, 잔잔히 흐르던 강물이 여울목을 만나 험하게 맴돌고 거세지는 모습을 인생의 시련이나 세월의 덧없음으로 많이 비유하기도 한다.
맑은 물소리와 함께 마치 물 따라 잔잔히 흐르는, 청하 하도록 아름다운 이영경의 피아노의 연주로 시작되는 노래는 국악의 음계와 화성을 유지하면서도 재즈의 Swing과 완벽하게 융화되어, 재즈에 국악이 결합된 것인지, 아님 국악에 재즈를 가미한 것인지 판단이 흐려질 정도로 어안이 벙벙하게 만든다.
그리고 블루지함이 넘쳐나는 박광현 노래가 시작될 무렵이면 이러한 장르적 고민은 모두 날아가버리고 이 아름답고도 찬란하기만 한 명곡을 온전히 즐기게 된다.
이 노래는 마치 조선시대의 어느 선비가 사랑하는 여인을 그리워하는 듯한 멋진 풍류가 느껴지는 가사와 이를 표현하는 음악적 구성이 절묘하게 어울려 진정 우리의 것에 대한 아름다움을 듣는 내내 느끼기 충분한데, 1절 이후 울려 퍼지는 대금의 솔로에서는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감동을 선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치 시조를 읊듯 '좋구나~!'라는 추임새와 함께 노래 마지막에 들려오는 박광현의 내레이션은 그 시절의 고뇌와 아픔이 생생하도록 충분히 내 맘 속으로 전해져, 마치 전설 속 어느 선비가 된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그리고, 슬픔을 풍류로 승화하며 잊고자 했던 우리 내 조상들의 멋짐 폭발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지게 된다.
그래 잊자~! 얼쑤~!
작사 : 박광현
작곡 : 박광현, 이영경
편곡 : 박광현, 이영경
노래 : 데이지
달빛 물결 위에 작은 나룻배가 있고 나의 슬픔이 그 위로 고이 서리네
한줄기 빛도 향기도 나는 찾을 수가 없어
서러운 노래를 부르면 슬픔과 눈물이 섞이어 새빨간 노을로 젖어 가리
그리운 사람아 밤이면 별을 안고 눈물로 얼룩진 나를 위로해 주오
바람이 부는 날엔 진달래빛 노을과 함께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면 그리운 사람이 나에게 투명한 아침을 가져오리
저 푸른 하늘을 좋아한 달빛물결 그 전설 속으로 나를 데려가 주오
(내레이션) 좋구나~! 달빛 물결 위에 작은 나룻배가 있고 나의 슬픔이 그 위로 고이 서리네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