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관하여, Kiky : 1집, 판단중지 - 1994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LlxikA5wuioeKnEXE1vbD93Gr_Basdrd
마이클 잭슨을 뛰어넘었다던
진짜 천재가 한국에 있었다고?
수많은 뮤지션들과 아티스트들의 아이돌로 전 세계 20세기의 음악산업을 통틀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레전드 중의 레전드, 위대한 팝의 왕, 'King of Pop 마이클 잭슨'!
그 누가 본전도 찾지 못할 이 역사적 레전드와의 천재성 비교를 할 수 있을까?
그저 어이없는 노이즈 마케팅을 위한 위험한 시도이거나 명확한 사실이나 의견을 무시하고 외골수의 허황된 상상을 즐기는 망상주의자들을 제외하고는,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K-Pop 역사의 아티스트 중에서도 '한국의 마이클 잭슨'과 같은 표현으로 레전드와의 직접적 비교라기 보단 오히려 존경의 의미가 가득했던 비유가 있기도 했었는데, 하나둘 되짚어 짜 맞추어 보면 아마 화려하고도 현란한 댄스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춤꾼'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마도 당시 '충격적'이라는 표현 외에 어찌 설명할 길이 없었던 그의 멋들어진 춤이 한국 대중에게는 가장 큰 임팩트였긴 했겠지만, 이는 마이클 잭슨의 천재성 중 극히 일부분만에 국한된 것으로 그의 작사/작곡/편곡 및 무대/영상 연출력을 포함한 프로듀서로서, 시대를 앞서간 독특한 비주얼과 음색을 가졌던 아티스트/엔터테이너로의 재능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펼쳐놓기 시작하면 아마 끝이 없을 듯하다.
마이클 잭슨은 6세의 나이로 1964년 Jackson 5의 리드보컬로 데뷔하여 그의 재능을 일찌감치 인정받으며 그의 천재성을 전 세계에 알렸고, 그가 불의의 의문사로 생을 마감했던 그 순간까지 팝 시장에서 전무후무한 엔터테이너로 입지와 영향력을 끼쳤으며, 언제나 최고의 자리에 있었다.
도대체 그럼 그 한국 천재가 누군데?
물론 수많은 비난과 비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당시 이 위대한 레전드와의 비교가 두렵지 않았던 국내 프로듀서이자 아티스트는 과연 누구일까?
이미 마이클 잭슨보다 어렸었던 3살 때 영화 '세월이 가면'을 시작으로 출중한 연기력을 인정받아 '사랑은 눈물의 씨앗' 등 1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여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이름을 알렸었고, '민비', '행복', '어머니', '맏딸'외 등 10여 편의 TV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그의 나이 9살에는 잭슨 파이브와 같은 K-Pop 가족그룹의 메인보컬로 데뷔하여 마이클 잭슨이 불렀던 'In our Small Way'를 번안한 '나의 작은 꿈'을 부르기도 했는데 그의 청아한 목소리는 마이클 잭슨보다 뛰어나다는 국내 전문가들의 평가를 받기도 했다. 연주에도 높은 재능을 보인 그는 바이올린, 드럼, 양금 등 못 다루는 악기가 없었고, 국내 콩쿠르에 입상하여 공식적으로 그 실력을 인정 받기도 한다.
그는 초등학교 과정부터 독학으로 공부해 고입과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14살 때는 최연소로 사법고시에 응시해 ‘신동’ 소리를 들었으며, 고려대학교에 입학 후 삼성그룹 산하 제일기획에 입사하기도 한다.
연기, 음악, 공부 모두에
최고의 재능을 가졌던 '찐천재'!
부정적인 시각과 견해로 이 글을 읽어 내려갔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정도의 천재성을 가졌던 주인공이라면 아마 마이클 잭슨과 비교에 관대해 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늘의 그 주인공은 바로 숨은 명곡 일흔아홉 번째 노래인 '삶의 관하여'를 작사/작곡/편곡 노래한 '강인봉'이다.
강인봉이 누구지?
아마 강인봉이라는 그의 이름은 일반 대중에게는 그리 친숙하지 않을 수 있다. 강인봉의 K-Pop 데뷔는 전무후무한 국내 최초의 K-Pop 전 가족의 패밀리 그룹이었던 '작은별가족'으로부터 시작되는데, 만화영화 주제가를 시작으로 수많은 번안곡, 자작곡을 가족 멤버였던 7명 모두가 탁월한 재능으로 직접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했었던 한국의 '잭슨 파이브'라 불렸던 전설적 그룹이다.
작은별가족은 영화감독이자 방송 드라마 작가 출신인 아버지 강문수와 예그린 합창단에서 '로미오와 쥴리엣' 등 여러 오페라에서 주연 소프라노로 활약한 서울대 음대 성악과 출신의 아내 주영숙이 가족 음악그룹의 꿈을 가지고 1974년 3월 한국판 '사운드 오브 뮤직'이었던 영화 '작은별'을 만들게 되는데, 이 가족 영화가 성공을 거두자 일본 후지 TV에 초청을 받았고, 청와대의 초청을 받아 국악 연주회도 열게 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작은별가족은 음악 실력과 멤버간 호홉을 갈고 닦기 위해 3년간 당시 최고의 오프라인 무대였던 미 8군 무대에 서게 되는데, 작은별가족이 소유하고 연주할 수 있었던 악기는 50여 개에 달했다고 한다.
첫째 강인호는 한양대학교 전자공학과 출신으로 클라리넷, 색소폰, 피리에 능했고, 둘째 강인혁은 경희대학교
작곡과 출신으로 작편곡은 물론 기타, 첼로, 해금연주에 능했으며, 초기 메인보컬을 맡았던 셋째 강인엽은 바이올린, 플루트, 트럼펫, 단소, 대금연주에 능했다.
아역배우 출신이었던 넷째 강인경은 바이올린, 기타, 베이스기타, 가야금연주에 능했고, 다섯째 강인구는 트럼본, 벨, 드럼, 아쟁에 능했고 이후 영화음악과 TV드라마 배경음악, 애니메이션 주제곡들을 다수 작곡, 편곡해 오고 있으며, 그룹의 홍일점인 여섯째 강애리자는 영화 ‘팔도강산’등에 출연했던 아역배우 출신으로 피아노, 오르간, 플루트연주에 능했으며, 우리에게 잘 알려진 '분홍 립스틱'이 수록된 독집 음반을 발표했다.
그리고 작은별 가족의 막내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강인봉이다.
전 국민이 아는 노래, 마징가 Z를
강인봉이 불렀다고?
작은별 가족은 1976년 어린이 TV 만화영화 노래 모음 1/2집을 내면서 데뷔하게 되는데, 우리에게 굉장히 익숙한 마징가 Z, 우주소년 아텀(아톰) 등의 노래들이 실려있으며, 모두 오늘의 주인공 강인봉이 부른 노래로 어쩌면 그가 노래한 곡 중에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친숙한 노래들이기도 하다.
대중 가수로서의 작은별의 데뷔는 1977년 발매된 작은별 1집인데, 앨범표지에서부터 1970년대에 멋들어진 올드카에 환하게 웃고 있는 세련된 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기도 하다. 이 앨범에 실린 '나의 작은 꿈'이 앞서 이야기한 잭슨 파이브의 마이클 잭슨이 불렀던 'In our Small Way'의 번안곡이다.
https://youtu.be/MK7o8fOMTxk?si=xeiAtlZ-CzrM2HRQ
이후 작은별 가족은 '가야만 하는 길', '보라빛 꿈'등이 곡이 실린 2집을 1978년에, 13살의 강인봉이 직접 작곡한 노래인 '내가 커서 어른이 되면', '옛날이야기' 등이 실려있는 3집을 1979년에, 베스트 앨범 형식이었던 앨범을 1980년에, 그리고 멤버들이 군에서 제대한 1982년 마지막 앨범을 발매하고, 1985년까지 함께 활동 후, 각자의 음악 인생을 이어가게 된다.
강인봉은 작은별 가족 활동이 후, 1985년 형 강인구와 함께 5인조 그룹 '벌거숭이'를 결성하게 되는데, 이때의 가족들은 가족 밴드를 놔두고 다른 멤버들과 별도의 그룹을 만들어 활동하는 것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벌거숭이는 시대의 남을 명반 중 하나인 1집 '벌거숭이'를 발매하고 앨범 내 '벌거숭이'라는 타이틀곡이 가요톱 10 2위를 하는 등, 좋은 반응을 얻기도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더 이상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고 K-Pop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미 강인봉을 아는 많은 사람들은 눈치를 챘겠지만, 이 앨범에 실린 또 다른 곡인 '삶에 관하여'는 당시에는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던 곡으로 오늘 소개할 숨은 명곡의 원곡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g6aDsToxjpE
어쩌면 오랜 가족 밴드와 벌거숭이의 활동이 강인봉에겐 오히려 음악에 대한 회의로 다가왔던지, 그는 음악을 그만두고 국내 최고의 광고대행사인 삼성그룹 산하 '제일기획'에 입사하여 음악 담당 업무를 맡게 되는데, 이때 발굴한 가수가 '김원준'이었고 그의 1~3집 제작에 작/편곡/연주 등 다양하게 참여하게 된다.
이후 강인봉은 김원준 제작의 업무가 사라졌던 음악에 대한 열정의 불씨를 밝히게 해 줬는지, 벌거숭이 시절의 키보디스트이자 피아니스트 곽윤찬의 형인 곽윤종과 Techno 음악 사운드를 가미한 듀오 Kiky를 1994년 결성하고 1집 '판단중지'를 발매하게 된다.
높은 앨범의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대중에게 큰 어필을 하지 못했고, 음악에 대한 큰 희망과 열정으로 다시 시작했던 그룹 Kiky도 1집을 끝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후 강인봉은 1997년 그룹 '세발자전거'를 결성해 활동하다가 2001년 남성 3인조 퓨전 포크 록 그룹 '자전거 탄 풍경'을 결성하게 되는데, 1집 앨범 자전거 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 2003년 영화 '클래식'의 주제곡으로 삽입되어 뒤늦게 빅히트 되면서 K-Pop 내 큰 인지도와 인기를 얻게 되었고, '그렇게 너를 사랑해', '또 다른 사랑이 찾아와도' 등의 노래들이 꾸준한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된다.
아마 강인봉이라는 이름보다는 이러한 히트곡의 여파로 '자전거 탄 풍경'의 멤버로서 그는 K-Pop내 큰 인지도를 얻게 된다.
자탄풍이 강인봉이었구나~!
이제야 퍼즐이 맞춰지는 듯~!
2005년부터는 '자전거 탄 풍경'에서 분리된 '나무자전거'에서 활동하고 있다가 2011년 '자전거 탄 풍경'을 재결성하였으며 현재 3인조 포크그룹 '자전거 탄 풍경'(강인봉, 김형섭, 송봉주)과 이 그룹의 2인조 유닛 형태인 '나무자전거'(강인봉, 김형섭)에서 모두 보컬리스트 겸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오늘 소개할 일흔아홉 번째 숨은 명곡은 1994년 발매된 Kiky 1집 '판단중지'에 실린 강인봉 작사/작곡/편곡, Kiky가 노래한 '삶에 관하여'라는 노래이다.
이 노래를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1985년 벌거숭이가 부른 원곡을 선정하지 않은 데에 굉장히 큰 의구심을 가지게 될 것이라 생각되는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원곡과 Kiky 버전 사이에서의 끝없는 고민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라 말하고 싶다.
벌거숭이 vs Kiky
우선 원곡이 굉장히 명곡으로 잘 알려져 있는 노래이긴 하지만, 항상 벌거숭이의 버전을 들을 때마다 느꼈던 점은 녹음과 연주의 완성도가 곡의 가사와 멜로디가 가지는 아름다움에 비해 굉장히 아쉽다는 것이었다.
물론 다소 아마추어적이고 미완성적이어서 투박한 느낌이 드는 원곡의 여기저기들 또한 이 곡의 일부분이며, 이 곡이 가진 큰 매력이라 생각하기도 했지만, 발표된지 10년이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원곡과 비교해 거의 바뀌지 않은 편곡에 연주와 녹음만 새로 한 듯한 Kiky의 노래를 나중에 듣고 나서야, 작사/작곡자였던 그가 원했었던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라는 것을 나름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가슴속 한편에 아쉬움으로 응어리졌었던 작은 어려움이 해결된 느낌이랄까?
청하하게만 느껴지는 어쿠스틱 기타의 연주로 시작되는 전주는 베이스, 드럼, 그리고 강인봉의 덤덤하지만 묵직함이 느껴지는 보컬과 함께 어우러지게 되는데, 헤어짐을 견뎌야만 하는 한 남자의 고뇌를 철학적이지만 아름다운 가사로 풀어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곤 한다.
이 곡의 백미는 이후에 나오는 후렴 구절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은데, 이 곡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제목은 아쉬운 세월의 여파 속에 잊어버렸어도 이 후렴 구절의 세련된 가사와 멜로디, 그리고 멋드러진 화음들은 뇌리에 남아 '오월에~ 눈부신 햇살 속에~'를 입가에 한참 담고 살기도 했었던 것 같다.
40년이 지난 지금이지만, 세상은 시끄럽기만 하고.
여전히 나는 어제의 내 삶을 후회하고 살아가는 것만 같다.
그래, 후회를 두려워하지 말아야지.
그게 바로 삶 자체일 테니까.
작사 : 강인봉
작곡 : 강인봉
편곡 : 강인봉
노래 : Kiky
거리엘 나서 봐도 혼자서 생각해 봐도
이렇게 알 수 없는 건 내가 아직 어린 탓이겠지
시끄러운 세상일들 이젠 듣기도 싫어
이렇게 후회하는 건 내게 남은 미련 때문이겠지
오월의 눈부신 태양아래 반짝이는 맑은 샘물처럼
그렇게 그렇게 아름답던 그 모습 이제는 사라져 갔나
지금은 내게 아픔만 남아 난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는데
그냥 그렇게 그냥 이렇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인가
어지러운 세상일들 이젠 보기도 싫어
이런 마음은 그대 떠나간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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