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에서, 박정운 : 5집 - 1996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LlxikA5wuioeKnEXE1vbD93Gr_Basdrd
당신의 추억을 소환하는
동네와 관련된 노래가 있나요?
낡은 서랍 속 꼭꼭 숨겨졌었던 빛바랜 사진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예기치 못한 이런 류의 추억 소환은 그것이 좋은 것이든, 혹은 가슴을 후벼 파는 아픈 것이든, 무차별로 떠오르기 시작한 그 시절의 아련한 기억들 때문인지 우리들에게 다소 건강한 긴장감을 주기도 하는데, 이는 사진과 같은 특정 사물인 경우도 그러하겠지만, 특정 지역이나 장소와 같은 공간에서 주는 생생함이 보다 더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이러한 기억 소환과 관련된 공간의 소재는 우리가 자주 접하게 되는 음악에서도 단골 주제로 많이 쓰여 왔는데, 대부분은 그 내용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세부적이어서 원곡자의 실제 경험으로부터 나온 이야기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리 모두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 비슷했던 나의 기억들을 더블 클릭하기도 하고, 공유된 간접 경험을 통해 그가 느꼈던 그 감정의 회오리와 나를 이입하기도 한다.
'춘천 가는 기차', '혜화동', '목포의 눈물', '부산에 가면', '비 오는 압구정', '신사동 그 사람' 등 우리 모두에게는 당장이라도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들이 하나쯤 있을 테고, 각자의 기억과 함께 낡은 서랍 속 꼭꼭 숨겨졌었던 빛바랜 사진처럼 '툭' 하고 내 눈앞에 나타나 잊혀져 버렸던 나의 기억 속 세포 하나하나를 언제라도 간지럽힐 수 있을 것이다.
강렬한 울림이 있는 노래,
"목동에서"
오늘 소개할 여든다섯 번째 숨은 명곡은 1996년 발표한 박정운 5집에 실린 박용준 작사/작곡/편곡, 박정운이 노래한 '목동에서'라는 노래다.
이 노래를 부른 박정운은 9살 무렵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한국에서의 음악에 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 졸업 후 귀국하게 되고, 늦깎이 대학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1989년 그는 본 숨은 명곡 아홉 번째의 주인공이자 K-Pop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프로듀서 중 하나인 송홍섭과 만나게 되고, 숨은 명곡 여덟 번째 주인공이자 당시 서서히 언더그라운드에서부터 인정을 받고 있던 오석준, 열 번째 주인공 장필순, 서른네 번째 주인공 이은미, 작사가 김성호와 함께 이상은, 김세준, 허준호 주연, 이규형 감독이 연출한 영화 '굿모닝 대통령'의 OST 앨범에 참여하게 되며 K-Pop에 데뷔하게 된다.
이 영화는 여자 대통령의 꿈을 가진 여주인공 오혜란이 등록금을 가지고 떠난 유럽 여행길에서 만난 김뿌리, 장유민과 해적 소탕과 같은 예기치 못한 에피소드를 다룬 이야기로 당시 '해외여행 자유화'라는 시대적 변화에 해외 올로케이션으로 촬영한 선구자적 영화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OST에 실린 오석준, 장필순, 박정운이 함께 부른 '내일이 찾아오면'이라는 노래가 대히트를 하게 되면서 알려지게 되었고, 이후에는 '오장박'이라는 별칭으로 이들을 부르기도 하였다.
지금 봐도 그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최고의 프로듀서, 뮤지션들이 이 앨범에 총출동하였는데, 편곡과 베이스 기타에 송홍섭, 어떤날의 멤버였던 최고의 기타리스트 이병우, 당시 떠오르던 신예 기타리스트 손무현, 당대 최고의 키보디스트 중 하나였던 황수권, 그룹 11월의 멤버이자 Hamond Organ의 달인 김효국, Top Saxophonist 김원용, 그리고 레전드 드러머 이자 퍼커션을 담당한 김희연과 배수연까지 그 어느 누구 하나를 쉽게 지나칠 수 없다.
이런 인기 때문이었는지, OST 앨범을 거의 그대로 재수록한 오석준/장필순/박정운의 별도 앨범이 이듬해인 1990년 발매되기도 하였는데, 이 2장의 앨범에서 박정운은 자신이 직접 작사/작곡한 'It's Alright', '내 가슴에 아직도 비가 오는데'를 수록하여 싱어송라이터 이자 프로듀서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음악성은 물론이고,
훤칠한 외모와 무대매너까지 겸비했던 레전드!
박정운은 굿모닝 대통령 앨범 발매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대부분의 노래를 직접 작사/작곡한 솔로앨범인 'WHO, ME?'를 1989년 발매하지만 워낙 '오장박'의 '내일이 찾아오면'이 큰 인기를 얻게 되면서 아쉽게도 그의 야심 찼던 솔로앨범은 그대로 묻혀버리게 된다.
그는 이듬해인 1991년 자신이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이자 박정운을 기억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노래, '오늘 같은 밤이면'이 수록된 2집을 발매하게 되는데, 이 노래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서태지, 신승훈의 노래들 때문에 모든 1위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SBS 인기가요에서 1위를 거머쥐었으며, 1년 이상 모든 가요프로그램의 30위권에 랭크되어 꾸준한 인기를 얻게 된다.
1993년 발매한 3집에서는 그가 작사/작곡한 '먼 훗날에'가 MBC와 SBS 가요 프로그램의 1위를 차지하며 그 한을 풀었고, 1994년 발매한 4집의 '그대만을 위한 사랑', 1995년 5집의 '그대 내 품에' 등이 인기를 얻었다. 이후 1996년 발매한 6집이 대중으로부터 큰 반향을 얻지 못하게 되고, 그는 오랜 공백기를 거쳐 2002년 7집 Thank You를 발매하기도 하지만, 이는 그의 마지막 정규앨범이 되고 만다.
그는 2017년 결국 2심에서 무죄로 판결된 '가상화폐 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되면서 큰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다시 무대에 서기 위해 자신을 불태우던 중, 당뇨와 간경변이 발견되어 2020년부터는 투병을 시작한다.
2022년 그는 안타깝게도
우리 곁을 떠나게 된다.
그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무대로의 복귀를 이루지는 못하고 우리의 곁을 떠났지만, 2023년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인 유작 '사랑'이 디지털 음원으로 발매되어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위안을 주기도 했다.
박정운 5집은
좀 특별하다.
일부 외부의 작사나 곡을 받기도 했지만, 이전까지의 그의 앨범에 실린 대부분의 노래는 그가 직접 작사/작곡한 그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성향은 오늘 소개할 5집에 들어와 굉장히 많이 달라지게 되는데, 총 10개의 수록곡 중에 오직 1개의 곡만 그가 직접 작사/작곡에 참여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곡들은 Top 프로듀서, 신예 작곡가를 가리지 않고 음악적 협업을 같이 하였다는 것이다.
그 이름만으로도 앨범의 완성도가 의심되지 않는, 유정연, 윤종신, 김광진, 박용준, 정원영, 나원주 등 이미 숨은 명곡 시리즈에 소개된 레전드 프로듀서들이 참여한 이 앨범은 박정운이 가진 K-Pop 내의 무게감과 그의 영향력을 단번에 알게 해주는 명확한 증거이기도 하고, 각 프로듀서들이 가진 다양한 개성을 박정운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오늘 소개할 '목동에서'는 그중에서도 더클래식의 멤버이자, 본 숨은 명곡 시리즈의 쉰세 번째의 주인공인 박용준이 작사/작곡/편곡까지 모두 맡은 곡으로, 박용준의 실제 이야기를 담은 노래로 알려져 있다.
드럼, 일렉기타, 피아노와 키보드, 그리고 박용준 표 편곡에서 항상 느껴지는 현란한 베이스까지, 은은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신비로운 감정을 전달해 주는 전주가 시작되고, 이전 곡들과는 다른 한껏 절제된 박정운의 음색이 다가오기 시작한다.
날 반대하던 그녀의 어머니,
처음으로 상냥하게 나와 많은 얘길 나눴네
이 노래의 길지 않은 가사는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낸 원곡자의 실제 경험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 간결하지만 묵직한 슬픔과 연민이 노랫말 하나하나에 가득 묻어 있는데, 남자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그 아픈 기억들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가슴 한켠에 묵직하게 전해오는 쓰라린 먹먹함에 잠시 넋을 잃게 된다.
특히 박정운의 절규와도 같은 흐느낌이 최고조에 오르는 구절에선 나도 모르는 심장의 쿵쾅거림에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고 만다.
목동은 나에겐 옛 연인과의 추억이 가득한 곳이다.
노랫말의 가사처럼 다시는 볼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나보내지는 않았지만, 가끔 이곳을 지나다 보면 치열하게 사랑했던, 아름답고도 찬란했던 그때의 기억들이 이 노래와 함께 생각나 웃음 짓게 한다.
예전과 많이 달라졌지
그대가 살던 조용한 동네
작사 : 박용준
작곡 : 박용준
편곡 : 박용준
노래 : 박정운
예전과 많이 달라졌지 그대가 살던 조용한 동네 이제는
우연히 5년 만에 이곳을 지나며 그 집을 보고 그댈 생각하네
조심스럽게 다시 전화를 걸어 그대를 찾지만 세상에 없다네
날 반대하던 그녀의 어머니 처음으로 상냥하게 나와 많은 얘길 나눴네
눈물도 흘리지 않았지 슬프긴 해도 뭐가 옳은지 모르겠어
찾아가야 하는지 그냥 있을 건지 그 집을 보고 그대 생각하네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