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02] 캄보디아 솔로여행 : DAY 2, 하나
여행기는 2024년 3월 말에 떠났던 것으로, 현재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행지는 캄보디아의 프놈펜과 씨엠립을 중심으로 도심과 유적지 등의 지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역 내에서 안내하는 법규 및 지침을 최대한 준수하며 여행하였고 모든 내용은 평범한 대한민국의 남성이 느끼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의견을 담고 있습니다.
여행지에서의 아침은 여유롭기 그지없다.
여행의 컨셉이나 목적 그리고 개인적 취향의 차이 등에 따라 사람마다 그리고 그때그때 마다 달라질 수 있는 부질없는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어느새부터인가 나는 여행지에서 새벽같이 일찍 일어나 움직이는 '아침 없는' 스케줄을 기피해 왔던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여행은
저마다의 '쉼'이다.
그리고 마음껏 게으름을 피워도 모든 게 용서되는 여행지의 느릿느릿한 아침은 나에겐 또 다른 '쉼'이자 '행복'이고, 이는 솔로 여행만이 가지는 특권이기도 하다.
하마터면 늦을 뻔한 아침 조식 뷔페를 간당간당히 마친 나는 잠시 방 안으로 돌아와 제법 따사롭게 쏟아지는 햇살과 함께 창문 밖으로 보이는 프놈펜의 도시 전경을 멍하니 한 시간 정도 바라보다 천천히 옷을 갈아입고 오늘 둘러볼 캄보디아 국립 박물관으로 출발했다.
지난 편에서도 이야기한 내용이지만, 프놈펜은 대부분 차로 10분 내외의 가까운 거리에 많은 관광지나 유흥가로 이동 가능하기에 최적의 효율을 위한 세밀한 동선 계획은 크게 의미가 없다. 그러니 이동에 대한 스트레스는 잠시 접어두고 그냥 내 맘대로 가고 싶은 곳에 무작정 갈 수 있는 솔로 여행의 묘미를 충분히 즐겨보자.
하지만 짧은 일정에 극도의 효율을 높여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면, 국립박물관은 프놈펜 왕궁과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한 가까운 거리이니, 이왕이면 이를 고려해 동선이나 여행계획을 짜는 것도 좋을 듯 하니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https://maps.app.goo.gl/ExoXwEEUfxXRHhbS8
호텔에서 Grab 택시를 이용하여 약 10여 분 만에 도착한 캄보디아 국립박물관은 고풍스러운 짙은 갈색의 캄보디아 전통 양식의 건물로 사각형 형태의 'ㅁ'자로 되어있었다.
입장료 $10를 내고 들어선 이곳은 국립 박물관이라는 타이틀에서 상상되는 크기보다는 조금 아담한 사이즈였긴 했지만, 크메르 왕국의 힌두교와 불교의 다양한 나무, 금속, 돌, 도자기 등의 조각상과 유물들로 아기자기 채워져 1시간 남짓의 시간으로 '짧고 굵은' 관람을 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대부분 왼쪽으로부터 시작하게 되는 동선을 따라 강성했던 캄보디아의 그 옛날 크메르 왕조 시절 유적들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덧 중앙 정원으로 나가는 여러 개의 문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는 중정을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답기만 하다.
잠시 관람을 멈추고 중정으로 나가 예쁜 4개의 연못과 함께 단아하게 꾸며진 정원을 둘러보며 한적함과 적막함을 잠시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캄보디아는 내겐 무섭고 위험한 나라였다. 그건 어린 시절에 봐야만 했던 '킬링 필드'라는 영화 때문이기도 한데, 당시 군부 독재시절이었던 한국에선 영국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를 '반공'을 위한 영화로 판단하여 학생들에게 단체 관람을 시켰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캄보디아나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영화이기도 한 이 '킬링 필드'는 100만 명에 육박하는 국내 흥행을 거두었고, 작품성도 인정받아 57회 아카데미상에서 남우조연상, 촬영상, 편집상을 수상했고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색상에 노미네이트 되는 쾌거를 이룬다.
캄보디아는 프랑스의 식민지로 독립한 이후에도 오랜 기간 동안 내전의 아픔을 겪게 되는데, 킬링필드는 가장 악랄하고도 비인간적인 집단 학살 행위를 했던 크메르루주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베트남 전쟁 이후 1976년 1월에 캄보디아 민주 헌법을 공포하여 국명을 민주 캄푸차로 바꾼 공산주의 세력으로 그들이 정권을 잡았던 4년 동안 구정권 관계자, 부유층, 지식인, 유학생, 크메르루주 내의 친베트남파 등을 학살하여 킬링필드를 만들었고, 반란의 혐의가 있는 사람은 정치범 수용소 S21(현 뚜어슬랭 학살 박물관) 등에 수용하여 잔혹하게 학살하였다.
이들 세력은 1990년대 와해되기 시작하여 완전히 사라진 것이 1999년 무렵으로 봐야 하니, 고작 2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캄보디아 내에 남아 각종 악행을 저질렀던 시대의 악마들이었다.
가슴 아픈 역사이긴 하지만, 캄보디아라는 나라를 알게 해 준 이 역사적 사건을 나는 외면할 수 없었고, 프놈펜 시내에 있는 뚜얼슬렝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https://maps.app.goo.gl/8qEtjsvxyPG4AoM79
Grab Taxi를 기준으로 약 10여분 정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뚜얼슬렝 박물관은 예전엔 툴 스바이 크레이 고등학교(Toul Svay Prey High School)를 개조한 크메르루주의 정치범수용소로 흔히 'S-21 수용소'라고도 한다.
입장료는 성인 $5, 10~18세 $3이고, 한국어가 제공되는 오디오 가이드 신청 시에는 $5가 추가된다. 오디오 가이드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쓰임새가 좀 지겨워지기도 하지만, 번호와 함께 관람을 순차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장점도 있고, 내용이나 설명 또한 굉장히 자세하고 유익한 편이니 함께하는 것을 추천한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면 예전엔 운동장으로 쓰였을 법한 큰 정원과 이를 둘러싼 수용소(박물관) 건물이 나타나는데, 3~4월 캄보디아의 무더운 햇볕도 잠시 피하고 오디오 가이드도 체크할 겸 주변 벤치에 잠시 앉아 이젠 너무 평화롭기만 한 이곳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감질나듯 불던 바람도 이내 살랑살랑 머릿속 땀방울을 제법 식혀주는 게 무척 사랑스러워지기만 한다.
잠깐동안의 휴식이 위안이 되었는지 지쳐있던 무릎을 툭툭 털며 일어나, 박물관은 입구로부터 이어지는 건물을 시작으로 'ㄷ'자 형태의 구조로 되어있는 박물관을 천천히 관람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잔혹성,
그 기분 나쁜 소름
박물관은 예전 교실로 쓰였을 법한 각각의 방, 그러니까 때론 감옥이 되기도 하고 때론 고문실로 쓰였으리라 추정되는 공간을 하나둘씩 지나치며 차마 글이나 말로써는 손과 입에 담기도 싫은 크메르루주의 잔혹의 역사가 사진, 혹은 물품이나 설명으로 전시되어 있었는데, 보는 내내 눈살의 찌푸림을 감출 수 없었다.
그들은 어린이, 노인, 여자, 임산부 등 그 누구도 가리지 않고 개돼지보다도 못한 짐승 대하듯, 아니 그보다도 더 한 '악마'와도 같았다. 어떻게 저런 '창의적(?)'인 발상으로 사람을 괴롭히고 힘들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난 관람 내내 서서히 가슴 안으로 채워지는 두근거림을 감출 수 없었고, 그 기분 나쁜 소름은 마지막 희생자들의 사진과 유골이 전시되어 있는 방에서 터지고 말았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지에서는 언제나 부정적 감정의 변화 없이 행복하고 편안하기를 바라게 된다. 개개인의 성향이나 취향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이겠지만, 굳이 이런 부정적 감정의 빈틈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방문하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캄보디아의 아픈 역사를 이해하는 건, 그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는 일일 것이고, 이 또한 여행의 큰 이유이자 목적이 될 수 있으니, 그것이 잠시 내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게 만드는 먹먹함을 준다 할지라도 꼭 방문하여 언제나 항상 경계하고 또 지켜내야만 하는 인간의 도덕적 가치와 기준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관람을 마친 후 정원으로 나와 바라본 박물관은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아~ 이거 좀 우울한데!
파도와 같이 요동치던 감정의 흐름은 자연스러운 시간의 치유에 조금씩 잦아들긴 했지만, 그래도 희생자들의 절규와 고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아 마음 한 켠이 무겁기만 했다.
가끔은 이런 건전한 경각삼으로부터 오는 무거운 마음은 어쩌면 일상생활에선 내가 알기도 전에 '휘리릭' 지나가거나 애써 외면하려 하기에 온전히 느끼지 못해 왔을 수 있는데, 감정 또한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풍부한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권이라 생각했다.
그래! 이것도 여행의 묘미 중 하나이지 머!
나름대로의 정신승리를 통해 흐트러졌던 마음을 다 잡고 있는 와중, 그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오늘 저녁 일정이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참 인간의 간사스러움에 부끄러움이 넘실대긴 하지만, 언제 그랬느냐는 듯, 모든 근심과 걱정은 사라지고 오늘 맛볼 캄보디아 음식에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기분전환에 가장 좋은 단기 치료약 중 하나는 맛있는 음식이다. 이건 직접 반세기 동안 경험한 살아있는 Fact이니 털끝만큼의 의심도 하지 말지어다~!
오늘, 그러니까 캄보디아 여행에서 두 번째로 방문하는 파인 다이닝은 프놈펜 시내 중 가장 번화가이자 상권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톤레삽강 근처에 위치한 Sombok이라는 곳이다.
https://maps.app.goo.gl/zgjGQ4mA1bTo187K6
이번 캄보디아의 여행 목적은 너무나도 일반적인 '쉼', '앙코르 와트'에 대한 나의 버킷 리스트 충족, 그리고 가성비 철철 넘치는 파인 다이닝 '미식 여행'이었는데, 이런 미식 여행을 결정한 결정적 이유 중 하나는 캄보디아 전통음식인 '크메르 요리'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크메르 요리가 뭐지?
캄보디아를 대표하는 전통 요리인 크메르 요리는 강성했던 크메르인의 음식으로, 메콩강과 톤레사프 호수 등이 있는 지리적 여건으로 민물고기를 식재료로 활용하는 다양한 요리가 발달하였다고 한다. 특히 허브, 잎, 절임 채소, 소스, 식용 꽃, 기타 장식 및 조미료를 충분히 사용하고, 한 가지 음식 이상을 함께 먹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그리고 캄보디아의 크메르 요리를 검색하다 보면, 'Kimsan Twins'라 불리는 2명의 여성 셰프가 항상 등장하는데, 이들이 수석 셰프로 있는 곳이 현재 씨엠립에 있는 'Embassy' 레스토랑이고, 근래 이들이 새롭게 오픈한 곳이 바로 오늘 방문한 'Sombok'이다.
Kimsan이라는 성이 같기에 쌍둥이라고 불리긴 하지만, 실제로는 10여 년이 넘는 오랜 친구인 Kimsan Pol과 Kimsan Sok은 각각 다른 요리 학교에서 요리를 시작했고, 두바이, 프랑스 등 해외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쌓은 뒤, 2010년대 초 캄보디아의 한 리조트에서 요리사로 일하며 친구가 되었다.
2014년 이 두 명의 신진 셰프들은 씨엠립의 Embassy 레스토랑의 수석셰프가 되면서 잊힌 조리법을 찾기 위해 국립 기록 보관소를 뒤져가며 연구에 매진하고 또한 전직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의 요리 직원으로부터 훈련을 받는 등 크메르 음식의 복원과 현대화를 위해 열정을 바치고 있다.
Kimsan Twins는
크메르 요리 현대화의 선구자!
캄보디아를 대표하는 두 명의 여성 셰프가 선사하는 크메르 음식이 너무 기다려져 나도 모르는 축지법을 사용했는지, 예약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나는 유럽의 어느 이름 없는 골목에서 마주하듯 좁고 길쭉한 건물들이 차곡차곡 겹겹이 붙어 있는 거리를 잠시 걷다가 길 건너 톤레삽강 강둑에 잠시 앉아 시원하고도 탁 트인 전경을 바라보았고, 어느새 날은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크메르 전통을 상징하는 인테리어를 했다는 레스토랑 내부는 입구에서부터 맞은편 쪽 멀리 끝에 위치한 오픈 키친까지 직사각형 구조에 밝은 톤의 깔끔하면서도 모던했고, 홀을 담당하고 있는 직원들 또한 너무나도 친절했다.
난 여러 가지 메뉴 중, 가장 가격대가 높았던 Gastronomic Menu와 스트로베리, 바질, 라임 주스, 소다 등이 들어간 Sombok의 시그니처 무알콜 Drink인 Kimsan Special을 주문했다.
다만, 주문하면서 본 메뉴 소개자료에는 Kimsan Pol 셰프만이 소개되어 있던 점이 좀 의아했는데, 나중에 찾아본 웹사이트에서 조차 Kimsan Sok의 흔적은 찾을 수 없어 아마 현재 두 셰프 간 혹은 레스토랑과 Sok과의 여러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Kimsan Special과 함께 나온 Amuse bouche로 입맛을 돋우기 충분했던 메뉴 코스는 Starter인 그린망고를 곁들인 오리요리로 시작되었는데, 그린망고가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과 오리 구이의 조화가 마치 한국의 발효음식인 된장과도 같은 풍미와 함께 곁들여져 굉장히 흥미로웠다. 알고 보니 이 풍미는 액젓과도 같은 발효생선과 함께 조리된 것이라 하는데 우리에겐 크게 낯설지 않았지만, 캄보디아 요리에 자주 사용되는 허브와 함께 어우러졌기에 이국적인 느낌 또한 충만했던 재미있는 요리였다.
두 번째로 제공된 민물고기 수프는 민물 생선과 함께 캄보디아 생강인 Galangal, 마늘, 라임주스 등과 함께 조리된 요리였는데, 약간의 흙맛이 살짝 느껴지면서도 라임주스가 이를 어느 정도 중화시켜 주기에 이 또한 크게 이질적이지는 않았다. 다만 향신료의 향이 꽤 느껴져서 향신료가 부담스러운 분에게 권하고 싶지는 않다.
잠시 후에 제공된 망고 셔벗으로 입가심을 한 뒤, 오늘의 메인 코스인 두 가지 요리가 서빙되었는데, 야채 카레, 계피, 팔각, 코코넛 밀크로 속을 채운 구운 닭고기에 고구마 으깬 감자와 레드 카레 소스를 곁들인 치킨 카레와 볶은 야채와 Lok-Lak 소스가 곁들여진 쇠고기 안심이었다.
치킨 카레의 경우는 중국 음식에서 굉장히 익숙한 팔각향이 있는 잘 조리된 한입크기의 요리로 약간은 꾸덕한 소스와 함께 먹으니 조화가 나쁘지 않았다.
캄보디아의 음식을 검색하다 보면 굉장히 자주 등장하는 요리가 바로 Lok-Lak이라는 고기 요리인데, 궁금했던 Lok-Lak 소스가 들어간 안심 스테이크는 어쩌면 캄보디아와 서양 음식의 현대화된 콜라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꽤나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Lok Lak 소스는 뭐랄까, 간장과 달콤한 설탕 Base에 이국적인 향신료가 들어간 실패 없는 우리의 불고기 소스와도 비슷한 맛이라고나 할까? 스테이크 요리는 캄보디아 쌀밥과 함께 제공되는데, 당연히 생각하는 그것!, Lok-Lak 소스에 비벼 먹어도 좋다.
마지막으로 코코넛 밀크에 달콤한 Green bean이 곁들여진 디저트는 상상 그대로의 맛이긴 했지만 지역적인 특색을 담은 뻔하지 않은 구성이어서 만족스러웠다.
Sombok은 흥미롭고 재미있는 생애 첫 크메르 요리를 맛보게 해 준 멋진 식당이다. 다만 옆테이블에서 끝도 없이 큰 소리로 떠드는 커플 때문에 신경 쓰인 나머지 온전히 음식을 즐기지 못했고, 이를 직원들이 방관한 것이 너무나도 아쉽기만 했다.
그래도 멋진 첫 크메르 요리를 선사해 준
Sombok에게 감사를~!
(다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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