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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nue May 26. 2024

숨은 K-Pop 명곡 100선, 아흔둘

잊혀지는 것, 동물원 : 1집 - 1988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LlxikA5wuioeKnEXE1vbD93Gr_Basdrd


 

K-Pop 최초의 부캐
직장인 밴드


그룹 동물원은 그룹의 기둥과 같은 멤버였던 김창기와 대학, 동아리, 동네 친구들이 1987년 경 '무진기행'이라는 카페에서 함께 하면서 취미로 함께 만든 노래들이 우연한 기회에 가수 임지훈의 소개로 산울림 김창완에게 전달되고, 당시 독립 음반사를 준비하던 그의 첫 번째 기획 앨범으로 1988년 1집이 발매되어 데뷔하게 된다.


데뷔 당시 김창완은 이들이 만든 곡들을 들어보더니, '이대생에게만 팔아도 되겠다'라면서 그룹 이름마저도 ‘이대생을 위한 발라드’라는 김창완 다운(?) 독특한 이름을 제안했지만 결국 여러 명의 그룹멤버들의 특색이 담겨 있는 '동물원'이라는 이름으로 최종 결정되었다는 이야기는 나름 유명한 에피소드다.


특히 이들의 대부분은 각자의 생업이 있는 상태에서 앨범발표를 위주로 한 그룹활동을 이어갔기 때문에 어쩌면 K-pop에서는 최초의 성공한 부캐 직장인 밴드로 알려져 있고, 그래서 이들에게는 '아마추어리즘'이라는 단어가 오랫동안 따라다니기도 했다.


동물원 1집에 참여했던 원년 멤버의 모습


그도 그럴 것이 귀의 날을 세우고 들어보면 동물원 초기 앨범, 특히 1집에 수록된 노래의 편곡이나 보컬, 그리고 레코딩 퀄리티까지 열악하고 어설픈 부분이 분명 곳곳에 남아 있긴 하지만 이 마저도 감성과 유니크함으로 들리는 이유는 이들의 음악적 뿌리는 만큼은 굉장히 단단하고 견고했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추억 속 골방에서 함께 불렀던
우리들 노래와 같은 앨범


동물원 멤버 중에서는 보다 음악적 욕심이나 갈망이 컸기에 본업으로 활동하고 싶었던 멤버들도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기타를 맡고 있었던 이성우와 메인보컬이었던 김광석이다. 이들은 각각 1집과 2집의 발매 후 팀을 떠나 각자의 음악활동을 시작한다. 기타리스트 이성우는 지금은 다시 본업으로 돌아와 음악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원 맨밴드로 한국 프로그래시브 음악의 큰 족적을 남긴 1집 '미아리'를 발매하여 큰 반향을 얻었으며, 지금은 볼 수 없는 그리운 김광석은 국내 포크계의 큰 별로 우뚝 서게 된다.


그냥 '우리만의 추억을 만들어 보자'라며 시작했던 1집은 서서히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더니, 타이틀 곡인 '거리에서'에서가 그야말로 대중적으로 엄청난 흥행을 하기 시작했고, 이와 더불어 '말하지 못한 내 사랑', '변해가네' 등도 함께 큰 인기를 끌었다.


예상치 못한 1집의 큰 흥행과 더불어 급히 이들은 2집을 준비하게 되는데, 같은 해 가을 발매된 2집은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혜화동' 등이 크게 히트하며 성공을 이어나가게 된다. 이듬해 발매된 3집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를 히트시킨 그들은 4~5집에서는 잠시 주춤하더니 6집 '널 사랑하겠어'로 가요프로그램의 상위에 랭크되며 그 저력을 과시했다.


사실 이때의 성공을 전후로 동물원은 멤버들의 음악 전업에 대한 큰 그림을 세웠다고 한다. 특히 그 그림 안에는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함께 거두고 있었던 김광석과의 콜라보도 있었는데, '김현식과 신촌블루스'와 같은 형태로 함께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갑작스럽고도 충격적인 레전드 김광석의 의문사로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이후, 멤버들의 탈퇴와 합류를 거듭한 동물원은 현재 6집부터 동물원의 멤버로 참여한 배영길을 포함하여 원년멤버인 유준열, 박기영 등 3명이 동물원을 지키고 있으며 아쉽게도 2003년에 발매된 9집이 그들의 마지막 정규앨범이다. 다만 2017년 발매된 싱글 '13년 만에 다시 가 본 동물원'이 그나마 그들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오랜 팬들에게는 큰 위안이 되고 있다.


1988년 1집에서부터 2017년 싱글까지 동물원 앨범 표지들


오늘 소개할 아흔두 번째 숨은 명곡은 동물원의 팬이 아니더라도 멜로디를 함께 흥얼거릴 수 있을 법한 그런 노래, 1988년 발매된 동물원 1집에 수록된 김창기 작사/작곡/편곡, 메인보컬을 김창기가 담당한 '잊혀지는 것'이라는 노래다. 


분명 이 노래도 선정한 다른 곡들과 같이 '숨은' 명곡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1집은 '거리에서'의 대중적 빅히트가 다른 노래의 인지도를 이끌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기에, 상대적으로 이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적을 듯하다. 


모든 면에서 약간은 어설프고 모자랐지만, 그 감성과 풋풋함들이 모든 걸 다 상쇄해 주었기에 더 그리운 앨범, 이 시기의 동물원의 노래를 듣다 보면 부족하기만 했던 예전의 나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라 미묘한 감정의 바다로 휩쓸려 들어가 그 시절의 추억들과 마주하게 된다.


1988년 발매된 동물원 1집의 앨범 표지와 속지


마치 드럼의 심벌을 실수로 친 듯 '툭툭'하며 시작되는 노래는 3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참 당황스럽기는 한데, 중저음에 기교 없이 담담히 부르는 김창기의 보컬'과 이내 너무나도 안정적이고 서정적인 멜로디를 쉽4게 따라가며 언제 그랬냐는 듯, 어느새 함께 서서히 동화되어 가는 나를 보게 된다.  


사실 이 노래의 백미는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운 노랫말이라고 생각되는데, 요즘의 K-Pop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 긴 가사에 꼭꼭 담긴 '사랑과 이별' 그리고 '잊혀짐'에 대한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의 세상에서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삶의 이치'를 다시 깨닫게 된다.


숨 가쁜 생활 속에 태엽이 감긴 장난감처럼
무감한 발걸음에 만족하며 살아가던 우리


주옥같은 가사 한 줄 한 줄에 가슴이 패이다 보면 어느새, 꽤 긴 중간 기타 간주에 다다르게 되는데 지금은 용납할 수 없는 정도의 긴 길이이지만, 1절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점점 멀어져 간 그때의 기억을 다시 되내이기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기에 지루할 틈이 없다.


2절은 두 사람의 헤어짐과 잊혀짐을 같은 어조로 담담히 노래하고 있는데, 어쩌면 우리의 반복된 일상을 이리도 시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지 엷은 미소와 함께 그때의 추억으로 돌아가 함께 울먹이기도 또 가슴 뭉클하기도 한다.


노래를 그렇게 잘 부르는 것도, 화음을 그렇게 잘 넣는 것도, 현란한 연주나 편곡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 노래는 그 시절 오랜 친구들과 골방에서 함께 노래하듯, 우리의 목소리로 우리를 감동하게 만든다.


한 때는 치유되지 못할 것만 같았던 가슴 아픈 사랑, 죽을 것만 같았던 그때의 기억들을 이젠 모두 잊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기억의 파편 하나가 내 맘 속 굳게 닫혔던 문틈에 작은 균열을 만들고 하나둘씩 빼꼼히 흘러나오는 아련함이 나를 물들이는 걸 보면, 어쩌면 우린 잊은 게 아니라 그저 오랜 시간을 긴 침묵으로 살아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그래 그렇게 애써 잊으려 너무 발버둥 치며 살지 말자.


사랑의 아픔도 시간 속에 잊혀져
긴 침묵으로 잠들어 가지




잊혀지는 것

동물원, 1집 - 1988


작사 : 김창기

작곡 : 김창기

편곡 : 김창기

노래 : 동물원


사랑이라 말하며 모든 것을 이해하는 듯

뜻 모를 아름다운 이야기로 속삭이던 우리


황금빛 물결 속에 부드러운 미풍을 타고서

손에 잡힐 것만 같던 내일을 향해 항해했었지


눈부신 햇살 아래 이름 모를 풀잎들처럼

서로의 투명하던 눈길 속에 만족하던 우리


시간은 흘러가고 꿈을 소리 없이 깨어져

서로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멀어져 갔지


우 그리움으로 잊혀지지 않던 모습

우 이제는 기억 속에 사라져 가고


사랑의 아픔도 시간 속에 잊혀져

긴 침묵으로 잠들어 가지


사랑이라 말하며 더욱 깊은 상처를 남기고

길 잃은 아이처럼 울먹이며 돌아서던 우리


차가운 눈길 속에 홀로 서는 것을 배우며

마지막 안녕 이란 말도 없이 떠나갔었지


숨 가쁜 생활 속에 태엽이 감긴 장난감처럼

무감한 발걸음에 만족하며 살아가던 우리


시간은 흘러가고 빛바랜 사진만 남아

이제는 소식마저 알 수 없는 타인이 됐지


우 그리움으로 잊혀지지 않던 모습

우 이제는 기억 속에 사라져 가고


사랑의 아픔도 시간 속에 잊혀져

긴 침묵으로 잠들어 가지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

https://youtu.be/FNy07OED4x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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