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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K-Pop 명곡 II, 백서른일곱

이 못난 나를, Pa:rk : 1집 - 1999

by Bynue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LlxikA5wuioeKnEXE1vbD93Gr_Basdrd



미안해, 그때는 내가
참 어렸어.


전쟁과도 같았던 지긋지긋한 연애를 끝 마치고, 수년만에 다시 만난 그녀와 마주 앉았다.


그녀의 눈을 다시 바라본 순간, 함께 했었던 행복한 기억들부터 서로를 헐뜯고 미워했던 순간순간들 모두가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흐르던 침묵이 답답하고 길게만 느껴질 무렵, 난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울음을 터트렸다.


아마 나에게 쌓여있던 분노, 그리고 알 수 없는 그리움과 같은 미묘한 감정이 오랫동안 참아왔던 그녀의 눈물샘을 자극했는지 모른다.


지금에야 다시 돌이켜 보면, 그녀가 내게 보인 호의와 관심, 그리고 사랑이 왜 나는 구속이라 생각했었는지, 그리고 잘난 것 하나 없던 내가 그녀에게 왜 그리 모질게 굴었는지,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후회가 밀려오긴 했지만 도대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문득 헤어지던 날, 매몰차게 뒤돌아 서 걸어갈 때 조그맣게 들리던, 그녀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앵앵거렸다.


니가
그렇게 잘났니...?


이제야 고백하는 것인지만, 그때는 애써 못 들은 척한 것 같다. 그저 내가 누군가에게 참 나쁜 사람이었다는 걸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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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백서른일곱번째 숨은 명곡은 1999년에 발매한 Pa:rk 1집에 수록된 박상균 작사, 김현철 작곡/편곡의 '이 못난 나를'이라는 노래로 이별 뒤 조금씩 커져가는 사랑의 감정을 깨달아 버린 한 남자의 후회를 쏟아낸 곡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Pa:rk라는 이름을 알지 못하겠지만, 근래 'LA 박피디'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던 프로듀서 '박상균'이 20여 년 전 만들었던 그룹이라 한다면 그나마 열에 한두 명 정도는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을 것 같고, 눈치챘겠지만 Pa:rk는 그의 성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프로젝트 그룹이다.


박상균은 1990년 재수생 시절 만난 동갑내기 유희열이 1994년 만든 TOY 1집의 객원가수로 참여해 '내가 너의 곁에'라는 노래를 불러 K-Pop에 데뷔했다. 하지만 대중의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그는 2년 뒤인 자신이 작사/작곡한 노래 '그쵸'를 들고 제17회 강변가요제 출전하여 금상을 수상하게 되는데, 참고로 제17회 강변가요제는 개그맨 이수근이 '동대문 남대문'이라는 노래로 본선에 오른 대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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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박상균의 데뷔 앨범 토이 1집(위), 1996년 금상을 수상한 제 17회 강변가요제 기념 앨범(아래) 표지


1년 후 그는 오랜 친구이자 음악적 동반자였던 친구 서태형과 자신의 앨범 작업을 시작하였고, 그의 꿈의 기획사였던 동아기획에서 손진태, 대학 선배였던 조현석 그리고 고등학교 선배이자 멘토였던 김현철 등의 레전드 프로듀서, 아티스트와 함께 1집을 발매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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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동아기획에서 발매한 박상균 1집 앨범 표지


이 앨범은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 대중에게 알려지지 못했고, 자신의 보컬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박상균은 재야의 고수였던 보컬리스트 최원석과 연세대 그룹 소나기의 멤버였던 이윤석 등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Pa:rk]를 결성하고 그의 솔로 앨범에 실렸던 모든 노래와 강변가요제 수상곡인 '그쵸' 등을 리메이크한 앨범을 1999년 발매하게 된다.


하지만 두 번째 그의 앨범도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고, 그는 큰 좌절을 겪게 된다.


이후 박상균은 미국으로 건너가 언론계에서 활동하다가, 음악의 꿈을 잊지 못하고 'LA 박피디'라는 예명으로 가스펠 앨범, 그리고 자살방지, 나눔을 위한 캠페인 등 긍정적인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다양한 콘서트와 'Unfinished Job' 앨범 시리즈들을 장혜진, 하동균, 김형중, 신연아, 김현철 등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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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Part 1을 시작으로 2023년 Part 6까지 발매된 LA 박피디의 'Unfinished Job' 앨범 표지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렇게 'Unfinished Job'은 '아직 끝나지 않은 불씨(spa:rk)'를 피워내, 현재 진행형의 나눔 이야기들로 채워져 하루하루 감동실화를 이어가고 있었던 그는 2023년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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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박상균의 프로젝트 그룹 [Pa:rk] 1집의 앨범 표지


오늘 소개할 백서른일곱번째 숨은 명곡은 1999년 [Pa:rk] 1집에 실린 박상균 작사, 김현철 작곡/편곡의 '이 못난 나를'이라는 노래이다.


이 노래를 듣다 보면 곡이 가지는 가사나 분위기가 굉장히 익숙한 부분들이 있는데, 그건 이미 숨은 명곡 열세번째에서 이미 소개한 김현철의 '이게 바로 나예요'와 비슷한 느낌이 있기 때문일 것 같다. 아마 작사가이자 오늘 노래의 주인공인 박상균이 무척이나 존경하고 또 좋아했던 선배, 김현철의 이 노래를 모티브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사랑했어요.
잘난 그대를.


특히 노래의 마지막 소절은 '이게 바로 나예요'의 가사 중, '잘난 그대 사랑하는 이게 바로 나예요'와 어딘가 모르게 참 많이 닮아 있기도 하다.


이 노래는 2004년 발매된 MBC 드라마 ‘사랑을 할 거야(주연 장나라, 연정훈)’ OST에 다시 리메이크되어 발매되기도 했고, 2021년엔 작곡가인 김현철과 박상균이 ‘네버기브업’ 자살방지 캠페인으로 박인영 음악감독과 함께 20여 년이 훌쩍 넘은 숨 죽어 있던 곡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다시 태어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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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못난 나를'의 리메이크 곡이 실린 '사랑을 할꺼야 OST'와 'Unfinished job part. 2' 앨범 표지들


https://www.youtube.com/watch?v=npbAnNsy6Bw


https://www.youtube.com/watch?v=26FyieLqJao


마치 김현철 4집의 '나를'이 연상되는 김현철표 전주가 끝나고, [Pa:rk]의 보컬 최원석의 허스키한 보이스가 들려올 때면, 그 옛날 마주하던 그녀를 뒤로하고 무심히 돌아서던 그때의 나로 돌아가게 된다.


이 곡은 한 남자의 사랑과 가슴 아픈 이별에 대해 담아두었던 하나하나의 작은 감정을 마치 보이지 않는 그녀에게 하소연하듯 하나둘씩 질문과 스스로의 답으로 펼쳐내게 되는데, 감정 흐름이 점점 올라갈수록 어느새 나의 귓가에 들어와 내 마음을 이미 점령해 버린 일렉 기타의 연주에 심장을 치는 찐한 감정이입을 느끼게 된다.


참고로 이 노래의 기타는 Sam Lee가, 건반은 김현철, 이승환(스토리)이, 코러스는 윤사라, 신재홍 등 당대 Top 세션과 뮤지션들이 함께 했다.


그때 그녀도
그랬었을까?


다시 만난 그녀는, 하염없이 흐르던 눈물을 아무 말 없이 손으로 훔치기만 했고, 난 그저 그녀의 감정이 추슬러 지기를 그렇게 기다리고만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잠시 숨을 고르던 그녀는 드디어 긴 한숨과 함께 떨리는 입술로 내게 말을 건넸다.


'이걸로 되었어. 내게 너무 미안해하지 마, 나에게도 참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내가 그러했듯이, 그렇게 떠나갔다.


난 그녀를 잡지 못했다. 아마 그럴 용기조차 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못난 놈처럼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주르륵 한참 동안 흘러내리기만 했다.


사랑했나요
이 못난 나를




이 못난 나를

Pa:rk, 1집 - 1999


작사 : 박상균

작곡 : 김현철

편곡 : 김현철

노래 : Pa:rk


숨을 쉴 수 없죠 그대 생각나면

잠을 잘 수 없고 도무지 살 수가 없죠


살아오는 동안

그대 힘이었는데 전부였는데


그댈 만난 내 잘못이죠

헤어질 거면 만나지나 말 것을


함께 지낸 숱한 날들이 그게 생각나

가끔은 울겠죠 이해해 줘요 이 못난 나를


아팠나요 많이 나 때문인가요

알고 싶죠 그대 왜 그리 서둘렀나요


그대에게 내가 부담이 됐나요

짐이 됐나요 그댈 보낸 내 잘못이죠


살아갈 동안 이젠 짐이 된 거죠

아프게 한 숱한 순간이


그게 미안해 가끔 또 울겠죠

용서해 줘요 이 못난 나를


나란 사람 생각나나요

기억하나요 가끔 떠오르나요


바보같이 난 좋았던 추억 그걸 못 잊어

자꾸만 그립죠 사랑했나요 이 못난 나를


사랑했어요 잘난 그대를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

https://youtu.be/IcxsXIlZAG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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